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히어로즈] 08.23 ~ 08.28
"선발의 이름값에 따라서 승패의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야구는 재미있는 스포츠가 아닐 겁니다." 정우영 캐스터가 지난 24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를 중계하기 전 했던 말이다. 이날 키움은 통산 타율 2할 1푼 9리의 30세 타자의 끝내기 안타로 6연패의 늪에서 벗어났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까지만 해도 1위 SSG 랜더스를 1.5경기 차로 쫓던 키움은 후반기 들어 선수단 전체가 부진과 부상으로 신음하며 침체에 빠졌다. 탄탄했던 선발진은 외국인 투수 타일러 애플러와 5선발 한현희, 정찬헌이 부진한 상황 속에서 '토종 에이스' 최원태까지 허리 부상으로 이탈하며 초토화됐다. 자랑이었던 불펜은 필승조 겸 마무리 역할을 맡았던 이승호(옆구리 통증)와 문성현(팔꿈치 부상)이 이탈하며 붕괴했다.
8월 16일부터 8월 23일까지 내리 졌다. 선발투수가 분위기를 내주고 불펜이 경기를 내줬다. 타선은 연패 기간 경기당 평균 3.17득점에 그쳤다. 어디 가서 3위 팀이라고 하면 깜짝 놀랄 만큼 끔찍한 경기력 속에서 패배가 계속됐다. 159km 강속구를 던지는 안우진도, KBO리그 최고의 투수 에릭 요키시도, 김하성의 뒤를 이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것으로 기대받는 이정후도, 메이저리그에서 132홈런을 쳤던 야시엘 푸이그도 연패를 끊지 못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히어로즈를 구원한 영웅은 전병우였다.
24일 경기에서 스타팅 멤버로 출장하지 못한 전병우는 한 점 차로 뒤쳐진 9회 말 이사 만루 상황에서 송성문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날 경기 전까지 전병우의 시즌 타율은 2할 1리. 한편 상대 투수 정해영 지난 3년간 12승 11홀드 60세이브를 올린 21세의 슈퍼루키였다. 정해영은 150km 강속구와 함께 피안타율 2할 2푼 6리의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투수고, 전병우는 이번 시즌 슬라이더 구종 상대 타율이 2할 1푼 6리에 불과한 타자였다. 승부는 뻔해 보였다. 전병우는 그 뻔해 보이는 상황을 뒤집고 슬라이더를 받아쳐 좌익수 뒤로 날려 보냈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던 동아대 출신 전병우는 데뷔 4년 차에 센세이셔널하게 1군에 데뷔했다. 정규시즌 후반 1군에 콜업되어 27경기를 뛰는 동안 3할 6푼 4리의 타율과 1.048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 3홈런 13타점을 기록했다. 직전 2년 동안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군 문제를 해결한 20대 중후반의 내야수는 전준우의 뒤를 잇는 차세대 주전 3루수로 기대받았다.
전병우의 '별의 순간'은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2019년을 앞두고 당한 허리 부상이 몸통 회전으로 타구에 힘을 싣는 타격 스타일에 악영향을 끼쳤다. 28경기 54타수 5안타의 초라한 성적으로 1군 2년 차 시즌을 마친 뒤 키움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지난 2년 동안 233경기에서 600타석 넘게 기회를 받았으나 주전급 선수로 도약하지 못했다. 올해는 송성문이 주전 3루수로 낙점받으며 1루로 밀려났다. 뛰어난 수비를 자랑했으나 아쉬운 타격 탓에 김수환, 김태진 등에 경기 출장 시간을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마다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병우는 지난 24일 경기 전에도 이미 두 번의 끝내기를 만들어낸 바 있다. 지난 4월 3일 롯데전에서는 연장 10회 말에 마무리 최준용의 강속구를 받아치며 키움의 시즌 첫 승리를 선물했다. 6월 2일 삼성전에서는 당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김승현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 경기를 끝냈다.
<스탯티즈>에 따르면 전병우는 이번 시즌 하이 레버리지(중요한 순간)가 3.0보다 높을 때 4할 타율과 1.239의 OPS를 기록했다. 쉽게 말해 승패 결정의 중요도가 평소보다 3배 높은 상황에서 시즌 성적(타율 2할 2리, OPS .605)보다 훨씬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셈이다.
타석에서 전병우가 시즌 3호 끝내기 안타로 6연패를 끊는 동안, 마운드에서는 김성진이 대량 실점을 막으며 승리의 불씨를 살렸다.
24일 KIA전에서는 3이닝 3실점 후 강판된 윤정현, 2이닝 4실점을 합작한 하영민과 이영준의 다음 투수로 올라와 2이닝 3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키움은 김성진이 무너지지 않는 사이 4득점 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26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두 점 차로 앞선 6회 말 무사만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한 점도 내주지 않고 NC의 중심타선을 막아냈다. 리그 최상위권의 컨택 능력을 자랑하는 박민우에게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3-2-3 병살을 이끌어낸 뒤, 다음 타자 손아섭을 뜬공으로 잡으며 위기를 넘겼다. 7회 말에도 계속해서 공을 던진 김성진은 박건우 - 양의지 - 닉 마티니로 이어지는 NC의 강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202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에서 키움의 지명을 받은 김성진은 지난 시즌 1군 45경기에서 40.2이닝을 던지며 1승 3패 2홀드 평균자책점 5.31을 기록했다. 올해는 홍원기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하며 전반기 동안 8경기 7이닝 평균자책점 7.71에 그쳤다. 하지만 퓨처스리그에서 착실히 실력을 갈고닦으며 다음 기회를 노렸고, 7월 말부터 조금씩 출장 기회를 늘려나가고 있다.
선발의 이름값에 따라서 승패의 결과가 정해진다면, 야구는 재미있는 스포츠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야구는 재밌다. 야구공은 둥글고 선수들은 어느 상황에서나 똑같지 않다. 작은 키와 느린 구속으로 스카우트의 외면을 받던 선수도 1점대 철벽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97순위로 지명된 대졸 선수가 리그 최고의 교타자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관중들은 어제의 약체팀이 오늘의 강팀을 꺾길 기대하며 야구장으로 향한다.
앞으로 스물일곱 경기를 더 치르면 키움의 2022년 정규시즌이 끝난다. 어느덧 1위와의 승차가 13.5경기까지 벌어진 키움의 마지막은 24일 KIA전의 끝내기 같은 유쾌한 해피 엔딩일까, 아니면 지난 주말 2연전 같은 무기력한 새드 엔딩일까. 아직 야구공은 시즌 최종전이라는 홈 플레이트를 향해 끊임없이 회전하며 날아가는 중이다. 그 결말이 무엇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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