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긍정 May 06. 2020

그땐 남자 친구가 날 사랑해서 그런 줄 알았다

긍정의 서재 책 리뷰 <배움의 발견>

7년 사귀었던 내 전남친은 의심이 많았다. 내가 스물두 살이던 2013년 4월, 우리는 썸을 탔고 밤마다 두 시간씩 통화를 했다. 그에게 전 여자 친구에 대해 조금씩 질문을 바꿔가며 어떤 사랑을 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조금 상처를 받은 듯 말했다. 전 여자 친구가 방학 동안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그동안 새로운 남자가 생겼음을 심증으로 알았다고.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미심쩍은 행동을 계속하기에 남자가 생겼음을 확신하고 헤어졌다고. 물증은 없었지만 그녀가 바람을 피워 헤어진 거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확신하듯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지나간 그녀가 준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새살이 날 수 있게 해야지 다짐했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그가 다시 영원한 사랑을 믿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거라고 속으로 자신했다.

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나는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남자 사람 친구들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후문에서 술 마시며 어울렸던 동아리 오빠들도 캠퍼스 내에서 만나면 멀찍이서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조용히 지나갔다. 전남친 말고는 모든 관계가 싱겁게 느껴졌고 그가 주는 사랑과 즐거움은 짜릿했다. 초라한 포장마차의 멸치국수도, 세트메뉴를 시켜도 만원을 넘지 않던 한스델리에서의 식사도 다 즐거웠던 추억으로 기억될 만큼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다르게 기억됐다.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가 나에게 확신을 갖길 바라는 만큼 모든 관계에서 나는 한발짝 물러났다. 물러난 만큼 그와 한발짝 가까워지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단속했다.

전남친과 처음 크게 싸웠을 땐 동아리 친구가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오랜만에 만나자는 친구의 부름에 망설였다. 전남친에게 정말 친했던 친구인데 만나고 와도 되냐고 눈치를 보며 허락을 구했다. 그는 쿨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저녁에 만나 석계역 근처 삼겹살집에서 소주와 매화수를 섞어 마셨다. 늦은 저녁, 만취로 인해 카톡이 안되자 그는 친구와의 관계를 의심했다. 다음날 그는 걔랑 잤냐고. 뭘 했길래 연락이 안 된 거냐며 화를 냈다.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다툼이 있고 며칠 뒤 스타벅스에서 만났을 때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처음 뱉었다. 나는 헤어지기 싫다고 울면서 매달렸다. 오빠는 단호하게 어쩔 수 없다고. 믿음이 깨졌는데 어떻게 만나냐며 차분하게 헤어짐을 말했다.


Photo by @inky_pixels on @unsplash

며칠을 하늘이 무너진 듯 울음을 머금고 지냈다. 그가 겨우 내 애원에 마지못해 만나기로 했을 때 나는 멀어졌던 동아리 친구와 더 거리를 둬야겠다고 다짐했다. 여러 명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아니고선 일부러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았고 여자 친구들 하고만 만남을 이어갔다. 전남친은 그 다툼 이후로 나를 더 못 믿게 되었다고 했다. 믿음에 금이 갔다고. 나는 그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어딜 갈 때마다 그에게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라면 그런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면 누구인지 보고했고 자리에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 같은 작고 사소한 것들까지 얘기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이면 전화를 해서 들어가고 있다고 보고를 하고 잠이 들기 전엔 침대에 누웠다며 안전히 집에 도착했는지 그가 알게 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그런 보고 카톡과 전화를 나는 종종 깜박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다툼으로 이어졌다. 오빠는 내게 도대체 왜 연락이 안 된 거냐며 뭘 했길래 연락하는 걸 까먹냐고 추궁했다. 책에 집중했다고, 정신없이 여기저기 들리느라 연락하는 걸 깜박했다고 해도 그는 마뜩잖게 여겼다. 그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며 부재중 전화와 카톡을 여러 통 남겨놨다. 매번 별일 없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그를 안심시키는 건 자연스러운 내 일이었고 그에게 보고 하는 일은 차츰 귀찮게 여겨졌다. 놓치는 연락 때문에 자주 싸우면서 나는 그에게 위치 추적 어플을 깔아주었다. 내가 어디인지 보고하지 않아도 어플을 켜놓으면 움직이는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에 쉽게 결정했다. 그러면 더 이상 싸우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 스케줄제로 일했던 나는 마감 스케줄일 때면 늦은 오후에 출근을 했고 오전에 요가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요가를 다닌 지 삼 개월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요가 수업을 듣고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그에게 여러 통의 전화와 카톡이 도착해 있었다. 어디냐고. 왜 연락이 안 되냐며 화난 듯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나는 상쾌한 목소리로 “미안! 아침에 정신없이 요가 오느라고 얘기하는 걸 깜박했네!” 하고 말했고 그는 아침부터 집이 아니걸로 뜨던데 정말 요가를 간 게 맞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익숙한 의심에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 그는 그 근처 모텔에 갔을지 요가에 갔을지 자기가 어떻게 아냐며 나를 추궁했다. 그날 우리 사이는 차갑게 식었고 다툼은 자연스레 이별로 이어졌다. 그 뒤로도 우리는 몇 해 더 만났지만 결국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숨긴 건 다름 아닌 그였다.


Photo by @Jannerboy1962 on @unsplash

물론 7년 동안 그가 보여준 언행에는 나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의 말속에는 언제나 나를 향한 의심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불편하고 싫으면서도 나는 늘 당연하다고 여겼다. 내가 여자니까.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그가 날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한 거니까. 라며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상대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잊은 채 결국 조심하지 않은 나의 언행이 모든 싸움에 원인이 되어버렸다. 내가 조금 더 조심했으면 싸우지 않았을 텐데, 내가 연락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같은 무수한 나로 시작하는 자책만 늘어갔다.

7년의 관계를 매듭짓고 1년 동안 지난 관계를 돌이켜 보았다. 내가 잘못한 건 무엇이었는지, 그가 나에게 준 상처의 깊이는 얼마나 크고 넓은지 같은 것들을. 지난 7년의 경험을 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면 존중받는 연애를 하고 싶다. 나는 여자이니까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 말고, 여자니까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라고. 여자니까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사람 말고, 서로 평등하게 존중하는 그런 사람. 보호란 명목 아래 나를 의심하거나 감시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고 싶다.

https://g.co/kgs/afqZ4j


매거진의 이전글 신입사원인 너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