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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Oct 24. 2019

세상 전부가 오빠였던 시절

긍정의 서재 영화 리뷰 <프리다의 그해 여름>

“일하러 가는 거 좋겠다.” 지난 일요일, 일가기 싫다는 내게 오빠가 말했다. 오빠는 대학 졸업 후, 의류 매장에서 1년 넘게 일한 뒤 퇴사했다. 그 후 재취업을 안 하고 남양주 본가로 들어가 현재는 엄마와 함께 산다. 성수기인 봄, 여름 동안은 가게 일을 도왔고, 지난겨울엔 동네 카페에서 일했다. 다시 겨울이 오니, 재취업을 준비 중인데 마음처럼 안되는지 불안해 보였다. 어릴 적엔 나보다 두 세배는 커 보였던 오빠인데, 요즘은 내가 오빠보다 앞서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4살, 오빠가 6살이던 해,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퇴근 후 아들과 식빵에 케첩과 잼을 발라 나눠 먹은 뒤 잠이 들었고, 그게 그가 살아있을 때 보낸 마지막 시간일지 알지 못했다. 사인은 자는 동안 심장으로 피를 흘려보내는 동맥이 갑작스레 막혀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오빠는 목놓아 울었고 나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아빠가 삐뽀삐뽀 타고 갔다”라고 되풀이했다.


사망 보험금이 탐이 난 큰 아빠와 할머니라는 사람들은 수시로 집에 찾아와 엄마를 겁박했다. 큰 숫자가 적힌 보라색 집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고, 엄마는 받지 말고 끊으라고 했다. 그들은 집으로 찾아오길 서슴지 않았다. 할머니는 출근하던 엄마의 멱살을 붙잡으며 돈을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돈 없다고, 배 째라는 엄마를 큰 아빠는 목을 조르며 내동댕이쳤다. 난데없는 싸움에 놀란 나는 울며 엄마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사건 이후 엄마는 이모가 사는 성남으로 떠났고 오빠와 나는 할머니네 집에 남겨졌다. 벌어진 신발 틈 사이로 빗물이 새어 들어오듯, 불행은 우리 가족을 조금씩 그리고 깊숙이 잠식했다.


별안간 엄마와 아빠 모두 떠나 무서웠던 나는 오빠 뒤만 졸졸 쫓아다녔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구석은 오빠뿐이었다. 오빠는 밤마다 이불에 실수해 할머니에게 혼이 나는 나를 위해 새벽마다 어린 동생을 요강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밥 먹을 때마다 계란이나 햄 같은 반찬을 못 먹게 눈치를 주는 사촌들을 피해 오빠는 내 밥그릇 밑에 햄을 숨겨주었다. 엄마가 몰래 숨겨준 돼지저금통에서 돈을 꺼내 동네 슈퍼에서 과자를 사 먹은 것도 모두 오빠가 있기에 가능했다. 하루는 오빠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며 나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오빠는 가방에 좋아하는 장난감과 교과서를 챙겼고, 다음 날 아침 오빠는 내 손을 꼭 잡고 평소처럼 유치원을 향해 집을 나섰다. 그날로 우리는 할머니라는 사람으로부터 달아나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속 프리다를 보며 오빠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주인공 프리다는 6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 나이에 엄마와 아빠를 모두 여읜다. 프리다는 외할머니 집에서 외삼촌댁으로 맡겨지고 그곳엔 프리다보다 어린, 부모 밑에서 사랑받는 아나가 있다. 온전히 사랑받는 아나와 다른 프리다는 아나를 질투한다. 시기 어린 마음은 아나의 부모에게 미운털로 비친다. 오빠에게 그때를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는다고 들었다며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빠가 대부분의 기억을 잃게 된 건 어쩌면  나에 비해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프리다처럼 어렸을 오빠가, 프리다와 꼭 비슷한 상황 아래 그보다 어린 나를 돌보고 챙겼을 생각을 하자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성인이 되고선 오빠를 종종 미워하곤 했다.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것도, 가족보다 여자 친구가 우선인 것도 싫었다. 조금 앞서는 듯 보이면 질투하는 듯 나를 부러워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던 것 같다. 작아진 오빠의 모습이 싫어 가까웠던 오빠와 거리를 두려 했다. <프리다, 그해 여름>은 내가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우리를 보여주었다. 스스로도 챙기기 어려웠을 어린 시절, 오빠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세상 전부가 오빠이던 시절이 있었다.


며칠 전 오빠가 이력서를 쓰면서 답답했는지 내게 연락했다. 연거푸 면접에서 떨어지자 주눅 들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듯 보였다. 술기운을 빌려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진심을 전했다. 나는 한껏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오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는 분명 잘될 거야. 우리가 누구 아들, 딸인데,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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