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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sible Kim Nov 23. 2021

무적의 논리와 싸우는 법

'그래, 너 말이 맞다.'

전교생 등교가 시작됐다. 보통은 아이들 사이에서 뭔 일이 일어날까 걱정했건만,

동료 교사와 일이 벌어졌다. 발령받고 12년 만에 처음인 듯.


6학년 애들 몇몇이 아침부터 설사라도 지렸는지 우사인 볼트 급으로 화장실로 우당탕탕 뛰어감.

하필 화장실 앞이 내 교실이라, 뛰면서 내는 발자국 소리 플러스 고성 소리로 아침부터 짜증이 확 남.

뛰어다니는 애들에게 나가서 한 마디함. "이렇게 뛸 거면 저쪽 6학년 있는 쪽 화장실을 써 달라."


학교 건물이 'ㄴ'자 모양인데 한 변에 8개 반, 다른 한 변에는 3개 반이 있음

각 변에는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그 한 변의 8개 반 중 3개 반은 6학년.

한 화장실을 8개 반이 쓰자니,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몰리기라도 하면 미어터짐. 상황이 이럼.


6학년 애들에게 한 말이 6학년 부장교사에게 말이 들어갔는지. 1교시 수업 전부터 전화가 왔다

약간의 짜증이 묻어 나온 걸 보니 일단 급해서 전화부터 한 모양이다. 보통 이런 일은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일반적인데.

6학년 부장교사의 요점은 간단했다.

"아이들은 본인의 반과 가까운 화장실을 쓸 권리가 있다."

"그 화장실이 5학년 전용도 아니고, 가까운 곳의 화장실을 써야 편리하다."

"애들이 뛰는 부분은 죄송하지만, 그건 앞으로 교육시키겠다"

물론 자기 반과 가까운 화장실을 쓰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 나온 김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몰리기도 하고, 나름 선후배들인 학년 간 접촉이 그다지 좋을 것도 없고, 반대쪽 화장실이 그다지 멀지도 않아 보인다. (반대쪽 화장실의 거리는 코너 돌아, 교실 4개 폭 정도의 거리, 20m 정도), 코로나 거리두기, 접촉 동선 최소화, 혹시나 모를 코로나 감염 후 격리 최소화를 위해 학년별로 화장실 분리 사용이 어떠냐" 물었지만.


대답은 "기본권 침해예요."  

무적의 논리 등장. 기본권 앞에 이건 뭐,

저 짝 화장실은 3개 반이, 이 짝 화장실은 8개 반이 써, 따위 논리는 무장해제당함.

어이쿠, 나를 기본권 침해하는 교사로 보는 거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저도 아이들 위해서 제안하는 건데요..."

대답은 '그건 선생님 생각이시고요'

1교시 수업 시작인 데다가, 기본권 침해 교사 공격에 당황해서 일단 전화 끊자고 하자고 하고 마무리함.

아니, 내 기본권은 어디로 사라짐? 뛰는 소음 피해는?

그러다 화장실 코너에서 아이들끼리 부딪쳐서 사고라도 나면?

코로나 감염이라도 일어나면?

그게 더 기본권 침해 아님?

애당초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게 사고예방의 첫걸음 이거늘.

뭐 온갖 걱정이 되었지만.


이럴 땐 '그래, 너 말이 맞다.'

그쪽도 뭐 다 틀린 말도 아니고, 이거 가지고 논쟁해서 이긴다고 돈이 더 나오냐, 힘이 세지냐, 절대 안 바뀔 사람 앞에 의미 없는 대화는 서로 손해다 싶어, 수업 종료 후 찾아갔다.

"네, 선생님 말씀대로 가까운 화장실 쓰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애들도 가까운데 써야죠. 대신 아이들 교육 한 번만 더 해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어찌 무적의 논리 앞에서 싸우겠습니까?

나오는 길에 그 반 학급 안내판을 보니

학급 목표가 '설렘, 만남, 배움'이었던  같은데.

부가적으로 공동체, 연대, 협동, 평등, 즐거움...


살짝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아... '할말하않'입니다.

이성과 감정의 균형, 원시 본능 극복, 일단 도전, 자기 수련, 성실, 근성기르기, 경제관념 세우기.

내가 잘 돼야 남도 잘 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을 모토로 학급 목표를 삼은 저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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