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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May 02. 2023

아무도 몰랐다, 그가 리그 최고의 유격수가 될 줄은..

[3·4월의 히어로즈] 키움 히어로즈 에디슨 러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이 있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세 번 운다는 것이다. 키움 히어로즈 소속의 외국인 타자 에디슨 러셀은 여태까지 키움 팬들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세 번 울렸다. 처음 영입됐을 때는 '20대 중반의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으로 팬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후 4개월 동안 공·수 양면에서의 처참한 활약으로써 분을 이기지 못한 팬들의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버건디 유니폼을 입은 2023년 현재는 골든글러브 급 성적으로써 구로구 일대를 기쁨의 눈물바다로 만드는 중이다.




● 끝없는 추락, KBO리그에서의 실패, 멕시코에서 잠적한 지난 2년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3년 전 테일러 모터의 대체 선수로서 한국 땅을 밟았을 당시의 러셀은 경기 전 훈련하는 모습만으로도 모두의 이목을 끌었던 슈퍼스타였다. 고작 KBO리그에 올 선수가 아니었고, 모두가 반년 뒤 미국으로 금의환향하리라 믿었다. 4개월 뒤 러셀은 감히 KBO리그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으며 멕시코행 비행기를 알아봐야 했다.


2020년은 키움에게 있어 나름의 의미를 갖는 한 해였다. 우선 전년도에 포스트시즌 준우승을 거둠으로써 '적어도' 가을야구에 나가야 하는 입장이 됐다. 2020시즌이 끝나고 나면 공·수 양면에서 팀을 지탱하던 국가대표 유격수 김하성이 포스팅 자격을 얻기도 했다. 다만 비시즌부터 자꾸만 스텝이 꼬였다. 연봉 문제로 인해 MVP급 성적을 올렸던 외국인 타자 제리 샌즈와의 재계약에 실패했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령탑을 교체하며 '초보 감독'에게 팀의 명운을 맡겨야 했다. 다행히 6월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잘 풀렸으나 1위를 차지하기에는 한 걸음이 모자라 보였다. 키움은 그 한 걸음을 위해 3개월짜리 외국인 타자에게 53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의 키움행 소식은 야구계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러셀, 그가 누구인가? 2012년 MLB 드래프드에서 1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며 2014년 <MLB.COM> 선정 유망주 순위 5위에 이름을 올렸던 초특급 유망주. 2015년 빅리그에 데뷔하자마자 안타왕 출신의 스탈린 카스트로를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은 괴물 신인. 데뷔 2년 차에 20홈런을 쏘아 올리며 올스타 유격수로 선정됨은 물론 소속팀 시카고 컵스에게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트로피까지 선물한 슈퍼스타. 이 모든 것이 러셀을 가리키는 수식어가 아닌가? 웬만한 선수는 청춘을 전부 바쳐도 달성하지 못할 업적을 러셀은 겨우 22세의 어린 나이에 이뤘다. 그의 미래는 더없이 찬란해 보였다.


하지만 2017년부터는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추락을 겪었다. 2017년에는 21개의 홈런이 12개로 줄었으며 타점은 95개에서 43개로 반토막 났다. 평균 이하의 컨택 능력을 펀치력과 클러치 능력으로 만회하는 스타일이었던 러셀로서는 치명적인 성적 변화였다. 2018년에는 처음으로 2할 5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으나(.250) 고작 다섯 개의 홈런을 넘기는 데 그쳤다. 매년 4할을 넘기던 장타율은 3할 4푼으로 주저앉았는데 출루율은 변함이 없었다. 타석에서 완전히 강점 없는 타자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 사생활 문제까지 겹치며 경기 외적으로도 잡음을 일으켰다. 2018시즌 후반 가정폭력 혐의를 시인하며 40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은 러셀은 2019년에 컵스로부터 받은 마지막 기회조차 살리지 못하며 방출됐다. 무적 신세가 된 러셀은 2020년 팬데믹으로 마이너리그가 폐쇄되면서 미국 땅에서 직장을 얻지 못했다.


KBO리그에 와서도 러셀의 추락은 계속됐다. 타석에서는 2할 5푼대의 평범한 타율과 3할 초반의 낮은 출루율, 그리고 단 두 개에 불과한 홈런으로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했다. 수비면에서는 김혜성과 김하성을 각각 외야와 3루로 밀어낸 것이 무색하게도 실책성 플레이를 연발할 뿐이었다. 러셀의 활약에 힘입어 8월까지만 해도 리그 2위를 달리던 키움은 최종 순위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손혁 감독은 실직자가 되었고, 러셀은 버건디 유니폼도 벗어야 했다. 북미 땅에 이어 아시아 시장에서도 러브콜을 받지 못한 러셀은 지난 2년을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에서 보냈다. 




● 포기를 모르는 남자, 멕시코 리그 이어 KBO리그도 정복할 기세

러셀의 재영입 기사가 떴을 때, 그의 활약을 기대한 키움 팬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키움 히어로즈 공식 홈페이지)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된 2017년부터 'MLB 올스타'보다는 '멕시칸 리거'라는 칭호가 익숙해져 가던 지난해까지, 러셀의 지난 6년은 실패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야구 알러지에 걸려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플로리다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방망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 대신 멕시코에서부터 다시 빅리그까지 올라가겠다는 듯이 방망이를 돌렸다.


러셀의 2021시즌 성적은 좋지 않았다. 3할 1푼 9리의 타율과 .900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 그리고 17개의 홈런은 4할 타율 정도는 쳐줘야 타율왕을 먹는 멕시코 리그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이 시점에서 러셀은 은퇴를 선택해 자신의 고통을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러셀은 은퇴 대신 더욱 절치부심하는 편을 택했다. 2022시즌 정규시즌 전체 90경기 중 80경기에 출장한 러셀은 3할 4푼 8리의 타율과 1.120의 OPS, 24홈런 8도루 74타점 72득점으로 멕시코 리그를 폭격했다. 생애 두 번째 올스타의 영예를 안았던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멕시코에서 가장 뜨거운 유격수였다. 이러한 활약은 푸이그와의 갑작스러운 결별과 2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유격수 문제로 신음하던 키움 구단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팬들의 반응은 3년 전과 180도 달랐다. 그는 '이번에는 잘해보자'라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에는 너무 처참히 실패했다. 영입 직전 2년간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었던 이력도 현역 메이저리거 영입이 트랜드로 자리 잡은 KBO리그 상황에서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스프링캠프에서 키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팬들뿐만 아니라 야구계 종사자들마저 깜짝 놀래켰다. 근육질의 메이저리거는 온데간데없고 웬 푸짐한 덩치의 외국인이 자신의 몸무게 증량은 전부 벌크업이라 우기고 있었다. 러셀은 시범경기 14경기서 2할 3푼 5리의 타율에 그쳤다. 그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현재까지의 활약만 놓고 봤을 때, 키움의 러셀 재영입은 말 그대로 '대성공'이다. 지난 한 달 동안 21경기서 3할 4푼 2리의 타율과 .889의 OPS, 166.7의 wRC+(Weighted Runs Created, 조정 득점 창출력)를 기록했다. 모두 리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치다. 특히 득점권 상황에서는 29번 타석에 들어서는 동안 6할 5푼 4리의 타율을 기록함으써 24타점을 쓸어 담았다. 160이닝 동안 단 하나의 실책만을 범한 수비 또한 안정적이다. 벌크업(?)으로 인해 수비 범위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핸들링만큼은 예술이라는 평이다. 지난해 키움의 주전 유격수였던 3년 차 신인 김휘집은 "러셀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정확한 포구와 간결한 동작으로 정확한 플레이가 이루어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야, 형 백악관에서 오바마랑 사진 찍은 사람이야" 하지만 자만은 없다 

(사진 출처 : 에디슨 러셀 본인 SNS)

러셀이 지금 같은 활약을 계속 이어간다면 올스타는 물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도 무리가 아니다. 러셀 본인 또한 "올스타전에 출전하거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 대단한 영광일 것 같다"라며 개인 타이틀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만일 러셀이 성공적인 2023시즌을 보낸 뒤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빅리그에서 KBO리그를 거쳐 멕시칸 리그까지 떨어진 뒤 다시 빅리그 복귀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커리어의 마지막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듯했던 러셀이 반등의 기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단연코 포기하지 않는 자세였을 테다.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최고 유망주 대우를 받거나 주전으로 뛰다가 한반도 땅을 밟은 외국인 선수 중에서는 KBO리그에 대해 '잠시 거쳐 가는 곳'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많다. 러셀과 비슷한 수준의 커리어를 쌓았던 루크 스캇(2014년 SK)과 제임스 로니(2017년 LG)는 이러한 생각이 오만한 워크 에식으로 이어졌고, 결국 한국에 온 것이 그들의 커리어를 끝내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러셀은 끔찍한 부진으로 팀의 5위 추락에 일조했던 2020년에도 워크에식에 있어서만큼은 호평을 받았다. 그렇기에 타지에서 발버둥 쳤던 지난 3년이 전부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었다. 러셀은 홀로 6타점을 쓸어 담았던 26일 경기 뒤 인터뷰에서 "올해는 2020년과 달리 스프링캠프부터 잘 준비했다"라며 "KBO리그 경험이 있어서 투수 공략도 이전보다 나아졌다. 나는 원래 노력하는 선수"라고 밝혔다.


이날 러셀은 '한 경기 6타점 기록'의 심정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미소지으며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이미 해봤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시카고의 '108년 저주'를 깬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메이저리거 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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