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히어로즈] 08.01~08.06 키움 히어로즈 이주형
리그 최고의 타자 이정후가 후반기 두 번째 경기서 발목 부상을 당했다. 정밀진단 결과 부상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해 수술을 받으면서 사실상 시즌아웃 됐다. 눈앞의 성적 대신 미래를 택한 구단은 2024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유망주 두 명을 받으며 토종 에이스 최원태를 LG 트윈스로 보냈다.
구단으로부터 사실상의 시즌 포기를 통보받은 선수단은 트레이드 이후 공수 양면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5일까지 7연패를 달렸다. 1위와 18경기, 5위와 9.5 경기 차로 벌어지고 말았다. 이를 지켜본 일부 팬들은 키움 히어로즈가 '끝장났다'고 손가락질 했다.
그런데 이를 어찌해야 할까. 내일도 버건디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설 선수들은 아직 방망이나 야구공을 통해 할 말이 많다. 키움의 야구는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중'일 뿐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에피소드의 중심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퓨처스리그에서 3할 5푼을 쳤음에도 구단으로부터 철저히외면 받았던 '최원태 트레이드의 또 다른 주인공', 이주형이 있다.
이주형의 야구는 늘 순탄하게 풀렸다. 정확히 말하면 순탄히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퓨처스리그를 폭격하고 현역 군 복무 기간 동안 보디빌더 남부럽지 않은 몸을 만들었음에도 그에게 돌아오는 기회는 없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준비된 특급 신인'이라고 칭송했으나 정작 무대 위에서 배역을 맡기지는 않았다.
경남고등학교 시절부터 특급 유망주였다. 이미 2학년 시즌에 3할 4푼 8리의 타율과 .962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 그리고 2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이듬해 드래프트 최대어로 주목 받았다. 컨택과 장타력, 그리고 주루 능력까지 전부 갖췄다는 평이었다. 3학년 때는 한술 더 떠서 신인 드래프트 직전까지 4할 타율을 치며 고교야구를 평정했다. 그러나 막상 드래프트 당일이 되자 모든 구단에서 불안한 수비를 이유로 지명을 미뤘다. 2차 2라운드가 돼서야 LG가 이주형의 이름을 불렀다.
고교 졸업 직후 첫 시즌부터 퓨처스리그를 폭격했다. 부상으로 시즌을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26경기 113타석 동안 3할 5푼 6리의 타율과 1.099의 OPS를 기록했다. 안타 31개 중 13개가 장타였으며 도루 성공율도 73%로 준수했다. 스무 개의 볼넷을 얻어 나가는 동안 단 11개의 삼진만을 당했을 정도로 선구안까지 탄탄했다. 만전의 몸 상태로 실전에 돌입한 이듬해에도 부침 없이 2군 최고의 타자 중 하나가 되었다. 단순히 성적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루키 시즌에도 나쁘지 않았던 주루 센스와 선구안을 가다듬으며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LG가 이주형을 1군 경기에 중용하는 일은 없었다. 드래프트 때와 마찬가지로 수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포지션 딜레마를 지켜본 여러 구단은 2020년부터 일찍이 트레이드 카드로 이주형를 요구했다. 적어도 LG에서 그의 자리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올스타 2루수 안치홍을 보내는 대가로 이주형을 요구하는 파격 거래를 제시하기도 했다. 2021시즌을 앞두고 중견수로 포지션을 정했지만 김현수-홍창기-채은성으로 이어지는 LG의 외야에는 빈틈이 없었다. 결국 고졸 2년 차의 특급 신인은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뛸 기회까지 포기하고 시즌 중 현역 입대라는 초강수를 택했다.
군인으로 지내는 동안 여느 운동선수에도 꿇리지 않는 근육질의 몸을 만드는 등 혹독한 자기관리를 했다. 그 덕에 18개월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LG에는 여전히 이주형의 자리가 없었다. 그가 군대에 간 사이 LG가 국가대표 외야수 박해민을 FA로 영입하고 또 다른 유망주 문성주가 주전으로 자리 잡은 탓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수년 전 내려놓았던 2루 수비 훈련까지 다시 시작했다. 그랬더니 자신보다 겨우 다섯 살 많은 신민재가 주전 2루수로 도약하고 말았다.
이주형은 이번 시즌 1군 18경기서 16타석의 기회를 받는 데 그쳤다. 스타팅 라인업에 포함된 경기는 단 한 경기였다. 트레이드 전날이었던 7월 28일에는 8회 초 대타로 나와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난 뒤 곧바로 전문 백업 요원인 최승민으로 교체됐다. 여기까지가 '프로야구 선수' 이주형의 첫 번째 대단원이었다.
대타로서 단 4개의 공을 지켜 봤던 게 전부였던 경기를 치른 직후 소속팀이 바뀌었다. 30년 만의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던 LG가 끝내 이주형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키움은 프로야구단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시즌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언론과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은 이주형은 "이정후 선배와 거론되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다"며 눈치를 봐야 했다.
스스로 "전력 외 선수였다"라고 돌아볼 정도로 일종의 낙인이 찍혔던 프로 1기. 리그 최고의 투수와 트레이드되었다는 부담감. 구단에서 선발 출장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지만 1군 통산 31경기 35타석이 커리어의 전부인 만 22세의 선수에게는 중압감이 될 수도 있는 불안정한 기회. 천근 같은 부담감에 연신 뻣뻣한 스윙을 휘두르다 2군행을 통보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주형에게는 주전으로서 1군 그라운드를 휘저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한없이 기뻤나 보다. 어제까지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자신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찬 시선을 열광으로 완벽히 뒤바꾼 모습을 보면 말이다.
7번 좌익수로 경기에 나선 첫날의 첫 타석부터 상대 팀 선발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의 4구째 체인지업을 밀어 쳐 중전 안타를 만들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4구 만에 승부를 봤지만, 대타로서의 단 한 타석이냐 주전으로 나선 경기의 첫 타석째냐의 차이가 결과를 바꿨다. 이튿날부터는 수비 능력을 인정받아 주전 중견수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매 경기서 최소 하나씩의 안타를 치더니 키움에서의 세 번째 선발 출장 경기였던 1일 LG전에서는 이적 후 처음으로 멀티 출루에 성공했다(1안타 1볼넷). 이튿날에는 아예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그다음 날에는 1회부터 큼지막한 스윙으로 잠실 야구장의 우측 담장을 넘기며 데뷔 첫 홈런을 쏘아 올렸다.
지난 3년간 31경기 35타석의 기회만을 받았던 이주형은 트레이드 이후 여덟 경기 동안 34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3할 6푼 7리의 타율과 1.106의 OPS, 2홈런 6타점 5득점으로 퓨처스리그에서 기록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성적을 올렸다. 이주형은 6일 경기 후 인터뷰에서 "키움에서는 한 경기에 3~4타석씩 꾸준히 내보내주시니까 첫 타석에서 치지 못하더라도 다음 타석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되돌아 볼 수 있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창단 직후 자금난에 시달리며 주축 선수들을 팔아치워야 했던 넥센은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병호, 김민성 등이 국가대표급 타자로 성장하면서 포스트시즌 단골 진출 팀으로 발돋움했다. 목동 야구장에서 고척 스카이돔으로 홈 경기장을 이전하고 나서는 김하성, 이정후, 안우진 등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선수들을 메이저리그도 군침을 흘릴 정도의 대선수로 키우며 '포스트시즌 진출은 성에 차지 않는 팀'이 되었다.
2023년 8월 7일 현재 키움은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경기(101G)를 치르는 동안 가장 많은 패배(57패)를 기록했다. 단독 10위 삼성보다 3푼 높은 승률로 9위에 머무르는 중이지만 경기 수를 생각하면 꼴찌로 시즌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이후 12년 만의 정규시즌 최하위. 이로써 키움의 야구는 완전히 끝났다고 봐야 할까? 글쎄, 적어도 내일 오후 6시 30분이 되면 다시 연패의 사슬을 끊기 위해 발악할 선수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거포 1루수 유망주 김수환은 16일 만의 선발 출장 경기였던 6일 NC전에서 3타수 2안타 1볼넷 3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그는 올해 2군에서 3할에 가까운 타율과 1이 넘는 OPS를 기록하는 등 완벽히 스텝업했다. 약 40일 만에 부상을 털고 돌아온 김휘집은 대타로 나선 복귀 첫 타석에서부터 안타를 기록하더니 어제 경기에서는 사사구만 3개를 얻어 나갔다. 제구력이 고질적인 약점인 장재영은 5일 경기서 5이닝 동안 단 2개의 볼넷만을 내줬다. 느린 공이 약점으로 지적받던 이종민은 6일 경기서 최고 구속 144km/h를 기록했다. 퓨처스리그에서는 이주형과 함께 키움으로 넘어온 고졸 신인 김동규가 최고 147km/h의 빠른 공을 던지며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연패의 흐름을 막지 못한 이들의 발 구름은 아직 미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성장과 분전은 분명 히어로즈의 야구가 다음 대단원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이정후가 주인공이던 장에서 바로 다음 장으로. 그리고 다가오는 챕터의 주인공 중 하나는 분명 이주형일 것이다. 트레이드 직후 연일 안타를 뽑아내고 있지만 "내가 온 후로 팀이 연패를 하고 있어서 신경 쓰인다"며 꼭 연패를 끊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드러낸 이주형 말이다.
잔여 경기에서 드마라틱한 연승을 거두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든가 하는 시나리오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토록 입고 싶었던 프로 유니폼을 벗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 중인 이들의 이야기가 새드엔딩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지켜봐 주시라. 영웅들이 이대로 망하는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