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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Dec 19. 2020

예방접종 맞는 날

주사기 페티시

간염 예방 접종을 맞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병원에 재고가 없을 수도 있다기에.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해서 A형 간염 예방접종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했다가, 다른 게 있다고 했다.

"예, 있어요. 아아~ A형이 아니고, C형 간염 예방주사는 있어요."

뭐지? 난 분명 A형 간염 예방접종이라고 했는데.

"저는 이번에 A형 간염 2차 맞을 차례라서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아~ A형 간염 2차 맞으신다고요? 지금은 없는데, 예약하시면 주문해서 A형 간염도 맞으실 수 있어요. 어떻게 예약 걸어 둘까요?"

괜히 찜찜했다. 가면 왠지 C형 감염 예방주사를 놓을 것만 같았다.

잠깐 고민하다, 이번에 바로 안 맞으면 잊어버릴까 걱정이 돼서.

"네. 예약해 주세요."

"이번 주 목요일 이후로 오시면 돼요."


그렇게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갔다.

이 병원은 일반적인 내과가 아니었다.

신장내과 전문의의 신장투석 전문 병원이었고, 일반 내방환자보다 신장 관련 질환이 있는 분들만 가는 병원 같았다. 10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신장투석용 침대가 30개 정도는 되어 보였다.

신장 투석하는데 보통 2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혹시나 나도 나중에 신장에 문제가 생겨서 투석을 받게 된다면' 하는 생각에 괜히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적어도 연세가 칠십은 넘어 보이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계셨다.

간단한 문진과 함께 예방접종 맞기 전에 체크할 사항을 물어보셨다.

그런데, 마치 처음으로 예방접종으로 하시는 것처럼, A형 간염 예방접종 주사의 포장 케이스 안 설명서를 펼치시며 주의 사항을 하나하나씩 읽어 주셨다. 그리고 전에 1차로 A형 간염 맞았을 때 팔뚝에 맞았는지, 엉덩이에 맞았는지 물어보셨다. '이것도 선택 가능한 건가?'

"1차 때는 팔뚝에 맞았습니다."

마침 간호사 분께서 들어오셨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팔뚝에 주사를 놓으라고 크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로 간호사 분께서는

"바지 살짝 걷어 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팔뚝에 놓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간호사 분께 마이동풍인가?

"네?"

뭐지? 싶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거는 팔뚝에 놓는 거라고 다시 말씀해 주셨다.

괜히 불안해져서.

'이거 설마 C형 간염 예방접종은 아니겠지?'

전화로 문의했을 때의 걱정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난, 외람되지만 "A형 감염 주사 맞죠?"라고 묻고는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팔뚝을 주시하기로 다짐했다.

간호사 분은 그런 나를 보고는 부담스러웠는지 멈칫하시고는.

"고개 안 돌리세요?"

속으로 '뭐 이런 놈이 다 있지?'라고 했을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다 대고 난 또,


"그냥 보고 싶어서요."


젠장!

'뭐 이런 주사기 페티시가 있어!'

했을 거야.

아니야.

안 했을 거야.

했을 거야.

을 거야.

거야. 거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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