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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Dec 07. 2021

그랬던 제가 선생님을 합니다.

돌리고 싶은 기억

3학년이 되자 도시로 이사를 왔다. 지금 아들의 나이와 같은 3학년.

특별히 머릿속에 남을 만한 기억보다 단편적인 사실. 찰나의 순간을 찍은 사진 같은 기억만 남아있다.   

안양 비산동의 13평짜리, 방 두 개짜리 주공아파트. 아이들은 많았고 학교는 2부제 수업을 했다.

어떤 달은 8시까지, 어떤 달은 12시까지 학교를 갔다. 산 중턱에 아파트가 있어 경사로를 따라 롤러스케이트를 탔고, 동네 애들하고 탁구도 치고, 구슬치기도 했다.  

평온했고 즐거운 기억들이 많았지만, 왜 가족은 없지?

늘 궁핍했고, 퇴근 후 TV 이외에 가정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 1년에 나누는 대화의 양이 지금 내가 아들과 하루에 나누는 대화의 양과 같을까? 아니 더 적을 듯.

내 아들은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남들은 그리도 자주 간다던 가족 나들이는 아무리 떠올려 봐도 서울랜드, 인천 월미도뿐이다.

가사를 쓴다면 이렇게 쓰겠지. "아버지는 휴가가 없었지. 그렇다고 일을 하시지는 않았지. 아들인 나도 여름휴가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네. 겨울에 눈썰매 타러 가 본 적도 없다네"

 황당한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는 것이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합쳐서 70일은 족히 되는데. 이게 말이 되냐?  이거 오은영 박사라도 찾아가서 어릴  트라우마 치료라도 받아야 되는  아님?


그렇게 주공아파트에서 1년을 살다가, 학구를 벗어나 다세대주택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방 1칸짜리, 4평 남짓 되는 방 하나. 옆에 작은 주방과 화장실. 커서 생각해 보니 주공아파트의 전세금을 빼서 이사 가는 아파트 중도금을 내기 위해서 단칸방 월세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일산 신도시 아파트에 청약 당첨이 되었고 1년만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했다.


주위에 전문대학 한 곳이 있었고, 주점과 음식점, 오락실이 많았다. 나는 100원 자리 동전을 모아 늘 오락실에 갔고 곧 중독이 되었다. 집안 저금통에서 몰래 동전을 빼갔고, 가끔 아버지 지갑도 슬쩍했다. 독감에 걸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돌아온 날 저녁에도 오락실에 갔다가, 오락실로 찾아온 어머니에게 걸려 머리채를 붙잡혀 울며 나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고도 오락실은 몰래 또 갔다. 난 영원히 오락에 중독될 줄 알았다.


당시 반 아이들 옷 입은 때깔이며 사는 아파트도 대충은 알고 있어서, 내 처지와 비교하며 늘 움츠렸던 기억이 난다. 이름도 기억하는 게 귀족 스포츠로만 알았던 테니스를 잘 치는 '박서종' 이란 친구가 7월 1일이 생일인데, 반 아이들을 죄다 초대해서 생일잔치를 한다고 난리였다. 당연히 난 제외였고, 내 생일은 다음 날인 7월 2일이었다. 난 집에서도 생일잔치를 안 하는데... 흑흑...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었고, 서럽고 거지 같은 생활에 남몰래 숨어서 운 적도 많았다.

담임선생님 딴 애는 공부에 도움을 주겠다고 반 성적 1등은 반 꼴찌와, 2등은 반 뒤에서 2번째 꼴찌와 짝을... 20등은 21등과 짝을 이뤄서 자리를 앉혔다. 서로 가르치며 배우라는 것이었겠지. 아무리 그래도

"제가 공부를 할 형편이 안 돼서 못하는 거지. 머리가 돌대가리는 아니라고요!"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분하고 분했다.

이런 나에게 유일하게 따뜻하게 대해 주던 친구는 머리카락이 빨간색인 미국 혼혈인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그리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선생님 말씀.

 "진정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담임 선생님이었다.


물론 나에게도 원인이 있었겠다만. 말수도 별로 없는 고작 4학년이었다.

운동장에서 피구를 하다 선생님에게 모래를 튀겼을 때, 그때 선생님의 표정은 아직도 잊지를 못하겠다.

'조금 따뜻하게 대해 줄 수는 없었나요? 난 말수 없는 그저 아이였다구요.'


그렇게 지옥 같은 1년이 지나고 일산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된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집에 전화가 걸려 왔다.

"OO이 오늘 학교 안 나오나요?"

전날 학교 가면 이사 간다고, 선생님께 꼭 말씀드리라는 어머니 부탁은 도저히 못 하겠다.

"너, 선생님한테 전학 간다고 말씀 안 드렸어?"

"......"


새 집으로 이사를 갔고,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고, 좋은 친구들도 사궜습니다.

그렇게 사는 곳이 저를 바꾼 덕에.


그랬던 제가 선생님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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