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머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요새 핫한 '홈카페' 때문이었다. 그냥 카페가 아니라 홈카페라니, '집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하루에 커피 2잔 이상을 마시는 바쁜 대학생에게 있어서 커피, 아니 카페인은 필수 그 자체였으니까. 빠른 합리화는 빠른 구매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의 첫 홈카페가 시작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 홈카페는 나의 데일리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그 핵심에는 일리(illy)가 있다.
홈카페를 전혀 몰랐던 내게 '일리(illy)'는 생소한 브랜드였다. 아는 커피 머신이라고는 네스프레소밖에 몰랐으니, 홈카페 초보 중에 초보라고 보시면 되겠다. 그런 내가 홈카페를 시작한다니,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은근한 기계치를 자랑하는 내 성격상, '복잡해서 사놓고 안 쓰면 어쩌나' 싶었다.
사진 : Unsplash.com
핸드 드립이 그 예였다. 예전에는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과정이 너무 길고 이것저것 체크해야 할 게 많아서 관뒀다. 핸드 드립은 어떻게 하냐고?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갈린 원두를 드립 페이퍼에 적당량 넣어 드리퍼&서버에 올려준 다음, 따뜻한 물이 담긴 포트로 빙글빙글 돌려 커피를 내려줘야 한다. 물을 천천히 붓고, 뜸을 들이는 일이 4-5번 정도 반복된다. 품질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온도나 원두의 양에서도 디테일이 추가되므로 시간이 더 걸린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 맛은 좋지만, 속도와 효율성이 중요한 필자에게 핸드 드립은 사치였다.
집에서도 카페처럼 커피를 마실 수 없을까? 핸드 드립처럼 번거롭지 않으면서, 빠르고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먹을 수 없을까? 일리 커피 머신이라면 가능했다. 쉽고, 빠르고, 맛있다. 오래 두고 쓸만한 물건은 역시 심플함에서 온다. 일리는 군더더기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파는 것이 일리의 놀랄 만큼 단순한 경영 철학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어설프게 다른 회사의 전략을 따라 하지 않는다. 일리는 그런 점에서 나와 잘 맞았다. 쓸데없는 잔재주 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만 딱딱 잘하는 녀석, 맛있고 부드러운 커피가 생각나는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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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illy)는 85년 전통의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다. 1933년 이탈리아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서 탄생했고, 정식 브랜드 명칭은 일리카페(illy caffe S.p.A.)다. 이때 카페는 커피를 뜻하는 이탈리아 단어로, 영어로 커피숍을 뜻하는 카페(cafe)와 다르다. 커피의 성지 이탈리아의 브랜드이다 보니 커피에 대한 자존심이 상당하다. 최고의 아라비카 커피만을 고집하며, 바리스타 전문 양성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작년 네슬레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는 점에서 일리의 뚝심이 느껴진다.
커피에 대한 고집은 커피 마니아의 러브콜을 불렀다. 2017년 일리 커피의 매출은 4억 7000만 유로(약 6227억 원)로 전 세계 커피 시장에서 0.2%의 점유율을 보였다. 높은 점유율은 아니지만, 자산 가치는 16억 유로로 평가되고 있어 세계적인 커피 업체들의 인수 합병 제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역시 거절) 현재 일리는 140개국에서 매일 700만 잔 이상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고, 일리 커피를 취급하는 커피숍은 전 세계 10만 개가 넘는다.
내가 산 일리 y3.2
브랜드 소개는 이쯤 하고 제품 리뷰로 넘어가자. 필자가 구매한 제품은 일리 y3.2 블랙. 화이트가 예뻐 보였지만 관리가 귀찮아 블랙으로 구매했다. 스키니한 바디와 심플한 디자인이 매력적인 친구다. 맛과 기능성은 기본이고 디자인까지 갖춘 가성비 제품으로, 홈카페하면 일리 y3.2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제품들은 물론 경쟁사의 제품도 고려했지만, 이 제품이 가장 적합했다. 일리 y3.2의 장점은 크게
1) 간편함
2) 가성비&맛
3) 디자인으로 나눌 수 있다.
1. 간편함
일리 y3.2는 가정용에 특화된 제품이라 그런지 간편하다. 물 채우고, 전원 버튼 누르고, 캡슐 넣고 버튼 누르면 끝이다. 특히 물통이 빼기 편하다. 가볍게 누르면서 당기면 바로 빠지고, 뚜껑만 빼서 물을 부을 수도 있다. 0.75L짜리 용량이라 한 번 채워놓으면 최대 30잔까지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다. 캡슐은 로고가 적힌 위쪽 덮개를 열어서 쏙 껴 넣으면 된다. 여기서 좋은 점은 커피를 다 내리고 위쪽 덮개를 열면 사용된 캡슐이 자동 배출된다. 다 쓴 뜨거운 캡슐을 손에 직접 닿지 않고 버릴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 : 일리 공식 홈페이지
전원을 켜면 예열을 해야 해서 40초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마실 커피를 준비하다 보면 금방 지나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면 얼음물을 준비하면 되고, 바닐라 라떼면 바닐라 파우더(혹은 시럽)를 넣고 기다리면 된다. 그러다 깜빡이는 버튼이 멈추면 두 개의 버튼 중 아무거나 누르면 된다. 이걸 원터치 추출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버튼을 누르면 커피가 알아서 나온다. 커피가 나오는 동안 외출 준비를 할 수 있으니, 바쁜 사람들에겐 꿀기능이다. 아, 깜빡 잊고 나와도 안심하자. 15분 미사용 시 자동으로 정지된다.
간편한 세척 역시 매력 포인트다. 경쟁사 제품 같은 경우는 캡슐이 들어가는 곳이 잘 보이지 않아 세척하기가 힘들었는데, 일리는 캡슐 넣는 곳을 오픈하면 안쪽이 시원하게 잘 보인다. 추출구는 뜨거운 물을 빼면서 세척하면 되고, 받침대는 따로 분리가 가능해 씻기가 편하다. 받침대를 분리하면 다 쓴 캡슐을 보관하는 트레이가 같이 딸려 나오는데, 7개에서 9개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검은색 커피 머신의 경우 커피 자국이 잘 보이지 않아 귀차니즘을 얻게 되므로 조심하자.
2. 가성비&맛
가격도 빠질 수 없는 매력이다. 기능도 좋고 맛도 좋고 디자인도 예쁜데 10만 원이 안 된다. 필자는 89,000원에 해외 직구했다. 특히 일리 커피 머신을 살 때 좋았던 점은, 커피를 시음해볼 수 있도록 14개의 캡슐이 무료로 동봉된 점이었다. 캡슐 가격은 대부분 21팩에 15,000원 정도 한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건 비교. 캡슐 커피와 카페 커피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4,100원이고 하루에 커피 3잔을 마신다고 가정했을 때, 커피값으로 소요되는 비용은 12,300원이다. 캡슐 커피는 가장 잘 나가는 다크 로스트의 경우 쿠팡가를 기준으로 21개입에 15,170원이다. 캡슐 하나당 722원, 하루에 3잔이니 약 2,170원이다. 스타벅스가 너무 비싸 보이니 빽다방으로 비교해보자. 빽다방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2,000원이므로 3잔에 6,000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2,000원대 초반인 일리가 압도적이다.
일리가 수많은 덕후를 갖고 있는 이유는 가격에 비해 훌륭한 품질 덕분이다. 이탈리아 전통 커피 브랜드답게 커피에 대한 자존심이 맛에서 느껴진다. 부드럽고 풍부한 크레마가 독보적이다. 필자는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달지 않다는 이유로 마시지 않는데, 일리의 다크 로스트 캡슐을 쓰면 라떼에서 달고 고소한 맛이 난다. 단순하지만 고급진 맛. 그리고 한결같은 맛. 쭉 같은 경영철학을 가져온 브랜드답게 커피 맛도 한결같다. 오래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은 일리만의 기술력 덕분이겠다.
나름 커피를 잘 안다는 사람들은 돌체구스토로 입문하고, 커피를 좋아하면 네스프레소로 시작했다가 커피 맛을 알게 되면 일리로 가는 순서를 추천한다. 예전에 필자가 커피 머신을 사기 위해 SNS나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본 결과, 일리가 가장 맛이 뛰어나다는 평이 많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인 점 참고하자.
사진 : 일리 공식 홈페이지
3. 디자인
필자가 일리 y3.2를 사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디자인 때문이다. 가볍고 콤팩트한 크기에 슬림한 외형, 둥글게 처리한 모서리 디테일이 세련됐다. 특히 커피 머신을 사기 전까지는 '부피'를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커피 머신을 받고 나니 '공간을 차지하는 부피'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1인 가구에겐 특히 중요한 문제인데, 너무 크거나 넓적한 커피 머신은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난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리 y3.2는 얇고 네모난 외형 덕분에 위치 선택의 폭이 넓었다.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이라는 게 느껴졌다.
다만 머신 크기 자체가 작아 받침대와 추출구 사이의 공간이 크지 않다는 점은 아쉬웠다. 중간의 커피잔 받침대를 올리면 큰 컵을 놓을 수 있고, 내리면 작은 컵이나 에스프레소 잔을 놓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필자에겐 맞는 컵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 전용 잔으로 커피를 받은 다음, 이를 내가 마실 컵에 부어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크레마'다. 내가 마실 잔에 바로 커피를 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크레마의 정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맞는 잔이 없어서 크레마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 그래서 짧은 컵을 많이 샀다. (?)
일리 y3.2는 '홈카페 잇템'으로 불릴 정도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다른 커피 머신은 몰라도 일리 y3.2 화이트는 홈카페 영상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예쁘다. 자랑하고 싶은 디자인이랄까. 아무 데나 둬도 주변과 잘 어울린다. 특히 깔끔하고 정돈된 인상을 준다. 고급 지게 말하자면 세련되고 모던한 스타일이랄까. 커피 머신만 뒀을 뿐인데 집 안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현대적 가구 디자이너로 유명한 Piero Lissni만의 스타일이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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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카페는 어렵고 까다로운 건 줄 알았다. 커피는 카페에서 사 먹는 게 최고로 편한 줄 알았다. 일리 y3.2를 쓰면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쓰디쓴 현대 사회 속에서 적어도 커피만큼은 맛있고 부드럽게 먹고 싶을 때, 일리와 함께해보자. 일리 y3.2라면 편안하고 여유로운 홈카페를 즐길 수 있다.
*2019.08.25일 추가
최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꽤 심각해 여기저기 알아보았더니, 일리 캡슐용 오프너를 따로 판매하고 있었다. 매번 쌓이는 캡슐을 처리하기가 난감했는데, 오프너로 분리하면 남은 커피 찌꺼기는 재활용하고 캡슐은 깨끗하게 씻어서 분리수거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구매 링크를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