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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Mar 23. 2020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방법

긍정의 서재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밥을 먹다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울고 싶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은데 내 목소리로 내 감정을 털어놓자마자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차올랐다. 오빠가 내 앞에 앉아 도대체 왜 우는 거냐고 묻는데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 마른 입술만 달짝 거리는데 이모가 옆에서 대신 답했다. “얘한텐 이런 게 트라우마야.”


Photo by Sarah Brown on @unsplash

금요일 퇴근길 본가로 향했다. 오빠가 또 무슨 옷을 사고 싶다기에 늘 그랬듯 그만 사라며 잔소리를 했다. 오빠 옷장이 세 개나 가득 찼다고. 옷이 얼마나 많은데 또 옷장을 채우겠다는 거냐고. 나중에 오빠가 나이가 들고 돈을 잘 벌게 됐을 때 저런 옷들이 다 필요 없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오빠는 그런 내 말에 짜증이 났는지 다음 날 아침 밥상에 앉자마자 내게 물었다. “너, 한 달에 술 몇 번이나 마시냐?”
정말 궁금해서 묻는 투가 아니었다. 빨리 대답하라는 재촉의 뉘앙스가 묻어 나왔다. “두세 번?”하고 퉁명스레 답했다. 최근 정리된 인간관계 덕분에 술자리가 줄어든 탓이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잠시 숨을 고르더니 오빠가 말을 이었다.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고 안 피고 여자 친구만 만나. 근데 내가 그런 돈 아끼고 모아서 옷 산다는데 왜 매번 생각 없이 돈 쓰는 사람처럼 말해?” 날이 바짝 선 말투였다. “나는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기분이 나쁘다고.”

아침 밥상 앞에서 다짜고짜 기분이 나쁘다니.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고 나는 할 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순식간에 딱딱해진 공기에 놀란 엄마와 이모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내가 얘기할게! 보영이가 말한 건~" 하고 말을 자르면 “엄마랑 이모는 가만있어봐"하면서 말을 끊었다. 당황한 나는 나름의 항변을 했다. 나는 오빠가 정말 나이가 들고 돈을 잘 벌게 됐을 때 저 옷이 다 어떻게 될지 생각했다고. “돈 아껴 쓰는 스쿠루지 친구가 나한테 해준 얘기가 있어.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 옷만 많은 거지 할머니는 되지 말자고. 그 말을 듣고 나니까  화려한 옷으로 가득한 장롱만 지닌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이 그려졌거든. 나는 오빠도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해서...” 말을 잇는데 끝맺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한 해 동안 내 화두는 ‘갈등을 말하기’였다. 나는 왜 갈등을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지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내 성향을 고칠 수 있을까. 가깝게 지내던 친구, 남자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이런 답답한 내 성격 때문에 관계가 모두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안 맞는 건 얘기하고 서로 맞춰 나가야 하는데 그러질 않으니 한방에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갈등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내 버릇을 고쳐야지 다짐했다. 고치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떠나가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남들에겐 별거 아닌 그 일이 내겐 무척이나 어려웠다. 버릇 좀 고쳐보자고 글을 몇 번씩이나 고쳐가며 다짐을 해봐도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안 하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니 입을 닫는 거라고, 겁쟁이가 되지 말자고 다짐해도 어느새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어릴 때마다 내 목소리를 내면 오빠는 늘 불같이 화를 냈고 내게 음료수 캔을 던지거나 내 방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목소리를 내는 결과 뒤엔 늘 악몽 같은 현실이 따라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벌벌 떨거나 울면서 더러워진 방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 다 자란 오빠는 내게 "네 의견을 말해"라며 다그쳤다. 이제는 때리지도, 화내지도 않는데 왜 말을 안 하냐고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훌쩍 커버린 다정한 오빠의 얼굴엔 어린 시절 돌변했던 성난 모습도 같이 존재했다. 그 눈빛은 언제고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런 얼굴을 마주 보고 다투 듯 논쟁을 시작할 때마다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계속 이렇게 내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오빠 눈빛이 언제 변할지도 몰라. 나는 조급해졌다. 심장이 쿵쾅대면 댈수록 대화를 빨리 끝내버리고만 싶었다. 이 상황을 피하면, 내 목소리를 지우면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듯 이 숨 막히는 순간을 넘길 수 있으니까.

갑작스레 한바탕 울고 나자 엄마는 내게 “너 그 트라우마 고쳐야 돼” 하고 말했다. 내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듯 말했다. 그런데 정여울 작가는 책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에서 내가 그동안 고민했던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내 안에 쌓이는 감정의 퇴적층을 외면한 채 살아갈수록 표출하지 못한 감정이 내 안에 계속해서 쌓여갈 거라고. 그동안 화가 나도 참고 슬퍼도 참아왔다면 이런 감정들과 화해하기 위해 스스로 다그치지 말기를 주문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구나 알아차려주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건강해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나를 잔잔히 위로했다.

그녀의 진단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건 내 감정을 오랫동안 외면해왔기 때문이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가면을 만들어냈고 그 뒤에 숨은채 슬픔을 자주 외면해 울음이 뒤늦게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곤 슬픔을 알아채자마자 왜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나 자신을 다그쳤다. 시간이 필요한 일에 나는 스스로를 너무 재촉했다.

이제야 정여울 작가의 글을 통해 해결책을 배웠으니 더디지만 천천히 기다려보려 한다. 나를 다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된 내 슬픔을 기다려주기로. 슬픔으로 가득했던 마음을 글쓰기로 치유해보기로.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내 안의 트라우마와 화해하고 어려웠던 갈등을 말하는 일도 어렵지 않아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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