업무 양이 과도하지 않고, 팀 분위기가 쿨한 우리 팀에도 번아웃으로 3개월 이상 나오지 않는 동료가 한 명 있다. 번아웃이 먼 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케이스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사실 나 자신이, 혹은 가까운 동료가 번아웃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내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 친구들 다 번아웃인 것만 같다)
이놈의 번아웃. 대체 뭐고, 어떤 증상이 있을 때 번아웃을 의심해보기 시작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번아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 주변의, 내가 다니는 회사의 몇몇 케이스를 보며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번아웃 (Burnout)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랬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정의는 정의일 뿐. 첫째, 출퇴근이 확실해 야근이 없고, 둘째,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지 않고, 셋째, 포부 수준이 높아 전력을 다하는 성향이 아니어도 번아웃은 생길 수 있다.
나와 정말 가까운 사람이라 내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그는, 이 세 가지에 해당되지 않았는데도 번아웃 처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무능한 매니저 아래 제대로 된 지휘나 지지도 없이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법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했던, 정신적인 소모가 높은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초반 증상은 단순히 "일하러 가기 싫음"이었고, 업무 외 시간에는 완전 비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시간을 생각 없이 소비하려 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태생이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인데, 종종 퇴근을 하고도 매니저에게 화가 나 있거나, 운전 중 쉽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다음 날 일하러 갈 생각을 하며 잠을 잘 못 자는 일도 잦아지다 보니, 면역력이 약해졌고 심한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감기 증상으로 의사 처방전을 받아, 2주 동안 일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2주가 지나 다시 일을 나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의사를 다시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고, 번아웃을 처방받았다. 결국에는 처방받은 기간이 끝나는 즈음에 일도 그만두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마음에 드는 새 일을 찾았다. 새로운 곳에서는 다행히 좋은 매니저를 만나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은, 단순히 일을 나가기 싫어서 번아웃 처방을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동료는, 정말 차분하고 본인이 맡은 일도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는 침착한 성향의 사람이다. 처음, 그가 번아웃을 처방받아 3개월 동안 일을 나오지 않는다고 했을 때, 누구도 믿지 못했고, 아무도 그가 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는지 잘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딱 한 번, 회사에 대해서 불평한 적이 있는데 회사 내 업무 성과 평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근데, 내가 들은 그의 불평은 다른 사람들이 매일 같이하는 불평에 비해, 참 미안하게도 사소하고 가벼워 보였달까. 아마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던 듯하다. 그와 가장 친했던 동료는 "꼭 일 때문에 번아웃이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응을 했다. 이 동료가 회사에 나오지 않은 지 3개월이 넘어간다. 당연히 번아웃 처방을 받기 전에, 내가 하던 일을 누가 맡아서 할 거며, 내가 하던 일은 어디까지 였으니 어디서부터 인수인계받으면 됩니다와 같은 그런 친절한 전개는 없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그가 하던 일을 팀원들끼리 잘 분배했고, "도대체 왜 번아웃을 처방받은 것인가"에 대한 토론은 일절 없었다. 아마 갑자기 한 날 그가 돌아오더라도, 우리는 캐묻지 않고 그동안 잘 쉬었길 바란다며, 두 팔을 벌려 환영해 주기만 할 것 같다.
옆 팀에는 번아웃으로 쉬고 돌아온 동료, 최근에 번아웃을 처방받아 나오지 않는 동료들이 있는데, 많은 부분이 코로나와 영향이 있기도 했다. 회사에서 내리는 조치가 그들에게 힘들었고, 이런 시기에 자주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업무가 그들에게는 스트레스였다. 확실한 건, 우리 모두 다르기에, 같은 이유로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기도 또 어떤 사람은 불행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받아 들여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도 번아웃 처방을 받은 동료에게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타인의 삶에 쉽게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점은 배워야 할 부분이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다양한 이유로 일 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번아웃이 올 수도 있다. 모두가 번아웃을 처방받아 쉬기를 바라며 쓰는 글이 아니다. 회사 내 뜨거운 감자 같은 "번아웃"을 좀 더 편하게 봐라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번아웃은 올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좀 더 나 스스로의 상태가 어떤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인을 위해서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정당하게 휴식이 필요하면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가 없이는, 어느 날 나 자신은 불 타 사라져 버리고, 그저 쳇바퀴만 순종적으로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