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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Apr 03. 2021

"8번타순 4구 후 타자 주루포기 아웃"

의외로 처음이 아닌 기록

(이미지 출처 : MBC 중계 영상)

   6회 초, 키움 히어로즈가 삼성 라이온즈에 두 점 차로 앞선 주자 1루 상황. 1루에는 나름 통산 52도루를 자랑하는 준족의  주자 김헌곤이, 타석에는 펀치력을 갖춘 타자 이학주가 들어서 있었다. 이학주는 직전 수비 이닝에서 자신의 아쉬운 플레이로 점수를  헌납했기에 속죄타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노볼 투스트라이크로 몰린 뒤 3구째 유인구를 침착하게 지켜본 이학주는, 한가운데로  몰린 빠른 공을 밀어쳐 외야로 보냈다.

  타구는 힘을 잃지 않고 담장을 향해 쭉쭉 뻗어 나갔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뒤 키움 유니폼을 입게 된 이용규도 포기하지 않고 공을 쫓아가, 결국에는 캐스터와 해설위원 모두가  경탄하는 슈퍼 캐치를 해냈다. 2루를 지나 3루로 전력 질주하던 김헌곤은 다시 1루 베이스로 달려갔다. 이용규는 기세를 살려  보살까지 노렸으나, 2루수에게 던진 송구가 중간에 힘을 잃고 시무룩하게 굴러가며 결국 주자를 잡지 못했다.


   '8번 타자 이학주 4구 타격, 좌익수 플라이 아웃'이라는 심플한 문장으로 정리될 상황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문자 중계에 적힌 기록에 의하면 타자 이학주는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나지도 않았고, 몸을 날려 타구를 건져낸 수비수  이용규는 아웃 카운트를 늘리지도 못했으며, 전력 질주로 무사히 1루에 돌아갔던 김헌곤은 '2루수 포스 아웃'이라는 이유로  더그아웃에 들어가야만 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이학주의 타구는 좌측 담장에 부딪힌 뒤 이용규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심판은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MBC 중계 영상)

   사건은 이용규의 점프력이 10cm 모자랐다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학주의 타구는 이용규의 손끝보다 살짝 더 위로 날아가  담장에 맞았고, 그 직후 힘을 잃고 글러브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이로써 타격의 결과는 '좌익수 플라이 아웃'이 아닌 최소 '좌익수  앞 땅볼', 혹은 '펜스 직격하는 안타'가 되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3루심 김성철 심판은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페어  상황을 선언했다.

  그러니 어쩌면 원아웃에 1루 주자가 나간 상태에서 9번 타자의 출루를 기대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은, 최소한 무사 1, 2루라는 찬스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이었다. "8번 타순 4구 후 타자 주루 포기 아웃"이라는 결과만  없었다면 말이다.




'2루 주자'가 된 김헌곤은 1루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1루 주자' 이학주는 1루와 2루 사이에 멍하니 서있었다. (이미지 출처 : MBC 중계)

   하지만 삼성의 타자 주자와 1루 주자, 그리고 3루 주루 코치는 타구가 페어로 선언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2루 주자'가 된  김헌곤은 1루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박진만 코치는 그런 이헌곤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어서 돌아가라며 손짓했다. 이학주는  1루 베이스를 밟고 있지도,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1루와 2루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외야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미지 출처 : MBC 중계 캡쳐)

   키움의 야수들이 3루심의 제스처를 보고 판단한 뒤 수비를 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루수 서건창은 이용규의 송구를  받은 뒤 확실히 2루 베이스를 밟고서 1루수에게 공을 던졌다. 그 결과 2루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1루로 뛰어가던 김헌곤은  포스아웃 처리당했다.

  1루와 2루 사이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던  이학주는 "1루를 밟은 후 베이스 라인에서 벗어나 다음 베이스로 가려는 의사를 명백히 포기(KBO리그 2020 공식야구규칙  5.09 (b)-(2)항)"했다는 이유로 아웃 처리되었다. 그렇게 2점 차 접전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접전으로 둔갑시켰을지도  모르는 상황은, "8번 타순 4구 후 타자 주루 포기 아웃"이라는 결과가 되었다.


   실책과 이해하기 어려운 스트라이크 판정 등 악재 속에서도 승부를 접전으로 끌고 갔던 삼성은, 이학주의 주루포기 이후 추격의  원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감독과 코치진이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와 심판진에 항의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타석에 들어선  9번 타자 김호재는 3구 승부 끝에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이어지는 6회 말에 키움은 이정후와 박병호의 연속 안타, 박동원의  밀어내기 볼넷, 그리고 송우현의 쐐기 적시타로 승기를 잡았다.



● 타자 주자 스트라이크 낫 아웃 상황에서 1루 진루 후 주루포기 아웃

2016년 7월 26일 광주 KIA전에서 스트라이크 낫 아웃 이후 폭투를 틈타 1루에 진루한 김영환 (이미지 출처 : 엠스플 중계 캡쳐)

  놀랍게도 KBO리그에서 '주루포기 아웃'이라는 기록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년 전 여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벌어진 kt 위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바로 그 사례였다.

   득점 없이 7점 차로 뒤쳐지고 있었던 7회 초 2사 1루, 조범현 감독은 9번 박기혁의 타석에서 김영환을 대타로 투입했다.  김영환은 3구째 유인구에 헛스윙하며 삼진을 당했으나, 포수 백용환이 포구를 하지 못해 공이 뒤로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영환은  포수가 백네트까지 굴러가는 공을 잡으러 가는 것을 확인한 뒤, 1루로 뛰어가 베이스를 밟았다. 석연찮은 플레이로 이닝이 끝나지  않은 2사 1, 2루의 찬스에서 이어지는 상위타선. 당시 KIA의 불펜진에는 최영환을 제외하면 믿을만한 투수가 없었다. kt로서는  충분히 해볼 만한 기회였다.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황에서 폭투를 틈타 1루로 진루한 뒤 갑자기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김영환. (이미지 출처 : 엠스플 중계 캡쳐)

  그런데 갑자기 김영환이 아쉽다는 얼굴로 더그아웃에 들어갔다. 이를 지켜본 심판진은 김영환에게 "주루포기 아웃"을 선언했고,  kt의 추격의 불씨는 제대로 타오르지도 못한 채 꺼지고 말았다. 이어지는 수비 이닝에서 kt는 추가실점을 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이튿날 경기 시작 전 황병일 수석 코치(現 LG 트윈스 2군 감독)는 김영환의 "주루포기 아웃"에 대해 코치 간 의사소통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영환은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황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코치가 타자 주자에게 '들어가라'는 지시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당시 1루 주루 코치를 맡고 있었으며 김영환의 1루 베이스 이탈을 저지하지 않았던 김민재 前 코치는 시즌 후  kt 구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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