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컬처레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sity Dec 02. 2019

[드라마] 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들의 이야기

그냥 사랑하는 사이, JTBC

'사랑'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떠올리는 문장도 사랑에 관한 문장이고, 사랑을 내포하는 소설도 좋아한다. 대표적으로는 에밀 아자르의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이 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해야 한다".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가 오히려 자신의 사랑을 나눠주려고 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던 문장이다. 오늘 소개할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도 그렇다.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들의 사랑은 눈물 없인 볼 수 없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그냥 사랑하는 사이, JTBC


한동안, 그리고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드라마이자, 내 인생 드라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드라마다. 캐스팅도 아쉬움 하나 없었고, 연기력도 탄탄했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좋다. 단순히 로맨스라고 생각하지 말자. 어릴 적 백화점 붕괴 사고의 생존자인 문수와 강두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절로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되니까. 마지막 화까지 문수와 강두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참 엿 같은 세상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처음부터 지켜왔던 '사랑'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마지막 화 후반부에 흘러나오는 문수의 내레이션은 이 드라마 명대사 중 원픽으로 꼽고 싶다.


산다는 건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말한다. 아니다.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다. 

불행이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기적도 우리가 희망을 버릴 때 난데없이 찾아온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더 힘껏, 행복해져야 한다.


#우는 소리 크다고 더 아픈 거 아니다.


것보다 이 드라마는 휴머니즘이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나문희 선생님이 아주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데, 대사 하나하나 주옥같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JTBC


할멈이 말했다. 사는 건, 후회와 실패의 반복이라고. 나는 빈정거렸다. 그럴 거 살아 뭐 하냐고. 할멈은 다시 말했다. 더 멋지게 후회하고 실패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니, 쫄지 말라고.


할멈

누구는 아는 게 힘이라고 그러고 누구는 모르는 게 약이라 그러잖아.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가


그니까. 뭐가 맞아? 진짜 모르는 거 같을 땐 알려줘야 돼, 냅둬야 돼?


냅두라.

모르는 게 약인 걸 아는거이 힘이랬다.


그래도 누구는 속 편하게 다 잊고 사는 거 같은데 뭔가 불공평하잖아.


야 그 속이 편한지 네가 어뜨게 아네?

우는 소리 크다고 더 아픈 거 아니다.


사진 : 그냥 사랑하는 사이, JTBC


강두는 붕괴사고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생존자, 문수는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은 생존자다. 사고 날을 기억하고 있는 자와 기억하지 못한 자의 아픔을 저울질할 수 있을까? 그것도 제삼자인 우리가?


문수는 자신이 살았기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고 자책한다. 강두는 자신 때문에 문수의 첫사랑인 영재 오빠가 죽었다고 자책한다. 문수와 강두, 그리고 나머지 피해자들은 드라마 전반에 걸쳐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자칫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타들어갈 대로 타들어버린, 그들의 마음은 누가 책임져줄까.


사진 : 그냥 사랑하는 사이, JTBC
강종수
곽서연
김종수
남동식

그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추모비, 시작이 잘못된 거 같아.
이 사람들이 누군지, 그게 먼저인 거 같아.
보여주려고 하지 말자 우리. 우리가 진짜 해야 될 것을 하자.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 기억하는 것. 표성근, 하연수...
하연수. 12살. 배우가 꿈이었던 내 동생...


#추모비만 세우면 다야?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던 점은, 잘못 없는 이들이 서로 상처를 준다는 점이었다. 강두와 문수를 비롯한 수많은 유가족들은 정작 화내야 될 사람들에겐 한 마디도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문수가 엄마에게 화내고 우는 장면은 특히나 가슴이 아팠다. 유가족은 이렇게 힘든데, 정작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왼쪽 : 강두가 추모비를 부수는 장면, 오른쪽 : 엄마마저 잃을까 봐 무서운 문수의 오열 장면


사과하세요. 진짜 화내야 될 사람들한텐 한 마디도 못하고, 괜히 강두한테 화풀이..
그래 화풀이, 맞아요. 그런 하찮은 놈한테 화풀이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누가 하찮아요? 추모비 하나 달랑 세우는 대신, 제대로 만들겠다고 유가족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게 강두예요. 강두가 하는 일, 절대 하찮지 않아요. 강두한테 사과하고, 수고했다, 고맙다고 말해요.

- 그냥 사랑하는 사이 9화, JTBC



붕괴 사고의 책임자인 청유 건설의 이사는 유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과했잖아. 잘못했다고 공식 석상에서 사과했잖아. 언제까지 질질 짜면서 죄책감 들게 할 건데?". 아니,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공식 석상이 아니라 유가족 한 명 한 명, 찾아뵀어야 했다. 그들은 최소한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외려 큰소리치며 화를 낸다. 돈을 뜯어먹으려 한다며 몸서리를 친다.


추모비를 세우는 것이 용서의 명분이 될 순 없다. 어쩌면 추모비를 세우는 것 자체가 유가족에겐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진정한 책임은 추모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를 전하는 것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시회] 내가 전시회를 즐기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