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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Sep 19. 2022

172cm·140km 좌완은 파워 피처를 꿈 꾼다

[지난주 히어로즈] 09.13 ~ 09.18 / 키움 히어로즈 김재웅

김재웅이 지난 14일 KIA전에서 9회 말 두 점 차 리드를 지켜내며 시즌 10호 세이브를 달성했다. 시즌 중반까지 마무리가 아닌 셋업맨으로 뛰었던 김재웅은 이날 경기 전까지 27홀드 또한 기록하고 있었다. 구단 역사상 첫 단일 시즌 20홀드·10세이브. KBO리그 40년 역사를 톹아봐도 한 시즌에 20홀드와 1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한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일 시즌 10홀드·20세이브 기록'은 프로야구 역사상 단 두 명이 기록했다. 2009년 KIA 타이거즈의 마무리었던 유동훈과 올해 SSG 랜더스의 필승 계투 요원인 서진용이 그 주인공이다. 서진용은 184cm의 큰 키를 이용해 150km/h가 넘는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유형의 투수다. 유동훈은 평균 구속이 110km/h에서 130km/h로 느리지만, 타자들에게 생소한 언더핸드 투구폼으로 지저분한 구위의 변화구를 던져 땅볼을 유도하는 유형의 투수였다. 두 명 모두 일반 야구팬도 납득할 확실한 강점을 가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역대 첫 20홀드·10세이브' 대기록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KBO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김재웅의 키는 174cm로,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투수들 중 최지광(삼성, 173cm) 다음으로 작은 키다. 본인이 밝힌 실제 키는 172cm로 프로필에 적혀 있는 것보다 더 작다. 최지광은 150km/h대 강속구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지만 김재웅의 최고 구속은 144km/h로 KBO리그 평균 구속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작은 체구를 만회하기 위해 극단적인 오버핸드 스로로 공을 던지기 때문에, 유동훈처럼 투구폼에서 이렇다 할 이점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러든 말든 김재웅은 타자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 쳐볼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자기 공을 던진다. 다양한 변화구로 느린 구속을 만회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평균 구속 140km/h 패스트볼의 구사율이 60%를 넘어간다. 제구력이 좋지만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을 공략하는 투구보다는 한가운데에 꽂아 넣는 윽박지르기식의 피칭을 선호한다. 한 마디로 오승환, 고우석 같은 강속구 마무리 투수들과 다를 바 없는 파워 피처다. 단지 키가 조금 작고 공이 조금 느릴 뿐. 




● "유희관 선배님이요? 영광이지만 파워풀한 투수가 되고 싶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감이 넘쳤다. 키가 작고 공이 느리다는 평가에. '더 열심히 운동해서 지명받을 수 있었다'고 답할 수 있는 고교 선수가 얼마나 될까 (사진 출처 : 스포츠동아)

돌이켜보면 김재웅은 1군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 전부터 유달리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투수로서는 매우 작은 172cm의 키를 갖고 있든, 130km/h 중·후반대의 느린 공을 던지든 아무 상관 없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프로에 입문하고 나서 3년째 1군 무대를 못 밟고 있는데도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조급해하는 티 하나 나지 않았다. 그런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식의 마인드가 지금의 김재웅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3년 전 봄이었다. 우연한 기회를 얻어 김재웅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작은 키와 느린 구속, 적은 볼넷이라는 프로필만 보고 두산 베어스의 유희관과 비슷한 투수라고 생각했다. 본인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자 "유희관 선배님과 비교된다니 영광이다. 선배님 같은 선수가 돼도 좋지만 파워풀한 투수가 되고 싶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깜짝 놀라 롤모델이 어떻게 되냐고 묻자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류현진이라고 답했다. 류현진을 닮고 싶어서 그의 경기를 자주 보며 연구했단다. 그러고 보면 리그 평균보다 다소 느린 구속의 패스트볼을 자신 있게 던지는 점,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구사한다는 점이 LA 다저스 시절의 류현진을 닮았다.


김재웅은 고교 시절 덕수고등학교 야구부의 에이스로서 93.1이닝 83탈삼진 4승 평균자책점 2.13 엄청난 성적을 올렸다. 황금사자기 준결승전에서는 동산고를 상대로 9이닝 11탈삼진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키가 작고 공이 느리다'는 이유로 2차 6라운드까지 지명 순번이 밀렸다. 당시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더니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운동해서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장 1군에서도 통할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어떤 타자든지 몸쪽에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교한 제구력' 같은 대답을 예상했던 당시에는 어쩜 이렇게 당찬 선수가 있냐며 내심 감탄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김재웅은 이미 그때부터 '파워 피처'를 향한 꿈을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 "제 위닝샷은 직구입니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지난 9월 8일, <더그아웃 매거진>이 김재웅을 2년 만에 재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왔다. 요즘 가장 자신 있는 위닝샷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몸쪽 직구"라 답한 것을 읽고 여전히 김재웅이구나 싶었다. 172cm의 키로 140km/h의 평균 구속으로 파워 피처를 외치며, 자신을 눈에 보이는 프로필만으로 외면했을 야구 관계자들 앞에서 매 순간 증명하는 선수. 강속구 투수도 어려워하는 4번 타자에게 칠 테면 쳐보라며 몸쪽 꽉 찬 공을 던지는 투수. 그게 바로 김재웅이다. 


20년 전 동의대학교 야구부의 주장 겸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음에도 172cm의 작은 키를 이유로 지명받지 못했던 손시헌은, 두산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후 KBO리그를 대표하는 공수 겸장 유격수로 대활약하며 수많은 단신 타자들의 기회를 만들어줬다. 오늘의 172cm 좌완 투수 김재웅은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됨으로써 수많은 단신 아마추어 투수들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172cm·140km 좌완의 꿈은 작은 키를 갖고도 프로 데뷔를 꿈꾸는 또 다른 김재웅들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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