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긍정 Dec 04. 2019

신년 목표 : 언행일치

나는 여전히 행동 앞에서 주춤주춤 한다.

시간은 새벽 한 시. 잠옷 바람에 패딩을 입고 종종걸음으로 새벽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자취방에서 친구와 한잔 마신 뒤 아쉬웠던 우리는 동네에 24시간 중국집으로 향했다. 짬뽕 집에 도착했을 땐 하얀 김이 안경을 가렸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나운 형광등 아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친구는 소맥을, 나는 소주를 골랐다. 안주는 해물 짬뽕 하나. 우리는 회사 생활의 고단함을 나누며 술잔을 부딪혔다. 친구가 말을 이어갈 때 반대 편에 앉은 친구 너머로 얼큰하게 취한 중년 남자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바로 들어온 남자는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술에 취해 발그랗게 달아오른 뺨과 반쯤 풀린 눈에 시선이 머물렀다. 

Photo by Bundo Kim on Unsplash


얼마 뒤, 맞은편 남자 둘이 계산하러 가는 길에 몸을 틀어 나를 보던, 그 남자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어이, 여기 영계들이 있네.." 그는 황당한 말을 쪽팔린 줄 모르고 뱉었다. 난데없이 짬뽕에 소주를 마시러 나왔다가 말 같잖은 소리를 듣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불쾌한 기분을 짐짓 숨기고 친구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한없이 살가운 그녀가 혐오스러운 눈길로 아저씨 둘을 노려보았다. 눈빛으로 욕한다는 표현이 딱 적당했다. 나는 살기 어린 그녀의 표정과 아저씨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술이 조금 덜 취한 일행이 "아가씨들한테 한 말 아니에요"하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자 술에 잔뜩 취한 남자는 "꼬나보긴 뭘 꼬나봐.. 에이씨"하고 계산대로 향했다.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친구는 그들이 가게를 뜰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고, 마침내 그들이 나가자 "저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하고 한 마디 뱉었다. 술을 다 마시고 난 뒤, 그녀는 나가면서 서빙 이모님들에게 하소연했다. 이모님들은 "하이고"를 시작으로 아가씨들 다투지 않아 다행이라며, 우리가 고맙다며 사이다랑 콜라를 쥐어주시고는 우리를 위로했다. 집으로 향하며, 그녀는 자신의 분개한 마음에 공감해준 나와, 이모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저 아는 대로 행동하는 그녀가 멋져 보였다. 나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정작 아는 만큼 말을 꺼내거나, 행동으로 옮긴 때는 많지 않았으니까.


며칠 전 본 환경 다큐멘터리 <비포 더 플러드>에 출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20대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으며, 20년간 자신이 세운 자선 재단을 통해 1,125억 원을 기부했다고 알려졌다.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다양한 책임감을 알게 된다. 아는 것과 행동에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일인데, 나는 여전히 행동 앞에서 주춤주춤 한다. 한 살을 더 먹은, 스물여덟의 나는 그간 쌓은 지식만큼 행동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음료를 다시 만들어서 배달하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