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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성실 Mar 24. 2024

21세기 최초 고졸 신인 4명 개막전 동시 출장

2024 KBO리그 개막전

개막전에서만 고졸 신인이 네 명이나 경기에 나섰다. 그것도 모두 한 구단에 소속된 선수들이다. 적어도 지난 23년 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키움 히어로즈가 2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와의 개막전에서 다섯 명의 신인 선수를 기용했다. 이들 중 네 명(이재상·손현기·전준표·김연주)은 겨우 1~2개월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고졸 신인'이다.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한 구단이 세 명 이상의 고졸 신인을 기용한 것은 21세기 이래 최초의 일이다.


이날 키움은 성남고등학교 출신의 내야수 이재상을 선발 유격수로 기용했다. 이로써 이재상은 개막전에서 주전 유격수로 경기에 나선 역대 다섯 번째 고졸 신인 선수가 됐다. 마운드에서는 7실점으로 부진한 선발투수 아리엘 후라도가 마운드에서 내려간 5회부터 '좌완 파이어볼러' 손현기(전주고·2라운드), '우완 파이어볼러' 전준표(서울고·1라운드), '포스트 고우석' 김연주(세광고·3라운드)를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다. 이들은 도합 5이닝을 책임지는 동안 KIA의 강타선으로부터 단 한 점의 점수도 내주지 않았다.



키움이 지난해 9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신예들을 1군 경기에서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17일에 펼쳐진 '메이저리그 우승 후보' LA 다저스와의 서울시리즈 스페셜 게임에서는 이재상과 '대졸 신인' 고영우를 키스톤 콤비로 내보내고 고졸 루키 넷을 마운드에 올리는 등의 용병술을 펼쳤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는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13명의 신인 선수 중 6명이 키움 소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일간스포츠>에 따르면 '한 구단 관계자는 "개막전 엔트리에 신인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는 거 같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그렇게 많은 신인이 개막전에 우르르 나서는 것도 처음 봤을 것이다.


키움이 이렇게 많은 고졸 신인을 개막전에서 '파격 기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키움은 지난 시즌 중반에 토종 에이스 최원태를 LG 트윈스로 트레이드했다. 8월에는 5선발 정찬히 허리 부상으로 낙마했으며, 9월에는 1선발 안우진이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군 입대를 결정했다. 시즌 후에는 FA 자격을 얻은 마무리 투수 임창민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고 불펜 투수 김성진이 현역으로 입대했다. 야구 통계 사이트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들의 성적을 제외한 키움 투수진의 지난해 WAR(Wins Above Replacement,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은 8.84였다. 압도적인 꼴찌다(9위 한화·14.77).


그렇기에 키움은 기존 자원의 재발견에 의지하기보다는 신인 육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홍원기 감독은 23일 경기 시작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게 우리 팀의 현주소이다"라고 말하면서도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들어왔다. 하루빨리 리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 미흡한 부분이 있어도 인내력을 갖고 계속 기회를 줄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고 이야기했다.




● '24 라인', '05 라인'처럼 황금 세대 될 수 있을까?

좌측부터 차례로 정의윤-이원석-박병호-윤석민-전현태. 이들 중 전현태를 제외한 모두가 KBO리그에 한 획을 그었다.

2024 프로야구 개막전에 출전한 고졸 신인 선수는 총 다섯 명이다. 창원 NC 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에서도 두산 소속의 김택연(인천고·1라운드)이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고졸 신인이 동시에 개막전 무대를 누빈 것도 21세기 이래 처음 벌어진 일이었을까? 정답은 'NO'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5년에도 동일한 사건이 있었다.



2005년 무등 야구장에서 개최된 한화 이글스와 KIA의 개막전에서는 두 명의 고졸 신인이 경기에 나섰다. 한화는 8회초 6번 지명타자 이도형이 선두타자로서 안타를 치고 나가자 대주자로 전현태를 투입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호타준족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전현태는 이날 경기서 9번 타자 유격수 백승룡의 중전 안타를 틈타 홈으로 들어오며 프로 통산 첫 득점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때 마운드 위에서 전현태의 득점 순간을 지켜봤던 투수 또한 그와 같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출신의 고졸 루키였다. 이 투수의 이름은 윤석민이었다.


같은 날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개막 경기에서는 LG가 고교 시절 고교야구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쳐낸 괴물 신인 박병호를 7번 1루수로 선발 기용했다. 이날 박병호는 첫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내고 마지막 타석에서 희생 플라이로 타점을 올리는 등 5타석 3타수 무안타 1타점으로 분전했다. 8회 초에는 2사 주자 1, 2루의 찬스에서 박병호와 함께 거포 유망주로 기대받던 정의윤이 '간판타자' 박용택의 대타로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정의윤은 연습경기서 맹활약을 펼치며 이순철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상태였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펼쳐진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의 시즌 첫 경기에서는 비시즌 때부터 주목받는 신인 선수로 언급되던 동성고 출신의 이원석이 2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당시 롯데의 3루가 약한 것은 맞았으나, 고졸 신인이 타격 능력을 인정받아 개막전부터 파워 히터의 포지션인 3루를 지키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 경기서 이원석은 에이스 배영수를 상대로 데뷔 첫 안타를 신고하면서 양상문 감독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이렇듯 개막전부터 무수한 고졸 신인이 활약한 2005년 신인 드래프트는 2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오늘날 '간판선수가 쏟아져 나온 황금 드래프트'로 기억되고 있다.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최정과 오승환, 그리고 박병호는 각 팀의 영구결번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윤석민과 정근우는 각각 KBO리그 역대 최고의 에이스, 2루수 중 하나로서 은퇴하는 날까지 팬들의 무수한 사랑을 받았다. 정의윤과 이원석, 그리고 오재일은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낸 끝에 수십억 규모의 FA 계약을 체결했다. 


개막전에서의 활약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들이 하루아침에 스타 플레이어로 거듭난 것은 아니다. 2010년대 KBO리그 최고의 홈런 타자 박병호의 데뷔 첫 경기는 무안타로 끝났다. 2011년 사상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투수가 됨으로써 KBO리그를 평정한 윤석민은 신인 시절 큰 점수 차로 패배 중인 개막전에서 대량 실점에 일조하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양상문 감독의 기대가 무색하게 루키 시즌 당시 1홈런에 그친 이원석의 커리어 첫 두 자릿수 홈런 시즌은 9년 차가 돼서야 이루어졌다.


어제 경기서 만원 관중 앞에 섰던 열아홉들은 긴장과 설렘, 부담 속에서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강점을 보여줬다. 고교 시절 소화 이닝보다 사사구가 많았던 손현기는 데뷔전에서 단 하나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 전준표는 제구가 흔들렸음에도 불구하고 공의 힘만으로 2이닝을 무사히 막아냈다. 김택연은 덜 여문 몸으로도 최고 147km/h의 빠른 공을 씩씩히 뿌리며 가치를 증명했다. 투수와 달리 144경기도 거뜬히 나설 수 있는 이재상은 다음 경기서 기대에 부응하면 된다.


KBO리그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던 2005년 신인 드래프트처럼, 2024년 신인 드래프트는 키움 팬에게 영광을 선사할 드래프트로 기억에 남을지도 모른다.


21세기 KBO리그 역대 개막전 고졸 신인 출전 기록


2003년


나주환(두산·4월 5일 삼성전·8회 사사구로 출루한 7번 우익수 김창희의 대타 심재학의 대주자로 출장)

이대형(LG·4월 5일 SK전·8회 사사구로 출루한 6번 지명타자 쿡슨의 대주자로 출장)


2004년


장원준(롯데·4월 4일 삼성전·4회 조기강판된 이상목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1.2이닝 무실점)

이용규(LG·4월 4일 SK전·7회 9번타자 권용관의 대타로 출장·정대현에게 삼진)

오주원(현대·4월 4일 한화전·8회 구원 등판·0.1이닝 1사사구 1실점)


2005년


전현태(한화·4월 2일 KIA전·6번 지명타자 이도형 8회 안타 때 대주자 출장)

윤석민(KIA·4월 2일 한화전·8회 구원 등판·0.2이닝 2피안타 1사사구 3실점)

이원석(롯데·4월 2일 삼성전·2번 3루수 선발 출장·3타수 1안타)

정의윤(LG·4월 2일 두산전 8회 2번 지명타자 박용택의 대타로 출장·2루수 앞 땅볼)

박병호(LG·4월 2일 두산전 7번 1루수 선발 출장·5타석 3타수 무안타 1볼넷 1타점)


2006년


강정호(현대·4월 8일 SK전·9번 유격수 선발 출장·2타석 1타수 무안타·역대 4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유격수 선발 출장)


2007년


조용훈(현대·4월 6일 롯데전·6회 구원 등판·2사사구 허용 후 강판)


2008년


정찬헌(LG·3월 29일 SK전·9회 구원 등판·1이닝 1피안타 1사사구 1실점·패전)

오선진(한화·3월 29일 롯데전·9회 9번 윤재국의 대타로 출장·1타수 무안타)

윤기호(한화·3월 29일 롯데전·6회 구원 등판·0.1이닝 1탈삼진 무실점)

김성현(우리·3월 30일 두산전·9회 구원 등판·1이닝 2탈삼진 무실점)


2009년


안치홍(KIA·4월 4일 두산전·7회초 7번 대타 이재주의 대주자로 출장·3루 대수비)

김상수(삼성·4월 4일 LG전·1번 2루수 선발 출장·5타수 2안타 1득점·역대 최초 고졸 신인 개막전 리드오프)


2011년


임찬규(LG·4월 2일 두산전·8회 등판·1이닝 무실점)


2012년


한현희(넥센·4월 7일 두산전·8회 등판·1.2이닝 2탈삼진 무실점)


2015년


김택형(넥센·3월 28일 한화전·12회 등판·1이닝 1탈삼진 무실점·역대 최초 고졸 신인 개막전 승리)


2017년


장지훈(삼성·3월 31일 KIA전·8회 등판·0.1이닝 1탈삼진 1사사구)

홍현빈(KT·3월 31일 SK전·9회 1번 좌익수 이대형의 대타로 출장·1루수 땅볼 아웃)

이정후(넥센·3월 31일 LG전·8회 9번 포수 박동원의 대타로 출장·우익수 뜬공 아웃)


2018년


박주홍(한화·3월 24일 키움전·6회 구원 등판·0.2이닝 무실점)

강백호(KT·KIA전 8번 좌익수 선발 출장·4타수 1안타 1홈런 1타점·역대 최초 고졸 신인 데뷔 첫 타석 홈런)

한동희(롯데·SK전 7번 3루수 선발 출장·3타수 1안타)


2020년


김지찬(삼성·5월 5일 NC전·9회 5번 2루수 김상수의 대주자로 출장)

김윤식(LG·5월 5일 두산전·9회 등판·1이닝 1탈삼진 2피안타 1실점)


2022년


최지민(KIA·4월 2일 LG전·9회 1이닝 2탈삼진 3사사구 3피안타 5실점)

김도영(KIA·4월 2일 LG전·1번 타자 3루수 선발 출장·4타수 2삼진 무안타)

이재현(삼성·4월 2일 KT전·7번 타자 3루수 선발 출장·3타수 1안타)

박찬혁(키움·4월 2일 롯데전·9번 타자 1루수 선발 출장·3타수 2안타·역대 최초 고졸 신인 첫 두 타석 멀티 히트)


2023년 


손민석(KT·4월 1일 LG전·김상수 대수비 출장)

이호성(삼성·4월 1일 NC전·9회 구원 등판·1이닝 무실점)


2024년


이재상(키움·3월 23일 KIA전·7번 타자 유격수 선발 출장·2타수 무안타)

손현기(키움·3월 23일 KIA전·5회 구원 등판·1이닝 무실점)

전준표(키움·3월 23일 KIA전·6회 구원 등판·2이닝 무실점)

김연주(키움·3월 23일 KIA전·9회 구원 등판·1이닝 무실점)

김택연(두산·3월 23일 NC전·7회 구원 등판·1이닝 2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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