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긍정 Sep 27. 2019

오늘도 나는 요가원으로 향한다

긍정의 서재 책 리뷰 <요가매트만큼의 세계>

눈을 감고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입으로 내쉬었다.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눈을 떴을 때 버둥대는 수련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 나 좀 잘하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무리 없이 요가 동작을 착착 해내는 나 자신을 거울을 통해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등록한 초보 수련자들 사이에서 나는 제법 잘하고 있었으니까. 칭찬을 기대하고 분주히 선생님을 찾아보았지만, 선생님은 먼발치에서 수련자들 사이를 차별 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또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는 버릇이 툭 튀어나왔다.

Photo by Stephanie Greene on Unsplash

20대를 건너며 내가 자연스레 습득한 건 경쟁의식이었다. 인 서울을 위한 논술 수업에서도, 좋아서 다닌 영어 회화 학원에서도, 취업한 뒤에도 나는 늘 경쟁의식에 사로 잡혀있었다. 남을 밟아야지만 내 목숨을 겨우 부지하는 사회에서 타인은 이겨야 하는 존재이거나 나를 받쳐주는 디딤돌이어야만 했다.


몇 달 전부터 내 안에 경쟁주의자는 나를 자꾸만 괴롭혔다. 전에 다니던 직장이 규모가 큰 M사 팔려 의도치 않게 이직을 했다. 회사 내에서 나는 대기발령 상태와 다름없었다. 팀장은 최소한의 일감만 배정해주었고, 나는 네 달 동안 오후 2시부터 한가했다. M사엔 나와 비슷한 사원급의 동갑내기가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사원이지만 그들은 규모 있는 일을 척척해냈고, 나는 존재감 없는 일만 반복했다. 그들과 나의 상황이 다른데 나는 동갑이라는 이유로 동일선상에 놓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저울질을 했다.

Photo by Patrick Hendry on Unsplash

그쯤 요가 수업에 등록했다. 퉁퉁 붓는 다리 때문에 시작한 퇴근 후 요가에 재미를 들렸다. 처음엔 호흡과 동시에 동작을 바꾸기만 해도 부들부들 몸이 떨려 힘들기만 했는데, 자꾸만 내 호흡에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다른 수련자들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간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 몸의 오늘 상태에 집중하라고.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나아가면 된다는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선생님의 말은 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온종일 내 안의 경쟁주의자와 싸우느라 지친 나를 토닥이는 말 같았다.


한국에서 스물여덟 해를 살아내면서 내 안에 경쟁주의자는 무럭무럭 자랐다. 경쟁주의자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우렁찬 목소리가 내가 경쟁에서 질 때마다 나를 구석에 몰아넣고, 한없이 채찍질한다는 것도 모르고 무작정 믿었다. 그런데 요가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부터 채찍질이 잦아들었다. 내 호흡에 집중하자 타인은 아득해졌고, 어제보다 단단해진 근육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안되던 동작을 거뜬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되던 동작이 되는 걸 경험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믿기 시작했다.


요가를 통해 배운 가르침은 일상까지 연결되었다. 나를 믿고 내 호흡에만 집중하는 것. 중요한 건 내 호흡에 맞춰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 안에 있으니까. 내 안에 존재하는 경쟁주의자를 없앨 순 없지만 잠재울 수는 있다. 오늘도 내 호흡에 귀 기울이기 위해 나는 요가원으로 향한다.

https://g.co/kgs/Mgvt8x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 전부가 오빠였던 시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