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히어로즈] 08.08 ~ 08.13 키움 히어로즈 김휘집
매년 초가을에 열리는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약 110명가량의 아마추어가 10개 구단으로부터 프로야구 선수가 될 기회를 얻는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뛰었던 야구부의 에이스 혹은 4번 타자 출신이다.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현역 프로와 비견될 정도로 빠른 공을 던지거나 남다른 신체 조건 덕분에 강속구 투수로 성장할 것을 기대받는다. 축구선수 남부럽지 않은 하체와 골프를 해도 프로가 됐을 손목 힘을 동시에 갖춰 타자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팬들은 업계 관계자의 코멘트 혹은 전국대회 영상을 찾아보며 '우리 애'가 천재적인 재능으로써 리그를 폭격하는 찬란한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인들은 드래프트 당시의 스포트라이트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무대에서 자취를 감춘다. 프로리그는 아마추어 시절 천재 소리를 듣던 이들만이 모인 공간이니까. 야구를 직업으로 삼고 전력으로 부딪혀 오는 천재와 싸워서 이겨야만 하니까. 그런 승부에서 타자는 10번 중 3번 이상을 이겨야 3할 타자가 되고 투수는 9번 중 5번 이상을 이겨야 겨우 3점대 투수가 되니까. 160km/h를 던지던 투수나 제2의 이종범 소리를 듣던 타자도 1년차에는 6점대 평균자책점과 멘도사 라인에서 허덕이는 현실 속에서 무수한 '천재'들이 2군에서조차 오랜 시간을 헤맨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왕년의 천재들이 사회인이 되어 천재성을 잃는다.
지금 당신이 응원팀의 기둥으로 성장하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우리 애'는 천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 신인 드래프트에서 부디 내가 응원하는 팀에 와달라며 기도하고 있는 선수마저 그럴 수도. 그렇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다.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면 부족한 점을 계속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조금씩 이어가도 의외로 문제 되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프로야구 선수의 커리어니까.
202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9순위에서 키움의 지명을 받았던 3년차 고졸 신인 김휘집은 데뷔 당시부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망주다. 하지만 공수 양면에서 보완할 부분이 명확해 보이는 활약을 펼치자 같은 포지션을 소화했던 선배들과 비교당하며 무수한 비판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됐을 때부터 야구팬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됐다. 초등학생 시절 히어로즈 리틀야구단 소속으로서 목동 야구장에서 시타를 했던 과거가 발굴됐기 때문이었다. 버건디 유니폼을 입으며 야구를 시작했던 통통한 소년이 만 18세의 거포 유격수 유망주로 성장해 영웅군단에 합류한다는 스토리는 한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휘두를 휘(揮)에 잡을 집(執)이라는 한자를 쓰는 이름까지 야구만을 위해 태어난 듯한 인상을 줬다. 팬들은 대형 내야수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이상원 스카우트 팀장의 코멘트와 김하성이 롤 모델이라던 그의 인터뷰를 보며 또 다른 '국가대표 유격수 KIM'을 기대했다.
하지만 김휘집은 모두의 기대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KBO리그를 평정할 수 있는 천재가 아니었다. 갓 프로 유니폼을 입은 2021년의 김휘집은 정규시즌 중 1군에 콜업되어 고척 스카이돔 잔디를 밟았다. 김혜성을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기를 바라던 코치진의 기대 아래서 두 달간 실전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1할 2푼 9리의 타율과 0.465의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장타율), 200이닝을 조금 넘게 수비하는 동안 저지른 일곱 개의 실책은 자신의 롤 모델이 루키 시즌에 보여준 모습과 너무 달랐다. 평범한 2군 성적 또한 데뷔 시즌부터 퓨처스리그 3할 유격수가 됐던 김혜성과 비교됐다. 시즌 종료 후 김휘집은 자신의 1년차 시즌에 대해 스스로 "100점 만점 중 30점"을 매겼다. 그만큼 그의 첫 1년은 온통 실망 투성이었다.
괜찮았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만 19세 청년이 겨우 365일 남짓한 프로야구 선수 생활 좀 삐끗한 거니까. 오래 야구하면 마흔 살까지도 글러브를 끼고 사는데 첫 1년쯤이야 디딤돌로 삼으면 되니까. 홍원기 감독이 '애늙은이 같다'고 칭찬할 정도로 진중한 성격을 가진 김휘집은 자신의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부족했던 점을 덤덤히 돌아봤다. 낯선 환경 아래서 한없이 흔들리던 멘탈을 잡기 위해 독서하는 습관을 들였다. 강점이던 파워가 프로에 와서는 평범한 수준이 됐음을 느끼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순발력 훈련도 빼먹지 않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같은 팀의 '슈퍼스타' 이정후에게 질문하고 김혜성의 조언을 경청했다. 그러고도 아쉬웠는지 메이저리그로 떠난 김하성의 수비 영상까지 꾸준히 챙겨봤다.
2년차 시즌을 김주형, 신준우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퓨처스리그에서 시작한 김휘집은 지난해 1군 112경기에서 400타석 가까이 소화하고 800이닝을 넘게 수비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완전히 주전 유격수로 도약했다. 특히 타격면에서는 8개의 홈런과 1할이 넘어가는 순출루율로써 고교 시절 고평가 받던 장타력과 선구안에 대한 잠재력을 가감 없이 내비쳤다. 김하성, 김혜성처럼 모든 코스의 공을 안타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물망처럼 촘촘히 설정한 자신만의 존에 들어오는 공은 가차 없이 날려벼렸다. 그런 식으로 '모든 부분에서 미숙한 고졸 신인'이라는 평가를 단 1년 만에 'KBO리그의 미래를 이끌어갈 거포 유격수 유망주'로 바꿔버렸다.
올해는 송성문이 시즌 초반 자기관리 미숙으로 이탈하면서 유격수 대신 3루수로 나서는 경기가 많아졌다. 수비 부담이 덜한 포지션에서 타격에 집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지난해 2할 초반대에 불과했던 타율을 2할 5푼 이상으로, 유격수임을 감안해도 아쉬웠던 0.662의 OPS를 0.734로 끌어올리는 등 한층 스텝업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 일주일 동안은 장타력이 실종되다시피 한 타선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쏘아 올리고(2개) 가장 많은 타점을 쓸어 담는 등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다. 아쉬운 평을 받던 주루 플레이 또한 RAA 주루를 -1.15에서 0.01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어느 정도 개선한 모습을 보였다.
냉정히 평가했을 때 김휘집이 김하성, 김혜성의 뒤를 잇는 국가대표 내야수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나아가야 할 길이 한참 멀다. 두 선배가 가진 툴을 갖지 못했기에 그 길은 더욱 험난할 것이다. 김휘집도 그 사실을 안다. 지난해 좋은 활약을 펼칠 때도 "하성이 형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동시에 자신이 김하성 같은 천재가 아니라고 해서 커리어까지 끝나지는 않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선배들은 쉽게 뛰어넘었지만 본인은 그러지 못하는 벽을 무리하게 기어오르는 대신, 그 벽에 전력으로 부딪혀 부수려 한다.
이정후의 장기 부상에 좌절한 구단이 시즌을 포기함에 따라 무수한 유망주가 기회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영 신통치 않다. 202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셋업맨 역할을 기대하며 지명했던 '대졸 최대어' 주승우는 9일 경기서 0.2이닝 3볼넷 3실점으로 무너진 뒤 말소됐다. 고교 시절 구속 빼고 모든 것을 다 갖췄다는 평을 받았던 윤석원과 이종민은 지난 일주일 동안 2이닝 3피안타 3볼넷 4실점을 합작했다. 이주형과 함께 키움으로 이적한 김동규는 일요일날 선발 등판하여 1군 데뷔전을 치렀으나 2이닝 4피안타 3볼넷 5실점으로 무너졌다. 거포 유망주 김수환과 박찬혁, 김건희는 일주일간 단 하나의 안타도 치지 못했다.
아무 문제 없다. 키움이 이번 시즌을 최하위로 마무리할 위기에 처한 것을 두고 그 누가 신인급 선수들을 탓할까. 물론 주승우가 구단의 기대처럼 조상우를 대체하는 강속구 마무리 투수였거나 윤석원, 이종민이 유희관의 뒤를 잇는 좌완 모닥볼러 선발 에이스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다. 김수환이나 박찬혁이 박병호의 공백을 메우는 차세대 홈런왕으로 거듭났다면 지난해의 결말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다만 꿈만 같이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본인이 조상우나 유희관, 박병호가 아니었음을 확인한 이상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면 되니까. 매년 한 걸음씩만 꿋꿋이 나아가도 모두 박수를 쳐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