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긍정 Apr 06. 2021

너무 외로운 나머지 소개팅에 나섰다

여성스럽지 못한 겉모습 때문에 로맨스가 생기지 않는 걸까?

얼마 전 소개팅을 했다. 일은 늘 많았지만 주말이면 시간은 남아돌았다. 등산을 다니면 남자친구가 생길까 싶어 다닌 지도 어느덧 6개월. 장단지와 허벅지에 근육만 늘고 뒷목이 새까맣게 그을렸을 뿐. 엄마가 본 사주에는 내가 올해 남자친구가 생긴다던데 그 말만 믿고 있기엔 연애의 기미가 싹틀 관계가 전무했다. 그럼에도 늘 척박한 일상에 단비처럼 내릴 로맨스를 막연하게나마 꿈꾸었다. 요즘 유난히 외롭다고 동료에게 말하자 “언니 연하도 괜찮아요?”하고 묻길래 “응응. 완전 괜찮아!”하고 소개팅을 주선받았다.

대학생 시절 소개팅 이후로 처음이었다. 소개팅이 늘 그렇듯 마음에 꼭맞는 사람을 기대하면 안되겠지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대단한 이상형이 나오면 어쩌나 기대했다. 자신에게 뭐가 잘 어울리는지 잘 고려한 센스있는 패션스타일, 세련된 헤어스타일, 어떤 주제든 막히없이 대화가 되는 남자가 나오면 어쩌지? 그동안 호감을 느꼈던 남자들의 매력을 총집합한 남자가 나오면 첫만남에 원나잇까지 가는 거 아냐?! 하며 몰래 의뭉스러운 상상까지 했다.

평소엔 잘 입지 않던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고르면서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너무 보이시한 느낌이 나지 않으면서도 여성스러운 옷이면 좋겠다. 패션쪽에서 일하는 걸 아니까 너무 옷을 못 입는다는 인상을 주면 안되겠지? 스타일리시한 느낌도 빼먹으면 안되겠고. 나름의 고민 끝에 SPA 브랜드에서 세일하는 원피스를 하나 골랐다. 친구 찬스를 더해 스태프 할일까지 받으니 가격은 2만3000원. 블랙&화이트 컬러의 잔잔한 체크가 마음에 들었다. 정중앙에 스트링 디테일 덕분에 페미닌한 느낌도 예쁘고. 나시 원피스라 어깨라인을 드러내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어느새 결제 버튼을 누르는 나를 발견했다.

내 나름 예쁘게 차려입고 나갔는데 그러면 뭐라도 생기겠지 싶었던건 큰 오산이었다. 웬 정말 대학생스러운 애가 나왔다. 5월에 모직자켓을 입고 나온 건 차치하더라도 뭘 먹을지, 어디서 만날지 등 아무 계획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인스턴트 만남에서조차 의지도 노력도 없어보이는 애를 굳이 만나야하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일단 만나서 대화를 시작하면 다를지도 몰라 하며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내가 고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내가 고른 술집에서 맥주 두 잔을 들이키면서 소개팅남은 어느새 대학 동아리 후배쯤으로 마음 속에서 매듭을 지었다. 1년도 안된 커리어는 나이 때문에 그렇다 쳐도 내 앞에서 멋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하는 이유 모를 행동들이 거슬렸다. 쌍커풀이 생긴 눈이 멋있다고 생각한 건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부릅뜨는 버릇이나 말끝마다 아빠의 부를 자랑스레 여기는 가치관은 마음을 차갑게 얼어붙게 하기 충분했다.

소개팅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 오면서 머리를 한 번 길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연애든 썸이든 아무 로맨스가 생기지 않는 건 내 보이시한 스타일 때문인 것 같았다. 20대 내내 고수한 짧은 헤어스타일 때문인 건지, 화사하고 반짝반짝하게 꾸미지 않는 메이크업 때문인건지 궁금했다. 여성스럽지 못한 겉모습 때문에 로맨스가 생기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은 작년 5월의 일로 이후 8월에 동갑의 남자친구랑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휴가에 지리산으로 향하는 등산인이 되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