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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Nov 25. 2019

음료를 다시 만들어서 배달하라고?

비릿한 손님의 뒷 맛

오빠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어제 매장에서 조금 소란이 있었는데” 나는 카누 커피를 타면서 다음 말을 천천히 기다렸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스물두 살 여자애가 음료를 만들다가 실수를 한 거지. 근데 그 손님이 매장에 전화해서 난리를 치는 거야. 자기가 주문한 음료를 새로 만들어서 집으로 배달하라고.” 나는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어 되물었다. “뭐라고??? 배달을 하라고?”


오빠는 글로벌 커피 매장에서 일 년째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오빠가 말한 소란은 이랬다. 매장에서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들을 빨리 적응시키기 위해 가장 바쁜 시간대에 음료를 만들도록 업무를 배정한다고 했다. 그래야 덜 바쁠 때도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거라나. 그러다 보니 음료 만드는 데 적응을 미처 못한 신입은 종종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 실수로 그 신입 직원은 시럽 한 펌프 놓친 음료를 내놓았고 손님은 이때다 싶었는지 전화로 컴플레인을 걸었다.

Photo by Tyler Nix on Unsplash

점장은 매뉴얼대로 매장에 다시 방문하면 새로운 음료와 무료 음료 쿠폰을 준다고 제안했다. 점장이 할 수 있는 건 매뉴얼이 전부일 테니까. 40분 가까운 점장의 사과와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 손님은 음료 배달을 주문했다. 지나친 서비스 요구와 지난한 감정 노동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결국 과도한 손님의 요구를 점장은 들어주기로 했고 실수한 직원에게 음료를 직접 손님의 집까지 배달할 것을 지시했다고 했다.


비상식적인 손님의 태도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실망스러웠던 건 점장이라는 사람의 미흡한 태도였다. 부당한 서비스 요구를 들어준 것도 그렇지만 어린 직원을 보냈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러웠다.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실수한 직원이 아닌 자신이 가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아무리 실수를 해도 그렇지. 하고 분노하자 지난 내 알바 경험이 동시에 떠올랐다.


스물여섯, 청담의 의류 매장에서 판매 사원으로 일할 때였다. 압구정에서 일했던 나는 영어로 관광객을 상대하는 일이 잦았다. 하루는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 스타일의 손님이 대낮에 매장을 찾았고, 결제를 하기 위해 그가 계산대를 찾았을 때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이미 매장 내에서 그를 보았을 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음에도 대답이 없어 외국인이라고 확신을 했을 때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중국인처럼 보였다.


그는 나의 “헬로”에 “네?”하고 대답했고 나는 서둘러 “앗,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해버렸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려 계산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그는 나가면서 무어라 욕지거리를 지껄였고 문 앞에 서있던 동료가 그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가 밖으로 나서자마자 매장의 전화가 다급하게 울려댔다. 얼마 뒤 매니저는 나를 오피스로 불렀다.

Photo by Marcus Loke on Unsplash

매니저는 손님과 무슨 일이 있었냐며 대뜸 물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그가 나가자마자 계산한 직원 이름이 뭐냐며 기분이 나쁘다며 컴플레인을 걸겠다며 길길이 뛰었다고 했다. 영어를 사용하며 자신을 무시한 듯한 태도가 거슬렸고 기분이 상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매니저는 그의 말에 서둘러 사과했지만 나에게 직접 사과를 받고 싶다며 퇴근 시간에 맞춰 전화하기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미안하지만 사과 전화를 할 수 있냐는 물음에 “뭐 그래야죠”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내 속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고 내가 무얼 잘못한 건지 조금 전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되돌려보았다. 아무리 필름을 되감기 해도 심각하게 잘못한 것 없는 듯했다. 매장에서 마주쳤을 때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는데. 외국인인 줄 착각한 게 그리 길길이 난리 칠 일인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실수했다니까 왠지 직접 전화를 해서 사과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매장 문을 닫을 준비를 마친 뒤 오피스로 향했다. 매니저에게 먼저 전화를 건 뒤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어쩐지 내가 직접 전화를 하며 폭언이 쏟아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매니저 옆에 앉아 전화 연결음이 들렸고 그는 20분 뒤에 다시 전화하라며 단번에 끊어버렸다. 어리둥절했던 우리는 20분 뒤에 다시 전화했고 그는 내가 다음날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또다시 전화를 끊어버렸다.


멋대로 끊어버리는 그의 갑질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매니저는 먼저 집에 가라고 하더니 퇴근길 내게 전화를 걸어 내일 매장에 나와 사과 전화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휴무인 날이었다. 지금이었다면 부당한 처사 아니냐며 못 나간다고 답했을지도 모른다. 어렸던 나는 우울하고 괴로운 마음에 쉽게 알겠다고 답했다. 사과하는 건 돈으로 쳐주지도 않을 텐데.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보였다.


그날 밤은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이게 그렇게 화날 일인가? 손님의 요구라면 이렇게 들어주는 게 옳은 건가? 이런 여러 가지 물음 사이를 오가며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애썼다. 이튿날 아침 더 직급이 높은 매니저는 내게 전화해서 매장에 오지 말라고 했다.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남자 매니저가 그에게 전화해 사과받으려면 전화로 이러지 말고 직접 매장으로 오라고. 자꾸 이러시면 경찰 부르겠다고. 그제야 이 사건은 끝을 맺을 수 있었다.

Photo by Alexander Andrews on Unsplash


그날의 기억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은 이유는 어쩌면 내가 맛본 비릿한 굴욕감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직원에게 자신이 원하는 때에 전화해서 마음이 풀릴 정도로 사과하라는 빌어먹을 갑질의 맛을 경험해서. 돈을 쥔 나는 위에 있고 일하는 너희는 아래에 있으니 내가 바라는 대로 하라는 요구가 역겨워서.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도 그게 당연한 권리인 마냥 행사하는 그 태도에서 비릿한 모멸감을 느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면 누군가는  "어휴, 그런 진상이 아직도 있어?"하고 말하겠지만 아직도 있다. 상식을 너무 많이 빗나간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도 많다. 갑질을 휘두르는 게 권리가 아닌데 자신이 가진 최고의 권리인 듯 여기는 사람 때문에 오늘도 일하는 많은 직원들이, 특히 여자 직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는다. 여자 직원에게만 시비를 거는 취객이나 대낮에 의류 매장 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정신 나간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장 만만한 게 젊은 여자 사람이니까.


일련의 비슷한 사건을 겪을 때마다 환멸을 느끼는 건 그런 저질스러운 언행을 코 후비듯 일삼는 사람들이 첫 째이지만 대책 없이 들어주고 마는 책임자가 둘 째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상황을 알고도 직원을 지키지 않는 회사에게 환멸을 느낀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방패도 없이 당하고 마는 건 직원들이니까.


나는 그 스물두 살의 어린 직원이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로 인해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았으면 싶다. 그런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날따라 운이 좋지 않았던 거라고. 그런 실수도 웃으며 넘어가 줄 수 있는 손님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그러니 너무 기운 잃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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