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히어로즈]
9개 구단이 겨우내 총 1430억의 다년 계약을 체결하는 가운데 한 푼도 쓰지 않고서도 단독 2위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엄청난 성과지만 후반기에도 선전하기 위해서는 트레이드나 외국인 선수 교체를 통한 외부 전력 영입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키움 히어로즈는 '외국인 교체는 없다'고 못 박는 동시에 트레이드 마감일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7월이 지나갔고, 1위와의 승차는 7경기로 벌어졌다. 그들은 어떤 '히든카드'를 믿고 있기에 이토록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일까?
10승 1무 8패의 성적으로 7월을 마무리했다. 어느 팀을 만나든 모두 이길 것 같던 기세가 사뭇 꺾인 모습이다. 올스타 브레이크 종료 이후의 여덟 경기에서는 3승 1무 4패로 5할 승률도 지키지 못했다. 리그 최하위권의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를 상대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다. 어느덧 1위 SSG 랜더스와의 승차는 7경기로 벌어졌다. 한편 3위 LG 트윈스에는 단 한 경기 차로 쫓기고 있다.
'리그 상위권의 투수진, 평균 이하의 타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단은 송성문과 야시엘 푸이그가 이정후를 받쳐주는 타선을 기대했지만, 7월까지도 그런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송성문은 현재 KBO리그에서 KIA 타이거즈의 황대인 다음으로 많은 잔루를 기록한 타자다(195명). 푸이그는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2년 차 신인 김휘집보다 WPA(Win Probability Added, 승리 확률 기여도)가 낮다. 5월까지 6개의 홈런을 쳐냈던 고졸 루키 박찬혁과 유틸리티 플레이어 김태진이 복귀했다. 적어도 지난 여덟 경기 동안에는 게임 체인저가 되지 못했다.
전반기 내내 기대에 못 미쳤던 푸이그는 후반기 출발 또한 안 좋다. 타격 성적은 여전히 미묘한 데다가, 첫 경기부터 2루타를 아웃으로 둔갑시키는 황당한 주루플레이로 코칭스태프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6월부터 꾸준히 불안한 투구를 하고 있는 투수 타일러 애플러는 24일 삼성전을 마지막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했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나쁘지 않지만 너무 많은 타구가 장타로 이어진다(피장타율 .426/피OPS .758). 짧은 이닝을 완벽히 막아야 하는 불펜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키움은 아무런 트레이드도 외국인 선수 교체도 하지 않았다. 푸이그와 애플러는 본헤드 플레이에 곧바로 문책성 교체를 당하거나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는 등 현장의 신뢰를 단단히 잃었다. 하지만 프런트는 계속해서 '외인 교체는 없다'라는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난 시즌 안우진과 한현희의 이탈로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자 프랜차이즈 스타 서건창을 내주며 정찬헌을 받아왔던 키움이다. 2년 전에도 장영석+3억 ↔ 박준태, 추재현 ↔ 전병우+추재용 등의 트레이드로 갭스탑 자원을 영입하며 전력 공백을 최소화했다. 올해는 문제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승부수도 없었다.
홍원기 감독은 키움이 SSG를 바짝 따라붙었던 지난 7월 초, "우리의 목표는 SSG를 잡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우리 플랜대로 큰 이상 없이 전반기를 잘 마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키움은 SSG와의 전반기 마지막 3연전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경기 운영으로 루징 시리즈를 기록했다.
아무튼 데드라인은 지났고 트레이드를 통한 외부 자원 영입은 없었다. MLB 신인 드래프트, 트레이드 이후 로스터 정리 등으로 많은 마이너 선수들이 방출될 시기이기에 외국인 선수 교체는 가능성이 있겠지만 나머지 공백은 내부 선수로 메워야 한다.
이번 시즌을 던진 게 아니라면 분명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역대급으로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것일 테다. 키움이 믿고 있는 '후반기 히든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올해 1군 경기에 30타석 미만 들어선 타자&15이닝 미만 투구한 투수 중 1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선수를 찾아봤다.
예진원
1999년생, 174cm/82kg, 좌투좌타 외야수
데뷔 시즌이었던 2018년 이후 처음으로 퓨처스리그에서 3할 이상의 고타율을 올리고 있다. 홈런이 하나도 없음은 물론 2루타도 4개밖에 없지만, 지난 3년간 지독한 방황을 겪었음을 생각하면 컨택 능력을 회복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희망적이다. 7월 한 달 동안에는 3할 7푼 9리의 고타율을 올렸다. 1군 엔트리 멤버 중에서도 이정후를 제외하면 이 정도의 성적이 기대되는 외야 자원이 없다.
지독히 오랜 시간 안 터진 노망주 같지만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의 군필 외야수 자원이다. 1군 경기에 나설 때마다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도 5년간 겨우 157타석에 들어섰을 뿐이다. 예진원의 서비스 타임은 아직 매우 많이 남아있고, 2차 2라운더 출신의 유망주가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7월 내내 1군 엔트리에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기서 경기 후반 대수비 요원으로 투입됐던 박준태, 부상 복귀 이후로도 예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이용규 대신 1군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퓨처스리그에서 뽐낸 컨택 능력만 그대로 보여줘도 타선에 활기를 더할 것이다.
임지열
1995년생, 180cm/92kg, 우투우타 외야수
북부리그에서 가장 높은 OPS를 기록하고 있다. 남부리그까지 범위를 얿혀도 KIA의 톱 유망주 출신인 최원준(상무)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2루타(15개), 홈런, 장타율, 순장타율 모두 리그 1위의 성적이다. 특히 순장타율의 경우 규정타석을 채운 퓨처스리그 타자들 중 유일한 2할대를 기록 중이다. 7월에는 32타수 10안타 타율 1할 1푼 3리의 성적을 올렸는데, 10개의 안타 중 일곱 개가 장타였다(2루타 4개, 홈런 3개). 현시점에서 가장 잘 치는 2군 타자다. 지난달에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한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팀이 기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임지열은 전형적인 2군 본즈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타자다. 지난 9년간 2군에서 3할 1푼 7리의 타율과 .906의 OPS를 기록했을 정도의 '2군 폭격기'다. 하지만 임지열에게도 억울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1군 통산 타석 수(71타석)가 이번 시즌 대수비 요원으로 기용되고 있는 박준태(76타석)보다 적을 정도로 변변한 기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진원은 지난 시즌 100타석이 넘는 기회를 받으면서도 1할대 타율에 그쳤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임지열은 한 시즌 1군 최다 타석이 30타석이었다.
전력 구상에서 배제되는 수준으로 기회를 못 받다 보니 팬 사이에서는 구단에서 방출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추측이 사실이더라도 본인이 미래를 비틀 수 있을 정도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다. 키움이 정말 타선의 생산력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8월에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임병욱
1995년생, 187cm/90kg, 우투좌타 외야수
이정후가 포스팅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로 떠나면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할 것이 유력한 사나이. 6월까지만 해도 전역 후 1군 엔트리 합류가 가능할지 의심되는 수준의 성적이었으나, 7월 들어 180도 달라졌다. 지난 한 달 동안 24타수 13안타(2루타 3개, 홈런 2개) 타율 5할 4푼 2리로 대폭발했다. 이미 전 세계의 임병욱 팬들은 그가 전역하는 날에 맞춰 고척 스카이돔을 찾아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있다.
9월 말에 전역하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이 되자마자 경기장에 돌아온다 할지라도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 1군 적응 기간까지 감안하면 포스트시즌부터 본격적인 활약을 펼친다고 생각해야 한다. 임병욱이 어렵지 않게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쥘 수 있도록 최대한 높은 순위에서 정규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 과제다.
주승우
2000년생, 185cm/85kg, 우투우타 투수
꾸준히 2군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면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제구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낮은 피안타율로 상대 타자를 억제하고 있으며, 거의 매 이닝 삼진을 잡아낼 정도로 훌륭한 구위를 자랑한다. 소화 이닝이 다소 적지만 구단의 철저한 관리 때문에 그럴 뿐, 주승우의 이닝 소화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7월 1일 LG전 4이닝 59구, 7월 10일 한화전 5이닝 60구, 7월 26일 SSG전 4이닝 49구).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서도 최고 150km/h의 빠른 공을 뽐내며 맹활약해 감투상을 받았다.
김선기
1991년생, 186cm/96kg, 우투우타 투수
주승우와 함께 꾸준히 2군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K/9(8.23), BB/9(2.33) 모두 퓨처스리그에서 더 보여줄 게 없는 수준이다. 140km/h 초중반의 포심 패스트볼과 완성도 높은 슬라이더, 커브는 이미 1군에서도 증명됐다.
어쩌면 키움 구단은 이번 시즌 우승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이 생각하던 것처럼 수뇌부 역시 전반기의 선전을 '운이 좋아서'라고 냉정히 판단했을 수도 있다. 윈나우를 위해 핵심 유망주를 내주며 즉시전력감을 영입하는 '빅딜'은 장기적으로 팀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KBO리그 최고의 타자인 이정후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스포츠 언론은 종종 키움을 '육성 강팀'이라고 추켜세우지만, 키움의 타선은 매년 뚜렷하게 약화되고 있다. 2014년 대권에 도전했을 당시 외야를 지켰던 유한준과 이택근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2015시즌 이후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했던 박병호의 공백은 2년 뒤 한국으로 돌아온 박병호에 의해 메워졌다. 3년 전에는 비시즌에 LG 트윈스로 이적한 3루수 김민성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해 준우승에 그쳤다. 한때 '넥사스 레인저스'라는 별명을 가졌던 키움의 타선은 이제 '이정후의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내년 겨울, 이정후가 포스팅 자격을 얻어 꿈을 좇아 떠난다면? 그때도 프런트는 "우리의 갈 길을 갈 뿐"이라며 난세의 영웅을 기다릴까?
관중들에게 공놀이를 선보임으로써 수익을 꾀하는 프로야구단의 최우선적 목표가 '우승'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성적을 포기하고 하위권을 노리는 '탱킹' 또한 장기적으로 높은 곳을 노리기 위해 취하는 전략이다. 조금이라도 더 뚜렷이 우승의 가능성이 보일 때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지난 7월은 그렇지 않았기에 팬들에게 성적 이상의 실망을 안겼던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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