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이문열 삼국지를 읽었고 중국 드라마 삼국연의를 봤고 삼국지게임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삼국지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부모님 집에서 골동품 노트북을 찾았다. 아주 옛날에 아버지가 사주셨는데 그 골동품 노트북으로 삼국지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저히 어댑터를 찾을 수 없었다. 서비스센터에 물어보니 단종되어서 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른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임은 포기하고 유튜브에서 중국 드라마 신삼국지를 봤다. 원래는 1994년 84부작 중국 드라마 삼국연의를 보고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는데 옛날에 느꼈던 감동은 없었다. 신삼국지에서 주인공은 조조 같았다. 옛날에 친구들은 대부분 유비를 좋아했다. 특이하게 원소를 좋아했던 녀석이 있었다. 초반에 원소는 가문의 후광 덕분에 맹주로 추대되었으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천운의 기회를 놓쳤다.게임에서 안량, 문추, 전풍, 저수 등을 데리고 천하를 통일하면 역사를 뒤집는 재미가 있었다.승자가 기록하는 역사에서 패자 원소는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어쨌든 유비와 제갈량이었다.
처음 이직할 때 같이 일했던 두 사람한테제의를 받았다. 그중에 한 사람은 대기업 무역회사로 옮겼다가 지방 중견기업 지주사의 임원으로 일했다. 정기적으로 연락했는데 자기 밑에서 일하자고 계속 제의했다. 연봉도 복지도 마음에 들었지만 주말부부를 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그런데 그분은 사모님을 데리고 오셔서 자리를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아내를 데리고 가서 술을 마셨다. 나를 잊지 않고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했다. 아내는 그분이 너무 똑똑하고 열정적이라서 연봉을 주는만큼 철저히 뽑아먹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번에도 거절했다. 몇년 지나서 사모님과 놀러왔다고 잠시 숙소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수제맥주를 테이크아웃해서 갔는데 객관적인 대우를 해줄테니 기획이든 재무든 사업개발이든 원하는 부서에서 일하자고 제의했다. 또다시 거절했다. 제갈공명도 아닌데 세번이나 거절하다니 죄송해서 그후로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계열사 사장으로 부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진심으로 기뻤고 축하드렸다. 만약에 제의를 승낙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후회는 없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일보다 가족이 중요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분은 나를 적당히 똑똑한데 충성심이 있어서 임원이나 사장의 수족으로 적당하다고 평가했던 것 같았다. 동문으로스카이를 졸업했지만자기처럼 특출나지 못했다. 그래도 회사에서 진득하게 일하고 공부해서 꾸준히 성과를 창출했고 모든 공을 위로 돌렸다. 유비라는 영웅의 삼고초려를 수락했던 제갈량도 충성심으로 유명했다. 유비는 죽음을 앞두고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량에게 부탁했다. 만약에 유선이 황제로서 부족하다면 제갈량이 황제가 되어서 나라를 다스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비 사후에 제갈량은 막강한 위치에 있었으나 죽을 때까지 유선을 섬겼다. 소설에서 제갈량은 사마의와 대조적이다. 제갈량은 유비와 그의 아들을 섬겼고 사마의는 조조와 그의 아들을 섬겼다. 하지만 제갈량이 충성을 지키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마의는 기회가 오자 권력을 장악했다. 제갈량은 황제가 되라는 이엄의 권유를 거절하고 유비의 뜻을 이어서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불행히도 나는 재주도 안목도 없어서 귀인을 알아보지 못했고 다른범인의달콤한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 삶에서 가장 큰 실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