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27 서건창 ↔ 정찬헌 트레이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절 속에서 살고 있는 영웅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강귀태와 유선정이 포수 마스크를 번갈아 쓰던 시절, 신고선수로 입단해서는 뭉툭한 체형과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주전 자리를 차지해버린 허도환이라든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연달아 팔려 가던 암흑기 시절 모두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줬으며, 2012시즌 시작을 앞두고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확인하러 가겠다"는 출사표로 모두를 울렸던 김시진 감독이라든가. 그리고 현금 트레이드로 인해 멍울진 팬들의 속마음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돌아온 듯했던 이택근이라든가. 그리고 더그아웃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든든했던 외국인 에이스 듀오 브랜든 나이트와 앤디 밴 헤켄이라든가.
허도환은 주전 3년 차부터 워크에씩에 문제를 보이더니 박동원과의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며 한화 이글스로 떠나버렸다. 김시진 감독은 전력이 확실히 갖춰진 2012시즌, 본인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에서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택근은 후배 폭행 논란으로 인해 초라한 말년을 보내고 은퇴했다. 한때 팬들에게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유격수 보유팀'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줬던 강정호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야구계 복귀 가능성이 일천하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밤&밴 원투펀치도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다. 정든 홈구장을 외압에 떠밀려 떠나게 되었고, 고척 스카이돔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투·타의 기둥이었던 손승락, 유한준과의 추억도 목동에 놓고 왔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이별과 마주해야 했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나간 세월만큼 잡음도 많았고 'KBO리그의 골칫덩이'였던 히어로즈는 '언더독 구단', '가난하지만 꿈 또한 가난하지는 않은 영웅들'과 같은 찬사로 불리우던 시기를 지나 다시 'KBO리그의 골칫덩이'로 돌아왔다. 2010년대 KBO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박병호는 3년째 뚜렷한 하락세를 겪고 있다. 공수 양면에서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서건창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시절의 영웅들을 사랑했던 우리네는 여전히 그들을 응원한다. 그들은 단순히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히어로즈의 살아있는 역사요, 팬들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존재를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며 응원팀에 대한 애정을 유지한다. 겉모습은 여러모로 달라졌을지 몰라도 내가 좋아하던 그 팀이 맞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구단 역시 사랑스러웠던 시절에 대한 추억을 가슴 속 깊숙이 품고 살아감을 느끼니까. 그렇기에 프랜차이즈 스타는 눈앞에 보이는 숫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단순히 예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해서 물건 버리듯 해서는 안 된다.
히어로즈 구단은 오늘 프랜차이즈 스타 한 명을 잃었다.
서건창이 몇년도에 프로 데뷔를 했고, 언제 히어로즈에 왔으며, 어떠한 커리어를 보냈는지에 대해 의미하는 것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는 일체의 장황한 설명도 필요 없이 "키움 히어로즈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말하면 곧바로 생각 나는 팀의 상징이요, 프렌차이즈 스타였다. 인간 서건창의 서사시는 히어로즈 구단의 역사와 놀라울 정도로 궤를 같이한다.
아마추어 시절 주목받는 유망주였으나 작은 키와 부상 경력으로 프로에 지명받지 못했다. 명문대 진학이 충분히 가능했던 성적이었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프로 구단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는 길을 택했다. LG 트윈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1년만에 방출된 이후, 현역으로 입대했다. 어쩌면 그의 야구선수로서의 삶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2000년대 후반에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 시기의 히어로즈 역시 모기업은커녕 스폰서도 없는 재정 상황으로 인해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고등학교 은사의 추천으로 히어로즈 구단에서 선수 테스트를 보게 되었고, 그를 눈여겨본 박흥식 前 2군 감독이 "2000만원만 더 쓰자"며 프런트를 설득해 가까스로 프로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되었다. 2012시즌 시작 전 스프링 캠프에서 김시진 전 감독의 눈에 띄어 정식 선수로 전환되었고,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다. 히어로즈 구단에서의 첫 시즌이자 자신의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2012년에 잠재력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신인왕으로 선정되었다. 2014년에는 KBO리그 최초로 200안타를 쳐내는 등의 맹활약으로 MVP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2015년에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주춤했으나, 이듬해 완벽히 부활하며 개인 통산 세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후에는 별다른 타이틀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한 팀을 대표하는 2루수로서 모자람이 없는 활약을 펼쳐왔다. 이 또한 2012년 깜짝 활약으로 가능성을 보이더니 2014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당대 최고의 명문 구단이었던 삼성 라이온즈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늘날까지 KBO리그의 다크호스로 손꼽히고 있는 히어로즈의 모습과 일치한다.
문우람부터 시작해서 강정호, 이택근, 한현희, 안우진 등 수많은 히어로즈 선수들이 팬들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서건창은 버건디 유니폼을 입고 뛰어왔던 지난 10년간 사생활 면에서 그 어떤 잡음도 만들지 않았다. 항상 다소곳하게 웅크린 타격폼으로 타석에 들어서서는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만들어냈고, 지금의 주루 플레이가 마치 자신의 선수 인생 마지막 러닝이라는 듯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의 꾸준히 하락하는 성적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은 있었을지언정 '서건창'이라는 존재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2021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취득할 예정이며 현재 히어로즈 구단의 재정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서건창과의 이별을 미리 준비한 팬 또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즈 구단은 씨알도 안 먹힐 윈나우를 이유로 통산 597이닝 4점대 후반 방어율따리 럭키 문성현과 서건창을 맞트레이드했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보름 전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출국한 제이크 브리검은 한국으로 돌아올 시기를 알 수 없다. <엠스플뉴스>에 의하면 키움 관계자는 "다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브리검 아내의 몸 상태가 여전히 안 좋다 (...) 현재 상황에선 아마 브리검이 8월 안으로 돌아오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2021시즌이 끝날 때까지 복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토종 선발 원투 펀치였던 한현희와 안우진이 불미스러운 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갑작스레 생긴 세 자리의 선발 공백을 과연 누가 메꿀 수 있을까? 구단으로서는 이승호, 조영건, 김정인 등의 카드로 남은 시즌을 완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 테다. 시즌 후 FA가 되는 서건창은 3년째 뚜렷한 하락세를 걷는 중이다. 정찬헌은 이번 시즌 12경기에 선발로 나와 58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4.03의 평균자책점과 6승 2패를 기록했다. 지난 몇 년간 내부 FA를 대하던 구단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서건창을 LG로 보내는 것이 구단에게나 선수 본인에게나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이번 트레이드는 지극히 합리적인 트레이드일지도 모르겠다. 트레이드는 비즈니스다. 선수도, 기자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팬들에게까지 비즈니스일 순 없다. 이재국 <스포티비뉴스> 기자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트레이드를 '사랑하던 연인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이라고 비유하며 "일방적인 이별 통보의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파이어 세일의 아픔을 잊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나. 현금 5억 원에 김민성을 보내고, 신인 드래프트 2차 4라운드 지명권에 김상수를 보낸 아픔은 벌써 치유되었나.
2018년 육성 선수로 히어로즈 구단에 입단해 2020년 1군에 데뷔했던 변상권은 "(서)건창이 형이 롤모델"이라며 "육성 선수로 입단해서 이렇게 잘 되셨다.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1군에 더 오래 있으면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도 히어로즈 하면 서건창이었고 서건창은 '히어로즈'였다. 이제 히어로즈에는 서건창이 없다. 내가 알던 영웅 군단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