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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Jun 26. 2020

어쩌다가 갑자기 등산에 미쳐버린 거야?

주말마다 산으로 향하는 이유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하는 언니가 내게 말했다. “어쩌다가 갑자기 등산에 미쳐버린 거야?” 그러게. 나도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지? 궁금했다. 외로움이었나? 심심함 때문이었나. 둘다였나? 무엇 때문이었는지 콕찝어 말할 수 없어 대답을 얼버무려 버렸다. 작년 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산을 타기 시작했는데 그 한 달이 이 주가 되고 일주가 되더니 이번 여름휴가도 지리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시작은 작년 11월 인왕산이었다. 내 생일쯤이 되어 대학교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고르다가 문득 등산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에게 인왕산을 함께 오르는 게 어떤지 물었다. 마음이 너그러운 친구들은 모두 흔쾌히 허락했다. 늦은 가을 단풍으로 물든 인왕산을 친구들과 꺄르르 웃으며 올랐다. 친구들은 김밥과 유부초밥, 핫윙 등 산 위에서 각자가 싸온 도시락으로 완성된 푸짐한 생일상을 만들어주었다.

모든 액티비티의 시작은 아이템이라고 믿어온 나는 등산을 시작하기 전부터 장비를 하나둘 사모으고 있었다. 마치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그랬다. 등산화는 전 회사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샘플 세일을 했는데 그때 마련했다. 등산에 관련된 약속은 한 개도 없으면서 6만 원을 들여 환불하지도 못할 등산화를 들였다. 배낭은 백팩킹을 좋아하던 전 남자 친구가 함께 다니자며 생일 선물로 준 것이었다. 침낭에 캠핑 의자에 바리바리 싸들고 떠날 수 있도록 60리터짜리의 넉넉한 배낭을 준비했다. 모두 사놓고 오래도록 장롱 한 켠을 지키는 것들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주변 사람들이 안부 인사로 “지난 주말에도 등산했어요?”하고 물어오는 등산인이 되어버렸다.

등산에 중독되어버린 첫 번째 이유는 다름 아닌 일 때문이었다. 늘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욕심이 주말마다 나를 짓눌렀다.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더 고민하고 나아질 리 없는 일인데도 붙들고 앉아있었다. 지겹다고 이제 일 생각을 안 할 거라며 집안일을 하며 집안 곳곳을 분주히 누벼도 어느새 일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러면 이내 또 무기력해져 티브이를 틀어놓고 잠에 들었다. 일요일을 마칠 즘엔 일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이번 촬영 망하면 어쩌지? 는 망할 것 같다고 변했고 나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루 종일 일한 것 같은 스트레스에 쪼들렸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나는 촬영을 준비할 때마다 걱정에 휩싸였다. 촬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너무 많은 일이었다. 나만 준비를 잘하면 100점을 받을 수 있던 시험하고는 달랐다. 날씨가 안 따라 줄 때도 있었고 모델이 생각과는 다를 때도 있었으며 준비했던 소품이 기획과는 안 맞을 때도 있었다. 촬영에 함께하는 이들과 협업이 중요한데 그게 잘 맞아 수월하게 끝날 때가 있는 반면 아닌 때도 많았다. 그런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즐겨야 하는데 경험이 적은 나는 즐기기는커녕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런 걱정에 휩싸일 때면 산을 찾았다. 등산은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오르면 되는 일이었다. 내 몸이, 날씨가 허락할 때면 가방에 도시락과 마실 물, 달달한 간식을 챙겨 신발 끈을 조여매고 걸었다. 힘들 때마다 숨을 고르고 물을 마셨다. 힘듦에 집중하다 보면 촬영에 대한 걱정도 모두 사라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동행한 친구들과 근황을 나누거나 최근 본 영화나 소설의 줄거리를 나누며 대화의 끈을 이어가면 먼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흠뻑 땀을 흘린 후 하산하고 먹는 점심은 어찌나 맛있던지, 두부전골이나 청국장 같이 고기 없는 밥상에도 모두들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압구정에서 줄 서서 먹는 인스타 맛집 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맛이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면 이번 주말도 알차게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땀을 흘리며 한 뼘쯤 가까워진 친구들, 건강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걱정은 머릿속 한 켠을 차지했지만 고작 그 한 켠 만큼만 괴로웠으니까. 일에 대한 걱정으로 무기력하게 잠만 자지 않았으니까. 너무 놀았다는 자책도 들었지만 오히려 잘 충전했다는 기분 덕분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까지 얻게 된 기분이었다. 외로워서, 심심해서 다닌 산으로부터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기운을 얻어오는 것 같았다. 그 뿌듯함과 기분 좋은 에너지에 중독되어 나는 주말마다 산으로 향하는 등산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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