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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Apr 25. 2021

방만했던 키움의 육성, 주저앉은 히어로즈의 순위  

[2편]

1 - (https://brunch.co.kr/@positiveness/148)


  상대 팀의 전력 보강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FA 협상, 어느 순간 구단 운영자금 수금용으로 전락한 2 드래프트, 그리고 이해할  없는 신인 드래프트 지명.  모든 것이 합쳐져 2021년의 키움 히어로즈가 탄생했다. 모든 포지션에 구멍이 생겼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 남 좋은 일만 해준 FA 협상

키움은 지난 겨울 FA 자격을 얻은 김상수를 사실상 떠밀다시피 하며 SSG 랜더스로 보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내야가 불안한 팀에 5억 원을 받고 FA 3루수를 넘겼다. 불펜이 치명적인 문제였던 팀에는 40홀드 투수를 내줬다. 그것도 사인 앤 트레이드로. 경쟁 상대는 약점을 극복하고 더욱 강팀이 되었지만, 히어로즈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키움 구단이 FA 선수를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내보내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였다. 당시 FA였던 채태인은 3할 2푼 2리의 고타율과 0.888이라는 준수한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를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 부상과 부진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인 데다가, 2017시즌 종료 직후 박병호가 KBO리그로 복귀하며 입지가 애매해졌다. 체력 안배 차원에서 백업 1루수로 기용한다면 좋겠지만 히어로즈 구단은 채태인을 잡을 의지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어로즈는 채태인을 '보상선수 없이 놓아주겠다'고 선언했다. 당시에는 타 구단에 소속된 FA 선수와 계약을 체결할 시 해당 선수의 전년도 연봉의 200%와 구단이 정한 보호선수 20명 외 선수 1명을 보상해야 됐다. 또는 보상 선수옶이 전년도 연봉의 300%로 보상을 대신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선수 출혈 없이 준수한 베테랑 1루수를 데려갈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채태인의 2017년 연봉은 3억 원이었고, 이는 채태인을 영입하기 위해 FA 금액 외에도 9억 원을 지출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 어느 구단도 30대 후반의 15홈런도 못 치는 1루수에게 그러한 지출을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고형욱 당시 넥센 히어로즈 단장은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채태인을 롯데 자이언츠에 보냈다. 보상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채태인을 이적시키는 대신에, 롯데가 2017년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지명했던 좌완 투수 박성민을 받아온 것이었다. 이는 히어로즈 구단 역사상 첫 사인 앤 트레이드였던 동시에, 히어로즈가 '구로구의 히어로'가 아닌 '9개 구단의 영웅님'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롯데로 이적한 채태인은 이듬해 15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롯데의 1루 자리를 지켰다. 히어로즈가 영입한 박성민은 2년간 퓨처스리그에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끝에 현역으로 입대했다. 한편 채태인의 사인 앤 트레이드 때 롯데 구단이 뒷돈 2억 원을 얹어줬음이 드러나면서, 히어로즈가 더 좋은 선수를 받아올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2018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던 김민성은 사인 앤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LG 트윈스에 이적했다. 양석환의 입대로 3루수 자원이 전무했던 LG는, 23억 원(계약 총액 18억+사인 앤 트레이드로 키움에 지불한 현금 5억)에 30대 초반의 국가대표 출신 3루수를 얻었다. 한편 키움은 2019시즌 내내 3루 공백으로 진땀을 뺐고, 5년 만에 진출한 한국시리즈에서도 3루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취득한 김상수는 2+1년 총액 15억 5천만 원에 계약한 뒤 곧바로 SSG 랜더스에 트레이드되었다. 하재훈, 서진용, 박민호의 이탈로 불펜 문제가 심각했던 SSG는 현재까지 '김상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한편 김상수를 보낸 직후 SSG와 마찬가지로 필승조가 연이어 이탈한 키움은, 결국 '임시 마무리'를 찾아내는 데 실패해 현재 최하위 순위로 추락한 상황이다. 김상수를 보내며 받아온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 지명권'이 얼마나 큰 효험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이 모든 사인 앤 트레이드가 당시에는 할 만한 계약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는 결국 과정보다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치 2011년의 '송신영, 김성현  박병호, 심수창, 15억' 트레이드가 그때만 해도 LG의 승리로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까지의 사인 앤 트레이드는 모두 그 결과가 선명히 보인다. 그 결과는 '키움이 남 좋은 일만 해줬다'는 것이다.



#. 과감함 사라진 2차 드래프트, 신고선수 영입

이제는 히어로즈 불펜진의 핵심이 된 양현. 그는 히어로즈가 2016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자원이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2년간 4~5점대 방어율로 가능성을 보이다가 2점대 불펜 투수로 도약한 포크볼러. 풀타임 20홈런이 기대되는 20대 중반의 군필 내야수와 최근 3년간 132.1이닝을 던지며 9승 17홀드 2세이브, 2.9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불펜 투수. 키움은 이 모든 선수들을 2차 드래프트에서 건져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키움은 2차 드래프트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지명하지 않았다.


  키움은 거액의 FA를 통한 전력 보강이 여의치 않은 구단이다. 최근에는 내부 FA 이지영과 오주원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8년 총액 85억 원을 챙겼던 이택근을 제외하면 수십억 대 FA는 전무하다.

  그렇기에 키움은 트레이드, 2차 드래프트, 신고선수 영입 등의 다른 방법을 모색해왔다. 선수 팔이로 매년 버텨야 했던 2000년대 후반에도 김상수, 김민성, 마정길 등 팀에 도움이 될 자원을 반대급부로 받아왔다. 2010년대 KBO리그를 대표하는 홈런타자 박병호는 15억 원이 포함된 현금 트레이드로써, 한국 프로야구에 전무후무한 '한 시즌 200안타' 기록을 세운 서건창은 신고선수로서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키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던 2019년의 '철벽 불펜'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KBO리그 최초 40홀드 기록을 세웠던 김상수는 10년 전 장원삼과의 트레이드 때 현금과 함께 받아온 선수였다. 2점대 방어율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김성민은, 2017시즌 시작 전 좌완 파이어볼러 김택형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주며 데려왔다. 윤영삼은 2014년 2차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양현은 2016년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지명했다. 이영준은 신고선수 계약을 통해 키움에 들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2010년대 중반까지와 같은 공격적인 유망주 영입을 찾아보기 힘들다. 2018년 2차 드래프트에서 모든 라운드를 건너뛰었을 때, 넥센 관계자는 "내부 자원도 육성할 선수가 많다"는 이야기로 한 명의 선수도 지명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마찬가지로 유망주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었던 KT와 NC 다이노스는 모든 라운드에 참가했다. 그 결과 각각 20대 중반의 군필 필승조 좌완 투수 조현우,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호성적을 올릴 수 있는 특급 잠수함 투수 박진우를 품에 안았다. 2020년 2차 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보상금인 3억 원의 가치가 있는지 고민했다"며 모든 라운드를 패스했다. 이 해에도 노성호, 홍성민 같은 신데렐라가 등장했다. 한편 1라운드에서 지명되어 키움에서 KT로 이적한 이보근은 49경기에 나와 9홀드 6세이브, 평균자책점 2.51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한 해에 2명 이상의 육성선수를 영입한 것은 2018년이 마지막이다. 이때 입단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변상권이다.



#. 좋은 선수의 보강이 안 되는 신인 드래프트

윤정현.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위에서 언급한 모든 문제는 사실 "키움 히어로즈니까"라는 말과 함께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구단 운영을 위해서, 타 구단이 보상금으로 부담스러워하는 FA 선수를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처분할 수도 있다. 2차 드래프트는 모든 라운드에 참여할 시 6억 원의 비용이 소모된다. 미래가 불투명한 선수들에게 그 정도의 비용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양질의 유망주를 뽑고, 이들을 빠르게 키워낼 수 있다면 말이다. 현재의 키움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어느덧 실시한 지 3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2019년 신인 드래프트부터, 1차지명부터 2차 3라운드까지만 살펴보자. 당시 키움은 1차지명으로 박주성을, 2차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차례로 윤정현, 조영건, 그리고 주성원을 지명했다. 박주성과 조영건은 오늘날까지 가능성'만'을 보여주고 있다. 꾸준한 성장으로 몇 년 후가 기대되지만 즉전감은 아니다. 주성원은 육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포수 포지션 특징상 빠른 판단이 어렵다. 그리고 오는 5월 17일에 만 28세가 되는 윤정현은, 1군과 2군 모든 곳에서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 키움은 윤정현을 지명하기 위해 송명기, 고승민, 정우영 등의 고교 스타들을 패스했다.

  이어서 2018년 신인 드래프트 지명 결과를 보자. 1차지명으로 고교야구계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졌던 안우진을, 그리고 2차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고교야구 최고의 외야수였던 예진원과 추재현을 지명했다. 예진원은 3년째 퓨처스리그에서도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추재현은 2020시즌이 시작되기 전병우와 맞트레이드 되었다. 그리고 2차 1라운드에서 영입한 투수는, 윤정현과 마찬가지로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몸담다가 조용히 복귀한, 올해로 만 30세를 맞이하는 김선기였다. 김선기는 어제 경기에서 1.2이닝 4피안타 3사사구 3실점을 기록했다.


  눈앞의 성적보다는 4~5년 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신인을 지명하는 모습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몇 년 뒤 신인 지명의 성과가 확실히 난다면 이에 대해 뭐라 말할 팬들은 아무도 없다. 트레이드를 통해 상위 라운드 유망주를 긁어모았고 성과를 냈던 2017년 신인 드래프트, 토종 에이스 최원태와 박주현, 송성문, 송우현 등 유망주를 발굴한 2015년, 그리고 김하성를 지명했던 2014년 신인 드래프트처럼.

  그러나 확실한 것은 2010년대 후반의 신인 드래프트에서 예전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신인 드래프트가 다른 팀보다 전력 보강 면에서 앞설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는 팀이, 몇 년째 신인 지명으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에는 당장 퓨처스리그에서 기용할 외야수 자원이 없어 임지열이 외야 전 포지션을 보는 촌극이 발생했고, 올해는 1군의 외야 공백을 메울 자원이 없어 2루수 김은성이 좌익수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다. 가능성을 보고 뽑은 신인들은 퓨처스리그에서도 주목하기 어려운 성적을 기록 중이다. 좀처럼 미래를 보고 싶어도 무엇을 보며 희망을 꿈꿔야 할지 어렵다.


#. 그 모든 일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히어로즈가

  경쟁팀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는 FA 폭탄 세일. '선수 수급의 장'이 아닌 '구단 운영자금 수급의 장'으로 전락한 2차 드래프트. 가능성 넘치는 신인을 보며 "2000만 원만 더"라는 생각을 할지 "쟤를 안 사면 2000만 원 세이프"라고 생각할지 궁금한 신인 영입. 그리고 윈나우를 부르짖으며 까마득한 미래의 그림을 그리는 신인 드래프트.


  그 모든 일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히어로즈가 탄생했다. 주전 마무리 조상우가 이탈하자 공백을 메워줄 스탑갭 자원이 없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래성 불펜진이 완성되었다(팀 불펜 평균자책점 리그 9위). 선발진은 새로 영입했던 외국인 선수 조쉬 스미스가 부진하며 어그러졌고(팀 선발 평균자책점 리그 8위), 코어 선수들의 부진과 부재한 유망주로 타선은 정체되었다(팀 타율 9위, 홈런 9위, 타점 9위, OPS 9위). 그러니 시즌 초반부터 10위로 주저앉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24일 경기 8회말. 패배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팀을 구해낸, 박정음의 간절했던 주루.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그 어느 때보다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스타트 라인 앞에서 넘어진 영웅들이다. 그럼에도 팬들은 매일 6시 30분마다 TV를 켜고, 핸드폰으로 스코어를 확인하거나, 기꺼이 자신의 저녁을 희생하며 야구장으로 향한다.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다는 얘기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들을 당사자도 눈 앞의 파인 플레이에 주먹을 불끈 쥐고, 부상에 대한 걱정은 잊은 채 홈플레이트를 향해 제 몸을 던지며, 각자도생의 분위기라는 낭설에 반박하듯 동료의 투지에 열광한다. 포기하지 않았다. 적어도 경기를 뛰는 선수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팬들은.

  물론 열정만으로는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오기만으로 타오르는 불꽃은 한 번 꺼지면 다시 불씨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지금처럼 구단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는 그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성적과 이를 지켜보는 시선으로 이에 대한 답이 나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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