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끼빠빠 말고 칠치빠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누구든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맡은 바 일을 잘해보자고 다짐을 할 것이다. 초반의 3개월에서 5개월 정도는 일을 배우고, 외부 부서 사람들과 조금씩 교류를 만들어 가고, 또 회사의 시스템에 익숙해가며 적응 기간을 거친다. 그리고 나면, 일에 좀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루틴을 만들고, 조금 더 안정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나 같은 경우에도, 앞의 순서들을 거친 후 4개월쯤 되었을 때, 맡은 일이 좀 단조로워져 새롭고 조금 더 복잡한 일을 하고자 어필을 했었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또 조금 익숙해지려는 시점부터는 개선하면 좋을만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스템이 아주 잘 잡힌 회사가 아니고, 창립한 지 30여 년이 지난 여전히 젊은 회사라 개선을 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는 곳이다. 일을 하며 여러 차례 개선해야 할 부분의 필요성을 느꼈기에, 결국에는 아래 순서를 거치며 건의를 해보자 싶었다.
먼저, 조직이 개선사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검토를 한다.
팀의 디렉터가 팀원들의 얘기를 들을 의사가 있는지 확인했고, 다른 팀원들도 내가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동료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예를 들면,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개선 부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내가 내는 아이디어가 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못 받을 테고, 그럼 개선사항을 실행할 수 있는 단계가 오더라도 실행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개선할 부분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킬 준비를 한다.
적어도 설득할 때 세 가지의 이유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단순히 이전에 같이 일하며 많이 신뢰했던 매니저가 두 가지 이유는 너무 적고 네 가지는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하기 힘들다고 했기 때문인데 은근히 설득력이 있다.
마지막 단계는, 팀의 디렉터를 찾아가서 직접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이다.
제안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어 당연히 승낙받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러니하지만 거절을 받을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No"라는 대답에도 너무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개선사항이 있으면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디렉터나 상사를 찾아가서 무언가 제안하기 주저하는 이유는 거절이나, 비판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려움이 현재의 불편함보다 더더욱 크다면 당연히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비효율성이 두려움보다 커, 이 불편함, 비효율성에 내가 불평을 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내 업무 만족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잃을 것은 없으니 디렉터를 찾아가 말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나의 결정이다.
다행히 우리 팀은, 새로운 제안을 환영해주는 분위기이다.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은, 애정에서 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 부분을 봐준 것인지, 디렉터도, 그 아래 코디네이터도 나를 좋게 평가해주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평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제안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때 목소리를 내고, 개선점을 검토해 볼 시간을 주며 좀 조용히 있을 줄 아는 것이 회사 내 미덕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칠 때 치고, 빠질 때 좀 빠져 있을 줄 아는 현명한 회사원이 되어보고자 매일 나는 노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