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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라르 Dec 05. 2022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은 어디서 오는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악의 대한 탐구는 흥미롭다. 왜냐하면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릴때는 착해야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두었지만, 사실 그 시절 착한 행동은 부모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했던 행동이여서 나의 행동에 끊임없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부모의 눈치에 조마조마하면서 싫어도 해야하는 행동이 착한 것이여서 착한 행동을 해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이 착하고 무엇이 나쁜것일까? 우리는 인간이 왜 나쁜 행동을 하는지 학교에서도 배울 수가 없었다. 티비에 나오는 범죄자들은 그냥 나쁘게 태어났거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분절하는게 고작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어릴때 부터 그토록 강요된 착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주게했으며, 사실 악은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 이러한 사실이 성인이 되서야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게되었다.


1960년 5월 11일, 한 중년의 남자가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를 당하여 이스라엘에 오게 된다. 납치된 남자의 이름은 리카르도 클레멘트. 사실 이 이름은 위장 신분이다. 진짜 이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이송 전문가로 불리던 인물로 불리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모사드 요원이 그를 그 자리에서 처단하지 않고 납치한 이유는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였다. 최악의 전쟁 범죄자의 재판 소식에 당시 뉴요커 잡지사는 당시 신진학자였던 한나 아렌트를 취재 목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모든 재판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취재를 통해 "왜 그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내용을 총 5편의 기사를 연재되었고 후에 책으로 발간되었다. 그녀의 글은 세계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1년 4월 11일에 예루살렘 지방 법원으로 재판받기 위해 이송되었다. 15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으나(p73) 아이히만은 자신의 죄목에 대해 무죄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잘못이 없으며 오히려 납치당하여 재판에 끌려온 사람이니 억울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비용을 지불한 변호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히만은 신 앞에서는 유죄라고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유대인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은 아이히만을 험악한 얼굴을 가졌거나, 미친 사람이거나,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전형적인 악인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600만 명의 유대인이 사살될 수 있을까.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의사들 중 한 명은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다"라고 탄식했다. 또 다른 의사는 가족과 친구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정상일뿐만 아니라 바람직함'을 발견했다.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성직자는 아이히만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했다.(p79) 그는 평범하고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악인이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결과였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상태가 '도덕적인 이상 상태가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사실'이라 표현했다. 당시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적어도 특정 이념에 매몰되어 있거나 유대인을 향한 분노라도 가지고 있어야 그동안 벌어졌던 끔찍한 악행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싫어할 아무런 이유조차 없었는데, 심지어 그가 당에 가입했던 이유는 누군가 그에게 "친위대에 가입하는 것이 어때?"라고 물었고 그는 "그렇게 하지 뭐"라고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p87)


아이히만이 보여준 악의 근원은 자신이 무죄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자기는 국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니 죄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법과 명령을 충실히 따르면서 양심적이고 근면한 시민이라 생각했다. 그의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재판을 통해 나치로 인해 수백만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그들은 이 재판을 통해 나치 전범의 잔혹한 범죄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유대인의 억울함이 이해되기를 바랬다. 그들의 바람이 분노로 바뀐 이유는 책을 보면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나치와 협력을 했었던 내용들이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유대인을 학살하는데 같은 유대인의 도움이 없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아이히만의 말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아이히만을 평범한 사람이라 묘사하여 좌절감을 주었다. 이제는 단순히 악한 사람이라 판단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몇몇 유대 지도자들이 사사로운 이익이나 안전을 위해 나치를 도와 같은 유대인을 죽였다는 사실은 나치를 떠나 인간 본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양심을 저버린다면 누구나 같은 일을 벌일 수 있고, 그 누군가는 자신이 될 수 있기에 그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이제는 전쟁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던 유대인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아이히만을 전적으로 탓할 수 없게 되었다. 같은 유대인이었던 한나 아렌트가 아니면 감히 이야기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고, 한나 아렌트는 나치를 옹호한고 동족을 멸시한 유대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인의 분노에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이 아이히만 개인의 재판이 아니라 실상은 유대인의 고난을 이야기하는 정치적 재판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괴벨스의 비서, 브룬힐데 폼젤


<어느 독일인의 삶>은 2차 세계대전의 중대한 전범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를 위해 비서로 일했던 브룬힐데 폼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그녀는 아이히만처럼 나치의 가담자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자신의 책임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치의 만행을 종전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2017년 106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폼젤은 인터뷰 마지막까지 권력에 대항할 수 없었던 아주 평범한 사람 중 하나임을 피력했다. 그녀는 나치에서 일했지만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이웃이 유대인이었고, 그들과 친하게 지낼 정도로 유대인에 대한 분노 또한 없었다.


1933년 전에는 누구도 유대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아요. 순전히 나중에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거죠.

<어느 독일인의 삶> 중에서


폼젤이 괴벨스의 비서로 일을 하게 된 이유는 특별한 이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일자리를 위해서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나 분노 없이 나치에 속해 있던 점은 폼젤과 아이히만의 공톰점이었다. 다른 점은 폼젤이 유대인을 자신의 우월감을 위한 승리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은 것과 야망을 가지고 나치에 속해 있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폼젤이 나치에서 일한 이유는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 밀려 선택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이히만 보다 폼젤의 이야기가 좀 더 와닿는다. 이제 어느 누구라도 폼젤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폼젤과 다른 선택을 할 거라고 100%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아주 쉽게 안 그럴 거라 말할 수 있다면, 나만은 남들과 다르거나 특별할 거라 생각하여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것이 아닐까?


자신이 맡은 일에서 어떻게든 잘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되고 이기적인 일인가요? 그게 설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더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그걸 알고서야 누가 그러겠어요? 그 정도까지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는 근시안적이었고 무관심했어요. 

- 브룬힐데 폼젤


<어느 독일인의 삶>의 서문에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폼젤이 숨어 있을지 질문한다. 자신의 물질적 안정을 위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끔찍한 일을 벌어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악의 평범성


20세기는  도덕이 와해된 시기다. 그런 끔찍한 일이 길거리에 넘쳤다. 도대체 악(惡)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한나 아렌트의 통찰로 밝혀진 거대한 악의 실체는 악마와 괴물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 무능함이었다. 악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언제라도 튀어나오는 평범한 요소이며 이것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다.


악은 아이히만이나 폼젤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겪는다면 어디서든 세상에 드러날 수 있다. 이제 우리 또한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에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깊은 성찰을 통한 개인의 각성에 달려있다. 악은 자연스럽고 평화는 의지의 소산이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끔찍한 일이 벌이지지 않도록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옳은 길을 생각하여 파국을 막는 것이다. 세상의 이와 같은 파국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같은 상황,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개인의 각성에 달려 있을 뿐이다


평범한 범죄저는 자기의 범죄 집단이라는 좁은 한계 내에서만 범죄 없는 현실로부터 효과적으로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느끼기 위해서는 단지 과거를 상기하기만 하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살았던 세상과 그는 한때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


독일 국민 전체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은 히틀러나 괴벨스가 만든 '독일 민족을 위한 운명의 전투'라는 구호였다. 이 구호는 세 가지 면에서 쉽게 자기기만에 빠지게 해 주었다. 그것은 첫째로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고 암시했다. 둘째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운명이지 독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셋째로 전쟁은 독일인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이들은 적을 전멸시켜야지, 그러지 않으면 전멸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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