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내야수 전원 2m의 거인, 타자는 200km에 가까운 타구 만들어야
지난밤에 SNS를 하던 도중 재미있는 이미지를 하나 찾았다. 해태제과 홈페이지에서 진행하는 홈런볼 이벤트의 참여 결과를 캡쳐한 이미지였는데, '내야수의 빠른 판단으로 홈런이 무마되었습니다'라는 결과와 함께 다음에 다시 도전해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트윗 작성자는 이미지와 함께 '대체 어떻게 내야수가 홈런을 잡았냐'는 글을 게시했다.
해당 트윗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내야수'가 '빠른 판단'으로 '홈런 타구'를 잡아내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미 2년 전 야구 콘텐츠 그룹 <야구공작소>가 비슷한 상황을 가정하고 작성한 칼럼이 있었다. 나상인 칼럼니스트는 '건드리지 않았다면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가 펜스를 넘겼을 타구를, 투수가 팔을 뻗어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나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구하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타자는 9.3도의 발사각으로 196.7km 짜리 타구를 만들어야 하며, 투수는 2.5m 높이서 타구를 낚아채야만 했다.
①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속도로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화자는 2018년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쳐냈던 196.7km/h짜리 타구(당시 MLB 역대 최고 속도 홈런 타구)를 실험 속 최소 속도로 가정했다. ② 또한 타구의 발사 각도가 클수록 홈런으로 이어질 확률이 클 것이므로, 포구 지점의 높이를 최대화하기 위해 2019년 빅리그 최장신 투수였던 타일러 글래스노우(2.03m)를 투수로 선정했다. 마운드의 높이는 6cm이며 글래스노우의 윙스팬은 2.4m에 달하므로, 칼럼니스트는 포구 지점이 2.5m까지 될 수 있다고 봤다.
③ 투수가 공을 던지는 지점과 타자의 타격 지점이 짧아야 홈런을 위한 발사 각도가 커진다고 한 화자는 투수의 스트라이드(투구판에서 디딤발까지의 거리)와 익스텐션(투구판에서부터 공을 던지는 순간까지의 거리) 또한 클수록 좋다고 봤다. 글래스노우의 익스텐션은 2.56m, 스트라이드는 2.51m였다. 글래스노우는 투구판보다 2.51m나 앞에서 공을 던지는 셈이다. ④ 타격 지점과 포구 지점 사이의 거리가 멀어야만 투수가 타구에 반응해 공을 잡아낼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 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타격 지점이 낮을수록 유리한데, 나상인 칼럼니스트는 30cm를 타격 지점의 최소 높이로 가정했다.
⑤ : ②와 ③, 그리고 ④의 값을 넣고 보니 타구 발사각은 9.3도가 되어야 했다. 2015년에 스탠튼이 9.3도의 발사 각도로 186.7km/h 속도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든 적이 있으나, 비거리는 73.5m에 불과했다. 나상인 칼럼니스트는 환경과 기상 조건이 타구의 비거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홈에서 외야 방향으로 산들바람이 불고 있는 섭씨 13도의 습도 30퍼센트인 날을 경기 외적 조건으로 가정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타자는 30cm 높이의 공을 발사 각도 9.6도의 196.7km짜리 타구로 만들어야 하고
② 그걸 잡는 투수(혹은 내야수)는 머리 위로 팔을 뻗었을 때 최소 2.5m가 돼야 하며
③ 터무니없이 낮은 각도의 타구가 힘을 잃지 않도록 홈으로 외야 방향으로 산들바람이 불고 있어야 하며, 섭씨 13도·습도 13퍼센트의 날씨여야 한다.
투수의 경우 키움 히어로즈 소속 외국인 투수 타일러 애플러(29)를 마운드 위에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지난겨울 키움과 총액 40만 달러에 계약하며 한국 땅을 밟은 애플러의 키는 196cm로 올해 KBO리그 최장신 투수다. 글래스노우보다 7cm가 작지만 위의 글은 단순히 마운드 위에서 팔을 뻗었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므로, 투구 직후 점프를 한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내야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1루를 제외하면 190cm는커녕 180cm 후반의 장신 내야수도 찾아보기 드물었다. 대부분의 경우 부상을 우려해 외야로 전향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과거 2루·3루·유격을 소화했던 선수는 있었다.
올해 7월 초까지 SSG 랜더스의 1루수로 활약했던 케빈 크론(29)은 2019년까지만 해도 매년 꾸준히 3루 수비를 소화했다. 626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단 아홉 개의 실책만 기록했을 정도로 수비 능력 또한 나쁘지 않았다. 타일러 애플러와 같은 196cm의 큰 키를 가졌으므로 충분히 9.6도의 발사각으로 날아가는 197km/h 짜리 타구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193cm/88kg의 체격을 가진 키움 히어로즈 소속 외야수 임병욱(26)은 입단 동기 김하성이 데뷔 2년 차에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만 해도 '포스트 강정호'라고 불리며 기대받던 대형 유격수 자원이었다. 외야로 포지션을 옮기지 않았다면 한국의 오닐 크루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롯데 자이언츠의 고승민(22) 역시 성민규 단장의 포지션 변경 지시가 없었다면 189cm/92kg의 커다란 몸으로 2루를 책임졌을 유망주. 두 명 모두 운동능력도 뛰어난 만큼 두 팔을 번쩍 들고 수십 센티미터를 뛰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1루는 최고의 은퇴 시즌을 보내고 있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에게 맡길 수 있다. 범위가 좁을 뿐 수비 능력 자체는 일본과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검증됐다.
기상 조건 문제는 간단하다. 겨울에 야구를 하면 된다. '2012 아시아 시리즈 당시 KBO리그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와 개최 도시 연고 구단 롯데의 선수들은, 나흘간 평균 최저 기온 10.45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 넥워머와 암슬리브를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다. 선수들에게는 고역이었겠으나 평균 기온이 13도 남짓한 초겨울의 건조한 날씨는 타구가 쭉쭉 뻗어나가기에 제격이다.
'낮은 발사각도의 라인드라이브 홈런을 날려줄 강타자' 역할은 KT 위즈의 슈퍼 루키 강백호(23)가 맡을 수 있다. 강백호는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낮은 코스의 공도 곧잘 안타로 만들어내는 KBO리그 최고의 배드볼 히터다. 타구의 발사 각도보다는 '강하게 공을 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낮은 발사각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줄곧 만들어낸다. 2년 전에는 타구 속도 186km/h의 라인 드라이브성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유일한 문제는 '197km/h의 타구를 내야수가 잡을 수 있냐'는 것이다. 지난 8월 24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내야 유망주 오닐 크루즈(24)가 위 가정에 가장 근접한 196.9km/h 짜리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만들었으나, 모든 내야수가 선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모습을 보여줬다.
브라이언 스니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감독은 "타구가 더 높았다면 외야석 관중이 다칠 뻔했다"고 평할 정도였다. 만약 발사각 9.3도의 197km/h 타구를 의도한 대로 만들 수 있는 타자가 등장한다면, 상대 팀 벤치는 내야수들에게 잡지 말고 외야수가 잡도록 피하라고 지시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야수들도 1·3루 코치처럼 헬멧을 착용하거나.
① 평균 기온 13도, 습도 30도 이하의 산들바람 부는 날에
② 투수가 공을 던지자마자 두 팔을 쭉 뻗으며 폴짝 뛸 준비가 된 1루수 이대호, 2루수 고승민, 3루수 케빈 크론, 유격수 임병욱이 내야 수비를 보는 상황 속에서
③ 타일러 애플러가 거의 폭투가 될 정도로 낮게 던지고
④ 강백호가 그 공을 발사각 9.3도의 197km/h 짜리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만든다면
⑤ 내야수가 홈런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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