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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라르 Sep 11. 2022

[침묵의 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책

더 이상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40639



바야흐로 심각한 독극물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침묵의 봄> P202



차례로 보는 이야기 순서


1장. 내일의 위한 우화, 싱그러운 봄날의 아침을 맞이해도 새가 모두 사라져 어떠한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상의 마을을 이야기하면서 책이 시작된다.  비록 마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어버린 가상의 마을이었지만 실제 이런 마을은 쉽게 찾을 수 있다.  2장. 참아야 하는 의무, 3장. 죽음의 비술에서는 살충제로 쓰이는 크게 3종류의 물질과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오래전부터 독극물로 쓰였던 바로 비소 계열 물질, 새로 만들어 이전에 없던 염화 탄화수소 계열, 유기 인산 계열이다. 책에는 이 화학 물질을 설명하기 위해 화학식을 알려준다. 화학식을 보고 지레 겁먹어버리면 책이 더 이상 읽히지가 않는다.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알려주는 이야기라서 정독한다면 이해 가능하다. 또한 이 부분만 읽고 나면 그 뒤에는 화학식은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사례 중심의 책이다.


4장. 지표수와 지하수, 5장. 토양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무지하게 쓰이게 되면 물과 토양으로 스며들어가 어떤 현상일 일어나는지 알려준다. 6장. 지구의 녹색 외투, 7장. 불필요한 파괴, 8장.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는 화학물질이 무생물의 세계에서 생물의 세계로 넘어와 생태계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있는 식물이 어떻게 오염되고, 그 오염이 식물에 기생하여 살고 있는 동물에게 어떤 방식으로 넘어와 확산되는지 이야기한다. 오염물질이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 결국 대지와 바다를 어지럽히는 내용이 9장 죽음의 강으로 이어진다


왜 인간은 어리석게도 살충제를 뿌릴까. 10장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11장 보르자 가문의 꿈을 넘어서에서 설명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진 자연네트워크를 무시한 채 인간은 자신들에게 불편하다는 이유로 해충 박멸을 위해 뿌린다. 심지어 인간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곤충까지 박멸 사업에 착수한다. 살충제 회사, 정부, 언론 등이 세금과 같은 돈의 이해관계에 종속된 것이다.


결국 이런 일의 대가는 조용하게 꾸준히 누적되고 나서 일어난다. 12장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 13장 작은 창을 통해서, 14장 네 명 중 한 명에서는 암과 유전질환이 창궐하기 시작한다. 화학물질은 우리 인간 내부에 들어와 많은 것들을 변이시킨다.


인류 전체를 놓고 볼때, 개개인의 생명보다 궁극적으로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유전형질이다. 영겁처럼 긴 시간 동안 짛ㄴ화를 거쳐 만들어진 우리의 유전자는 현재의 모습을 규정할 뿐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담고 있다. 인간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유전자의 변이는 이 시대에 대한 협박, '우리 문명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위협'이다.

<침묵의 봄> 13장 p236

 

해로운 화학물질이 인간 내부에서만 일어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15장 자연의 반격, 16장 밀려오는 비상사태에서 자연이 어떻게 반격하고 복수하는지를 읽는다면 우리 인간은 변명조차 할 수가 없다. 특정 곤충을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를 뿌려웠지만, 그들에게는 불가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성이 생김과 동시에 살충제를 사용한 인간은 더 강한 살충제를 만들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지막 17장 가지 않는 길은 우리 인간이 아직 가지 않는 길, 살충제와 같은 화학물질로 곤충과 싸우는 일에서 자연의 생태계를 존중하며 화학적 방제가 아닌 생물학적 방제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레이첼 카슨



나는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편찬하기 전에 이미 출간한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들었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침묵의 봄>처럼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경고하는 책은 아니다.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카슨이 자연에 대한 깊은 경의와 감탄을 바탕으로 바다라는 미지의 영역을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적 과학 서적이었다. 카슨이 쓴 글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이 책을 가지고 갔다.


<침묵의 봄>은 전작의 아름다움과 조금 달랐다. 추악한 인간의 현실을 마주하는 글이었기에 이 책을 쓰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이 말렸다고 한다.


"카슨, 너는 아름다운 글을 잘 쓰는데 왜 이렇게 추한 글을 쓰려고 하냐. 생명의 경이로움을 써야지"

이에 카슨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겠다. 가장 추한 것을 쓰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뭔지를 드러내겠다.”


그녀의 아름다운 글은 자연에 대한 존중에서 나왔으나,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새소리와 세상 곳곳에 들이닥친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의 소명감을 자극했다. 추한 글을 씀으로써 진정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밝혀내겠다는 카슨의 마음이 전해졌다.



승리 없는 화학전


세계대전에서 화학전은 인간을 향한 전쟁이었지만, 그 이후 상용된 살충제는 거대한 자연을 향한 화학전이었다. 쉽게 해충을 죽일 수 있는 편의에 눈이 멀어 살충제가 자연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해충은 살충제 살포 후 생존능력이 더욱 강해져 오히려 이전보다 그 수가 많아진다. 따라서 인간은 이 화학전에서 결코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그저 격렬한 포화 속에 계속 휩싸일 뿐이다.

<침묵의 봄>


전통적 살충제는 비소 계열이었다. 무맛이라는 특성 때문에 독살에 사용되었던 물질이지만, 곤충에게 살충제 효과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비소가 아닌 인위적으로 합성한 살충제가 사용되었다. 이 살충제는 비소와 완전히 다르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은 염소, 수소, 탄소 결합으로 만들어진 염화 탄화수소계열의 화학물질은 생물에 스며들게 되면 분해되지 않고 축적된다. 잡초와 같은 인간에게 불필요해 보이는 식물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파라티온, 말라티온과 같은 유기인산 계열의 살충제다. 문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 화학물질들이 생태계를 교란하며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주는 데 있다. 인간의 입맛 데로 불필요한 종을 박멸하기 위해 비극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생태계를 통제하려 했다.


지구에는 자연의 무질서 속에서 오랜 시간을 생존해 온 많은 종이 있다. 이런 억겁을 무시하고, 인간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하나의 종을 박멸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 일까?


영화 <가타카>에서는 부모가 DNA를 수정하여 입맛에 맞게 자식을 만들 수 있다. 좋은 DNA로 만들어진 뉴타입은 모두 잘 생겼고, 뛰어난 지능과 신체능력을 가졌으며, 각종 질환에서 탁월한 면역을 가졌다. 편집기술 덕분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욕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오히려 진보는커녕 원시 수준으로 돌아간 퇴보였다. 지구 생태계에서 생물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힘은 하나의 우세종으로 태어날 수 있는 생물 편집기술이 아니라 바로 다양성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기존의 환경에서는 강력해 보인다. 즉 기존의 바이러스, 기존의 질병에는 유리한 위치에 서있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유전자 편집으로 만들어진 뉴타입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환경이 찾아오는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불리한 종이 된다. 생태계는 다양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생명은 혼돈과 절망을 겪음에도 기어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왔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기초적인 생물 감수성도 없이 해충을 박멸하겠다고 화학전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해충은 죽었겠지만 몇몇 해충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내성이 생겨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듯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인간은 더 강력한 살충제를 만들었다. 끊임없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침묵의 봄>에 대한 비난


당시 화학물질로 큰돈을 벌고 있던 화학회사들은 <침묵의 봄>이 달갑지 않았다. 당시 화학 회사는 재료비는 적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산업이었다. 화학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이 권위를 상징하였으며 과학자와 더불어 과학을 모르는 일반인도 각광하는 영역이었다. 바야흐로 인간이 오만한 시대였다. 만약 이 시대에  언론에서 새로운 유해화학제품에 대해 긍정적으로 광고를 했다면 대부분이 그 제품을 사고 싶어 했을 것이다. 화학물질을 통한 부가가치와 자연에 대한 권위를 잘 드러난 사례가 <침묵의 봄>에 나온다. 바로 불개미 소동이다.


불개미는 화물선을 타고 몰래 미국 상륙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가 된 것은 1942년에 어떤 아이가 불개미 집을 발견한 것이 공식 보고가 되었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뒤 우연한 불개미 쇼크사고를 언론이 부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농무부는 살충제 회사에 세금을 주고 대량의 살충제를 사들인다. 불개미는 농가에 피해를 주며 인간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를 들이대어서 불개미 박멸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농가에 피해를 주는 불개미를 박멸함이 목적이었지만  대량의 살충제는 공중에서 뿌리고 살포하여 화학물질은 사실상 농가에 큰 피해를 끼친 사업이 되었다. 웃긴 것은 불개미는 사실 농가나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곤충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박멸 사업을 가능한 것은 언론, 정부, 화학회사가 돈으로 묶여서 만들어진 동맹이었기 때문이었다.


불개미 사건처럼 화학물질과 관련된 이들은 세상 편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침묵의 봄>이 세상에 나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다.  화학물질이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고 우리 인간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내용은 당시 대부분이 싫어하는 내용이었다. 자연은 통제가 가능하다는 과학자부터 화학회사, 정부, 기자까지 레이첼 카슨을 공격했다. ‘노처녀가 무엇 때문에 유전 문제를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타임스는 레이첼 카슨을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으로 뽑았지만, 정작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쓴 시기인 1962년에는 이런 기사를 썼다. '카슨은 공정하지 않게 사실을 부풀려서 사람들을 선동한다.'  이런 근거 없는 비난에 카슨이 답한 말은 비난한 이들을 숙연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여자로서도 아니고, 남자로서도 아니고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침묵의 봄>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관심을 끈 이후, 그녀 주장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한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살충제 공중 살포를 허용한 위원회는 유독성 오염물질 살포에 반대하는 시민 차원의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입법부는 모든 정부 차원에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유독물 살포를 금지하게 되었다. 지식의 '성배'를 주장하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해야 했다. 책 한 권이 자본주의 체제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녀의 도전에서 과학과 정부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시민환경운동이 시작되었다. 카슨은 한 개인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침묵의 봄> 서문

미국 의회 도서관은 <침묵의 봄>을 <코스모스>, <모비딕>, <보이지 않는 인간>과 함께 "미국을 만든 88권의 책"으로 선정했다.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꾸었던 사례다


카슨의 의지를 받아


한 개인이 자연 파괴를 막는 일을 실천하려면 레이첼 카슨처럼 자연에 대한 경의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말보다 자연을 느끼며 감탄할 줄 아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인간은 어떠한 대상으로부터 감정을 느낄 때 대상을 거울 삼아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을 통한 자기 이해와 동시에 대상과의 연결고리를 찾게 된다. 만약 그 대상이 자연이라면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는 어릴 때부터 산과 함께한 클라이머다. 산에서 자라고 산을 오르는 그에게 자연은 소중하기 그지없다. 그 덕분에 그가 읽는 글들 또한 자연과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 미국 등반가들은 랄프 왈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뮤어와 같은 초월적 사상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성장했다. '산에 오르거나 자연을 찾을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는 오래 쓸 수 있으며 산과 바위를 훼손하지 않는 클라이밍 도구를 제작을 목표로 시작된 기업이었다. 지금도 버리지 않는 옷을 만들어 7대, 8대를 지속할 수 있는 사업만이 가치로 두고 있다. 지구가 목적이고 사업은 수단인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경영 철학은 자연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무분별한 살충제를 고발하고 환경을 위해 행동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침묵의 봄> 또한 레이첼 카슨이 자연과 함께하고 관찰한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경의로움을 가졌기에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었다. 카슨이 쓴 책들을 살펴보면 그녀가 얼마나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어떤 감점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해안이라는 이 가장자리 세계에서 육지와 바다가 서로 소통하고 있으며, 바다 생명체와 육지 생명체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과거를, 그리고 그날 아침 바닷물이 새의 발자취를 말끔히 씻어낸 것처럼 전에 이뤄진 많은 것을 지우면서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의 가장자리>


우리는 해안가에 서 있노라면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품은 채 바다를 바라본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제 혈통 깨닫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인간 종이라는 존재가 지상에 머문 시간이 지구 전체 역사를 통틀어볼 때 오직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긴 안목에서 제대로 조망하지도 못한다. 이 모든 걸 가장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랫동안 바다를 여행할 때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과학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사실적으로 설명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아름다운  문학적 감성이 묻어나 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녀가 얼마나 자연을 존중하고 아끼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잠깐 동안 지구에 머물면서 육지를 정복하고 약탈한 것처럼 바다를 제어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도시와 시골의 인공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종종 자기가 살고 있는 행성의 진정한 본질과 그 긴 역사(인류가 존재한 것은 그 속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에 대한 안목을 잊어버린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은 긴 대양 항해에 나서 날마다 파도가 넘실대는 수평선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밤에는 머리 위의 별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지구의 자전을 인식하고, 물과 바다만 존재하는 이 세계에 홀로 서서 우주에서 자기가 사는 행성의 외로움을 느낄 때, 가장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육지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물의 세계이며, 대륙은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수면 위로 잠시 솟아 있는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지금의 아이들은 자라서 자연을 파괴한 선대들을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도 자라서 어른이 되었ㅇ을때 우리와 다른 길을 걸을까? 환경을 아끼는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의무로 생각할까? 너는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 증거로 화학약품의 사용, 산업화 등 우리의 선대들 또한 환경을 어지럽혔지만 우리는 여전히 반성하지 못한채 지구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아마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동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우리의 환경운동은 세계 곳곳 보여지는 이상기후와 이전에 없던 감염병의 발견으로 시작된다. 위기의식에서 환경을 아끼는 마음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때문에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볼 수 있겠지만 이는 모순적이고 지극히 잘못된 순서다. 자연의 복수가 두려워서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고 있기에 자연을 아끼고 사랑해야하는게 먼저이고, 그러면 환경은 그냥 자연스럽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카슨은 오랜세월 바다를 보며 자연의 신비를 상상했다. 카슨이 자연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과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였다. 인간관계에서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 특별해서이다. 도심에만 살아온 사람이 숲속에서 자라는 어린 풀잎 위에 떨어진 물방울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자연을 특별하게 생각할 수고, 감탄과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아끼게 되듯이, 사람도 자연을 사랑하게 되면 아낀다.


새롭고 상상력 풍부하며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침묵의 봄> 17장 중에서



아이들은 당장 숲으로 여행을 떠나고 자연의 곤충과 동물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휴일이 되면 좋은 책을 들고 도심을 떠나 푸른 색감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때 들고 갈 책을 추천한다면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야 자연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는데는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의미를 깨닫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래야 자연과 생물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침묵의 봄>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카슨의 글쓰기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과 레이첼 카슨의 글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과학적 사실을 서술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과학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글은 과학적 사실과 현상을 글로 적은 것을 넘어 그 속에서 피어난 자신의 감정을 담아냈다.


미지의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선원들은, 낯익은 별자리들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을 것이다. 별은 탐험가의 벗이다. 별은 예전에 지구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지금도 우주의 바다로 나선 우주선에 힘이 되어 준다.

<코스모스>
우리가 이제 떠나려는 탐험에는 회의의 정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에만 의존한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탐험은 상상력 없이는 단 한발짝도 뗄 수 없는 여정의 연속일 것이다.

<코스모스>
새가 일년을 날아도 다 갈 수 없는 바다, 그것은 너무나도 광할하고 두렵도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레이첼 카슨이 쓴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마지막 장은 위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글은 호메로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바다라는 과학의 영역과 문학이 만나면 아름다운 글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때, 노래를 들으면 사랑하는 대상을 상상하듯이 카슨은 문학을 읽으면 평소 자신이 빠져있던 바다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만큼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여야 한다는 이유로 카슨의 글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성이 논리를 잡아먹은 식으로 비판한 이들은 객관성과 논리로 무장한 <침묵의 봄>을 출간하면서 비난가들의 비논리가 증명되었다. 그러나 화확물질로 큰 이득을 보는 화학업체 관계자들 에게 카슨의 글은 여전히 꼬투리 잡아야할 대상이었다. 그들은 카슨을 인간보다 벌레를 더 보호하려는 사람이며 너무나 감성적이라 조롱하였다.


"새가 날아가는 걸 보고 좋아하고,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 좋아하는 것이 감상적이라면 나는 내가 감상적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건 자연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면서 인간 정신의 성숙도 지연된다는 것이다."


카슨은 진보의 대상이었던 과학이 본질을 놓치고 자본에 속해 변질되어가는 참담한 시대를 일깨워주었다.


레이첼 카슨의 문학적이면서도 과학의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글을 보면 장엄한 자연을 상상할 수 있다. 그만큼 독자에게 충만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아름다운 글이다. 그녀가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알려준 글쓰기 선생은 바로 자연이다. 자연과 생물학에 경의를 느낄 수 있게 된 카슨은 동시에 글을 써야할 이유와 글감이 생겼다. 무언가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대상을 가지고 에세이를 쓸 수 있고, 우리가 카슨의 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카슨이 바라보는 바다와 자연이 실제로 아름답게 비춰진 진실된 감정이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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