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너 말이 맞다.'
전교생 등교가 시작됐다. 보통은 아이들 사이에서 뭔 일이 일어날까 걱정했건만,
동료 교사와 일이 벌어졌다. 발령받고 12년 만에 처음인 듯.
6학년 애들 몇몇이 아침부터 설사라도 지렸는지 우사인 볼트 급으로 화장실로 우당탕탕 뛰어감.
하필 화장실 앞이 내 교실이라, 뛰면서 내는 발자국 소리 플러스 고성 소리로 아침부터 짜증이 확 남.
뛰어다니는 애들에게 나가서 한 마디함. "이렇게 뛸 거면 저쪽 6학년 있는 쪽 화장실을 써 달라."
학교 건물이 'ㄴ'자 모양인데 한 변에 8개 반, 다른 한 변에는 3개 반이 있음
각 변에는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그 한 변의 8개 반 중 3개 반은 6학년.
한 화장실을 8개 반이 쓰자니,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몰리기라도 하면 미어터짐. 상황이 이럼.
6학년 애들에게 한 말이 6학년 부장교사에게 말이 들어갔는지. 1교시 수업 전부터 전화가 왔다
약간의 짜증이 묻어 나온 걸 보니 일단 급해서 전화부터 한 모양이다. 보통 이런 일은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일반적인데.
6학년 부장교사의 요점은 간단했다.
"아이들은 본인의 반과 가까운 화장실을 쓸 권리가 있다."
"그 화장실이 5학년 전용도 아니고, 가까운 곳의 화장실을 써야 편리하다."
"애들이 뛰는 부분은 죄송하지만, 그건 앞으로 교육시키겠다"
물론 자기 반과 가까운 화장실을 쓰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 나온 김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몰리기도 하고, 나름 선후배들인 학년 간 접촉이 그다지 좋을 것도 없고, 반대쪽 화장실이 그다지 멀지도 않아 보인다. (반대쪽 화장실의 거리는 코너 돌아, 교실 4개 폭 정도의 거리, 20m 정도), 코로나 거리두기, 접촉 동선 최소화, 혹시나 모를 코로나 감염 후 격리 최소화를 위해 학년별로 화장실 분리 사용이 어떠냐" 물었지만.
대답은 "기본권 침해예요."
무적의 논리 등장. 기본권 앞에 이건 뭐,
저 짝 화장실은 3개 반이, 이 짝 화장실은 8개 반이 써, 따위 논리는 무장해제당함.
어이쿠, 나를 기본권 침해하는 교사로 보는 거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저도 아이들 위해서 제안하는 건데요..."
대답은 '그건 선생님 생각이시고요'
1교시 수업 시작인 데다가, 기본권 침해 교사 공격에 당황해서 일단 전화 끊자고 하자고 하고 마무리함.
아니, 내 기본권은 어디로 사라짐? 뛰는 소음 피해는?
그러다 화장실 코너에서 아이들끼리 부딪쳐서 사고라도 나면?
코로나 감염이라도 일어나면?
그게 더 기본권 침해 아님?
애당초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게 사고예방의 첫걸음 이거늘.
뭐 온갖 걱정이 되었지만.
이럴 땐 '그래, 너 말이 맞다.'
그쪽도 뭐 다 틀린 말도 아니고, 이거 가지고 논쟁해서 이긴다고 돈이 더 나오냐, 힘이 세지냐, 절대 안 바뀔 사람 앞에 의미 없는 대화는 서로 손해다 싶어, 수업 종료 후 찾아갔다.
"네, 선생님 말씀대로 가까운 화장실 쓰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애들도 가까운데 써야죠. 대신 아이들 교육 한 번만 더 해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어찌 무적의 논리 앞에서 싸우겠습니까?
나오는 길에 그 반 학급 안내판을 보니
학급 목표가 '설렘, 만남, 배움'이었던 것 같은데.
부가적으로 공동체, 연대, 협동, 평등, 즐거움...
살짝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아... '할말하않'입니다.
이성과 감정의 균형, 원시 본능 극복, 일단 도전, 자기 수련, 성실, 근성기르기, 경제관념 세우기.
내가 잘 돼야 남도 잘 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을 모토로 학급 목표를 삼은 저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