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7년만의 첫 승, 지난 7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1승
키움 히어로즈의 김정인이 5월 1일 마산 키움 - NC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해 5이닝 2실점 1자책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2015년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후, 7년 만에 거둔 1군에서의 첫 승리다.
몇 번이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고, 간신히 기회를 거머쥐었을 때마다 혹독한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기껏 해봐야 1군에서 말소되는 정도의 시련은 오늘의 김정인을 어제의 김정인보다 강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1군에서의 스물다섯 번째 등판에서, 그것도 작년 우승팀의 에이스 투수와의 맞대결에서 이겨냈다. 그의 지난 7년은 헛되지 않았다.
처음 프로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팬들에게 큰 주목을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커맨드가 정교하지 않은 130km/h 후반대 패스트볼을 구사했고, 몸무게가 63kg밖에 나가지 않을 정도로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프로에 입단한 뒤 구단에 처음 받았던 요구가 "살을 찌우라"였을 정도였다.
성적도 좋지 않았다. 데뷔 후 2년간 퓨처스리그에서만 뛰면서 45경기에 나와 148.1이닝을 던졌고, 206개의 안타와 102개의 사사구를 허용하며 7.1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년 차였던 2016년에는 퓨처스리그에서 규정 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많은 경기에 나섰고, 던지는 만큼 점수를 내줬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에게 있어서는 자신감을 잃고 방황해도 이상하지 않을 성적. 하지만 끊임없이 무너졌던 경험은 김정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17경기에 나와 2승 4패 1홀드 평균자책점 9.10으로 부진하던 2015년의 여름, 김정인은 형 김정빈과 함께 퓨처스 올스타전에 참가하며 '역시 야구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진 속에서의 강행군에도, 힘들어하기보다는 경기에 내보내 주는 감독과 코치에게 감사해했다.
2016시즌이 끝나고 나서는 어깨가 좋지 않아 캠프에 참가하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국내에 머물렀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성실히 재활함은 물론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집중하면서 겨우내 10kg을 찌웠다. 체격이 좋아지니 공에 힘이 붙었다. '130km/h 후반대 패스트볼을 던지는 빼빼 마른 우완 투수'에서 '147km/h 강속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던질 줄 아는 투수'로 거듭났다.
'제구되는 147km/h'을 던질 줄 알게 된 김정인은 1군에서 본격적인 기회를 받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처음으로 1군에서 10경기 이상을 나서며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외국인 투수와 토종 1선발이 부상으로 신음하자 선발투수로서 기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기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별다른 변화구가 받쳐주지 않는 140km/h대 직구는 1군 타자들에게 있어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었다. 2018년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7.1이닝 7실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뚜렷한 한계만을 노출한 뒤 2군으로 강등되었다. 퓨처스리그에서는 3점대의 수준급 선발 요원이었지만, 1군에서 통할 실력이 아님을 모두가 알게 됐기에 콜업은 없었다.
기껏 힘겹게 몸을 만들어 구속을 늘렸더니, 빠른 공 하나로는 프로에서 통하지 않았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1군 투수가 될 수 있을까? 김정인의 해답은 간단했다. 변화구를 연마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박승민 투수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평범한 직구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땅볼 유도에 용이한 투심 패스트볼을 연마했다. 군 입대 후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익히기 시작했다.
혹독한 담금질의 성과는 결과로서 금방 드러났다. 2019년 퓨처스리그에서 평균자책점 2위, 다승 1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유망주로 거듭났다. 감독과 코치가 먼저 김정인에게 찾아가 기대가 섞인 칭찬을 건네기 시작했다. 셰인 스펜서 전 고양 히어로즈 감독은 상무 피닉스 야구단과 고양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김정인을 붙잡고 "어렸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고, 특히 투심 패스트볼이 좋아졌다"며 1군 투수코치의 기대가 크다고 이야기했다. 손혁 전 키움 감독도 부임 직후 열렸던 2019 KBO 시상식에서 김정인에게 "몸이 좋아졌다"며 칭찬했다.
데뷔 6년 차, 2020년. 그는 전역을 했고, 사회인의 신분으로 돌아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인지 전역 한 달 전부터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 퓨처스리그에서도 5점대 방어율로 성적이 나빠졌고, 1군에서는 두 경기에 나서는 동안 1이닝 6피안타 6실점으로 무너졌다.
이 정도는 김정인에게 있어 시련의 축에도 들지 않았다. 연말의 악몽에 대해 "불안감이 컸다. 멍청한 생각이었다"라는 말로 일축하고 넘어갔다. 한순간의 안 좋은 모습을 곱씹기에 김정인은 아직 많이 젊었고, 잠깐의 부진에 것에 발목을 잡히기에는 너무 많은 고비를 넘어왔다.
그리고 데뷔 7년 차, 2021년. 김정인은 2년 전부터 연마했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5월 1일 경기까지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이 1할 4푼 3리, 슬라이더의 피안타율이 1할 1푼 1리에 불과하다. 패스트볼의 제구는 여전히 완벽하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변화구가 받쳐주니 쉽게 공략당하지 않고 있다.
올해 김정인의 다섯 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5월 1일, 창원 NC파크에서는 유독 외야로 향하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첫 타자 박민우에게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선두타자 홈런이 김정인의 가슴 속을 흐트려놓지는 못했다. 김정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결국 5회 말을 끝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까지 단 두 점밖에 내주지 않았고, 기세가 오른 타자들이 NC의 외국인 에이스 웨스 파슨스를 공략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히어로즈 구단의 지명을 받고 데뷔한 '히어로즈' 소속 투수 중, 세 번째로 오랜 시간이 걸려 일궈낸 첫승. 그 1승은 결코 운이 따라준으로써 얻어낸 승리가 아니기에, 김정인의 지난 7년간의 모든 피와 땀이 깃든 승리이기에 더욱 값지다.
2015년 말 ‘김정인 선수 일낸다’라는 제목의 글로 인해 히어로즈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선수가 있다. 팬들은 제구력은 물론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했다는 말에 그를 속는 셈 치고 기대했지만, 당시의 김정인은 결코 팬들의 기대에 미치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천천히 팬들의 바람에 걸맞은 선수가 되어갔다. 2017년에는 147km/h 강속구를 던졌고 이듬해에는 투심 패스트볼을 연마하며 날개를 달았다. 군 복무 기간 동안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1군에서 선발투수로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고, 다섯 경기 중 네 경기서 5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데뷔 첫 승을 거두게 되었다.
김정인이 데뷔 첫 승을 거두게끔 만들어준 것은 신데렐라를 왕자와 결혼시켜준 요정의 마법도, 인어공주에게 두 다리를 달아준 마녀의 묘약도 아니었다. 부족한 실력에 대한 아쉬움은 곧 이를 보완해 성장하겠다는 열정으로 변모했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문제점에 무릎 꿇고 타협하지 않았다. 체중 증량부터 시작해 제구면 제구, 구속이면 구속. 모든 것을 잡기 위해 노력한 결과, 비로소 '1승'을 거두게 되었다.
하지만 김정인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10승 투수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100승 투수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 올라갈 것이다. 처음에는 '김정인 오늘일 내냐?!'라는 생각과 함께 TV 앞에 앉았을 이들이, 이제는 진심으로 김정인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