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XXX들 1
이것은 시리즈물이 될 것입니다.
한 두 명이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처음엔 "그건 니 기준에서 XXX들이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제 글을 읽다 보시면 당신도 "뭐 이런 XXX가 있냐" 고 공감하시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
2년 전 떠난 반지하집의 임대인.
여름철 방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와 이불이 흠뻑 젖을 정도로 물이 고이고,
장판 아래에서 썩은내가 올라올 때-정말 영화 기생충에 감정 이입하며 보았었다는.
내가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조치가 필요하다고 부탁을 드리자
"난방을 자주 켜고 관리를 잘했어야지요." "전 세입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란다.
'이 XXX가 너는 여름에 난방 켜고 사니? 그럼 전 세입자는 왜 이사를 갔냐? 좋으면 안 갔겠지.'
'여기 이사 온 내가 등신이지. 내가!'
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우리는 문화인이고 그분은 더욱이 대학교수님이시니
"전화상으로 설명드리기에 심각성을 제대로 못 전달해 드리기에 한번 시간 내주셔서 오셔서 보셨으면 합니다."
라고 공손히 대화를 마무리했었다.
때마침 에어컨 충전가스가 새어 나와 찬바람이 나오지 않아
수리를 요청했으나 비용의 반만 내겠다는 그는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알뜰한 사람이었다.
주말에 집 상태를 보러 온 그는
분명 바닥 장판 아래 기존 장판과 뭔지 모르는 습기를 머금은
끈적끈적한 물질의 부패 상태를 확인하였으나
Ctrl+C, Ctrl+V,
"난방을 자주 켜고 관리를 잘했어야지요." "전 세입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였고
이 집에 돈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빌라의 유리로 된 공동현관문은 고장이 난지 오래여서 언젠가는 유리가 박살이 날 것만 같이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꺼어꺽' 가관도 아니었다.
난 그 이후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그 월세집에 들어가 있는 보증금이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 나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하지만 누가. 눈이 있다면 누가. 이 집의 상태를 보고 이 집에 올까?
이사 온 내가 애초에 바보였다.
전 세입자가 괜히 카펫을 많이 깔아 둔 것이 아니었다.
난 결국에 여러 법적인 것을 검토하다 집의 하자 문제로 인한 보증금 반환을 요구한다는
내용증명을 임대인에게 보내게 되었고, 그제야 임대인은 보증금은 반환해 주되,
3개월치 월세와 관리비는 내는 것을 요구조건으로 걸었다.
웃기는 것이 월세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 살지도 않을 3개월 간의 관리비까지 내라는 건 어이가 없었다.
관리비 걷어서 장판을 바꿔 줄 것도 아니고, 관리는 하나도 안 하면서 앞으로의 관리비까지 내라니.
앞으로의 관리비까지 내지는 못하겠다는 내 말에 뜨끔 했는지 관리비는 없는 것으로 하고
3개월치 월세만 내는 것으로 해서 합의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보증금을 받기로 한 날, 그 임대인은 내가 뭐가 무서웠는지 옆에 친구까지 대동하고 나와서
합의서에 사인을 받고 갔다.
집이 3채나 있다는, 대학교수라던 그 임대인은 그렇게 나와 작별했다.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그날의 반성 : 반지하는 절대 살지 말자.
혹여나 제가 집 관리를 엉망으로 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의문하는 분이 계실까.
제 마음속으로 임대인에게 편지를 써 보았습니다.
야. 내가 나중에 우연히 그 근처 지날 때 궁금해서 가봤다.
사실 안 갈 수도 있었는데. 궁금하더라고.
집 나갔나 안 나갔나. 웃기지?
다행히 안 나갔더라.
혹여나 나 나가고 나서, 3개월도 안 돼서 새 세입자 들어왔으면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새 세입자 월세도 받고 내가 미리 낸 3개월치 월세도 받았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
정말 피가 뜨거워지더라고.
여름인데 창문 다 열고, 무슨 찜질방도 아니고 선풍기를 2개씩이나 틀고, 난방 틀고 있더라.
왜겠어? 왜? 습기! 다시 한번 습기!
그리고 창문 새시랑 장판이랑 도배는 다 새로 다시 했더라.
나 있을 때 진작에 해주지.
그럼 우리 가족 거기서 계약기간까지 계속 살았을 거고 월세 다달이 받고 얼마나 좋아.
근데 거기 계속 살았으면 반지하니까 왠지 인생도 반 깎이는 느낌이라
돈 모아서 아파트 청약할 생각도 못 했을 거 같아.
참. 깜박하고 말을 못 했네. 축하해줘. 우리 최근에 아파트 당첨됐어.
어라? 네가 집수리 안 해 줘서 내 기어코 거기 탈출하는 바람에
내 집 장만한 셈이잖아. 고맙다.
너의 깊은 뜻도 모르고.
이러고 보니 내가 XXX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