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주중 3연전의 시작을 앞두고 마정길 불펜 코치의 은퇴식이 열렸다. 선수시절 단 한 가지라도 타이틀홀더가 되어본 적이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넥센 히어로즈에서만 뛰었던 선수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던 선수인 마정길. 이 글은 그러한 투수의 16년간의 선수 커리어에 대해 살펴보는 못 쓴 글이다.
내덕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언더핸드 투수였던 마정길은 청주중학교와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에 다닐 때 1학년 때부터 고교야구 대회 엔트리에 들며 주목받던 투수였다. 그러나 당시에 김병현, 봉중근, 최희섭 등의 괴물같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 탓인지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2차 10순위까지 가서야 한화 이글스에게 지명을 받았었다. 얼마나 뒤에서 지명을 받은 것이냐 하면, 그의 앞에서만 무려 105명의 선수가 지명을 받았었고 뒤에서는 겨우 스물 두 명의 선수만 지명을 받았었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이 때 그의 뒤에서 지명을 받았던 선수 중 프로생활을 상대적으로 오래한 선수가 두 명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고추 트리오의 일원이었던 추승우였다. 하여튼 고교시절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2차 10순위라는 지명 결과를 받게 된 것이 많이 실망스러웠는지, 마정길은 고등학교에 졸업한 뒤 프로가 아닌 대학으로 진학한다. 대학생 시절에는 단국대학교 야구부가 11년만에 전국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우수 투수상을 받기도 했다니, 확실히 실력이 있는 투수인데 신인 드래프트 결과에 실망했을 만도 하다...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마정길은, 프로 첫 해인 2002년과 2003년에 2년 연속 6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데뷔와 함께 기나긴 노예생활의 첫 장을 펼치게 된다(2002시즌 59경기 60이닝 2승 5패 6홀드 6세이브 ERA 5.40, 2003시즌 63경기 68.2이닝 3승 2패 8홀드 2세이브 ERA 4.06). 2004시즌에는 서른 세 경기에만 출장하고 이닝도 41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는데, 시즌 막판에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해 2년 간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복귀 시즌인 2007년에는 11경기 12이닝 1패 1홀드 ERA 4.50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성적을 올리는 데에 그친다.
군 복무를 수행한 2년과 사실상 경기에 거의 나오지 않은 2007시즌까지 해서 약 3년 정도를 푹 쉰(?) 마정길은, 2008시즌 그동안 안 구른 몫까지 다 함께 구르는 것인지는 몰라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굴려졌다. 이는 후반기에 윤규진이 어깨 부상으로 불펜진에서 이탈한 다음 특히나 더욱 심해졌는데,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과 경기가 우천취소 되는 날을 제외하면 항상 경기에 나왔다. 심지어 류현진마저 부진하자 일주일에 무려 다섯 경기를 나오기도 하였다. 이 시즌 마정길의 성적은 64경기(최다출장 3위) 92.2이닝 2승 1패 7홀드 2세이브 ERA 2.91. 스탯티즈 기준 이 시즌 마정길의 WAR은 2.39로, 프로 통산 16시즌동안 유일하게 WAR이 2 이상인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다.
2008시즌에 엄청난 혹사를 당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었을까. 2009시즌, 마정길은 54경기 50.2이닝 7홀드 1세이브 ERA 4.97라는, 지난 시즌에 비하면 너무나도 평범해진 성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넥센 히어로즈의 마일영과 트레이드 되며 8년 간의 한화 이글스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2009시즌 마일영은 총 27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무려 스무 번의 선발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97.1이닝에 6점대 후반 방어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좌완투수가 급했던 한화 이글스는 풀타임 선발도 가능하고 불펜으로도 뛸 수 있는데 좌완이기까지 한 마일영을 마정길에 3억원까지 얹어주며 트레이드한다. 당시 한화의 한대화감독이 트레이드 후 인터뷰에서 마당쇠 불펜을 보냈음에도 매우 흡족해했고, 김시진감독은 팀에 부족한 옆구리투수 자원을 보강했음에도 마일영이 나갔다는 사실에 매우 언짢아했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마일영의 2009시즌의 부진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또 당시 인터넷 썰들을 찾아보면 원래 넥센 히어로즈가 데려오려던 투수는 마정길이 아니라 허유강, 정재원, 정민혁, 정대훈 등 구위가 좋고 나이 어린 사이드암 투수들이었다는데 정말 그런 딜이 성사되었으면 넥센의 불펜진이 어떻게 되었을 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생일 전 날에 트레이드를 당했든 어쨌든, 마정길은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된 2010시즌에도 그저 묵묵히 공을 던질 뿐이었다. 2010시즌 58경기에 출장해 56.1이닝 3승 2패 2홀드 ERA 3.04를 기록하며 넥센 히어로즈의 시즌 팀 불펜 방어율 2위 기록에 공헌한 마정길은, 2011시즌에도 마흔 다섯 경기에 출장해 48.1이닝 1승 4패 8홀드 ERA 3.35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린다. 시즌 후반에 식당에서 미끄러져서 왼쪽 무릎을 다치고 시즌아웃된 뒤 2012년에도 통째로 쉬는 등 중간에 잠깐 골골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2013시즌에 스물 아홉 경기에 출장해 33이닝을 소화하고 4승 1패 1홀드 1세이브 4.09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다시 노예의 부활을 알렸다.
2013시즌에 마노예라고 부르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이닝을 소화했던 마정길은, 2014년에 다시 마당쇠로 대활약하며 투수진만 봤을 때에는 우승도전의 ㅇ 자도 못 꺼낼 넥센 히어로즈가 준우승까지 하는 데에 톡톡히 공헌한다. 벌크업 했다가 그나마 좋았던 구위마저 잃어버린 강윤구, 지하철역에서 넘어져서 무릎 부상을 당해버린 조상우, 아홉 경기에 나오면 여덟 경기는 실점을 하며 추격조로도 써먹을 수 없던 김영민, 시즌 후반에 상대팀 타자들 힘 빠졌을 때 올라와서 잠깐 사람노릇하는 문성현과 오주원 등 나이만 젊은 투수들의 몫까지 밥값을 했던 것이었다. 데뷔 13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시리즈에 출전하기도 하고 시즌 후 5200만원 오른 1억 4천만원에 연봉 계약을 하며 연2009년 이후 6년 만에 억대 연봉에 진입하는 등, 마정길 본인에게도 의미있는 한 해였다.
넥센 히어로즈로 이적한 이후에는 젊을 때만큼 노예로 구르는 일은 없었으나, 여전히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묵묵히 마운드에 올라 팀 투수진의 대들보와도 같은 역할을 했던 마정길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자잘한 부상을 입거나 연투를 힘에 부쳐하는 모습을 보여줬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정길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추격조에서 마당쇠로서 제 할일을 다 했었다. 2016시즌 63.2이닝을 소화하며 4점대 초반의 방어율을 기록했으나 이는 마지막 불꽃이었다. 이듬해, 마정길은 1군 타자들과의 승부를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7경기 10.1이닝 14피안타(3피홈런) ERA 10.45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5월 후반 2번째 2군행을 지시받은 뒤 많은 생각을 한 끝에 은퇴를 결심한다.
데뷔 시즌부터 불펜에서 관리 없이 굴려졌으며, 단 한 번의 선발승도 기록하지 못하였고, 그렇다고 불펜에서 프라이머리 셋업맨 혹은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던 투수도 아니었다. 대표적인 별명 중 하나가 '마노예'일 정도로 커리어의 대부분을 추격조로 보냈던 선수였다. 그럼에도 마정길이 코칭 스태프들과 선수단에게,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자신이 맡은 바를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수로서의 맡은 바를 위해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의 멋진 몸을 만들고, 사인을 청해오는 팬들에게 귀찮아하는 내색 하나 없이 한 명 한 명 친절하게 팬서비스를 해주고, 투수조의 고참으로서 코치들의 말을 듣고 이행하는 가교 역할과 어린 투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 덕분이 아닐까 싶다.
코치로서의 마정길도 팬들에게 무한한 사랑 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