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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웅 Sep 06. 2016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매트릭스>와 <아바타>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

 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이전에 감상했던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라는 감정이 종종 일곤한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생각나서 본 영화가 워쇼스키스(The Wachowskis)의 <매트릭스 트릴로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였다.




 두 작품 모두 스펙타클한 연출과 함께 곰곰히 생각해볼만한 철학적 담론을 앞세우고 있는 영화다. 


 예를 들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워쇼스키스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 이 작품을 통해 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사들 중에(너무 피곤한 상황에서 본 관계로 어디에서 나온 대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든 존재 중 인간 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오한다


 이 말이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려할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세번째 작품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 시온의 인류가 미후네 지휘관을 필두로 센티넬 군단과 싸우는 장면이 매우 장엄되게 연출되는 것을 보면서  


" 그래 인간 만이 모든 존재 중에 유일하게 장엄해지고 숭고해질 수 있지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은 왜 그렇지?' 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 수 없었다.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스미스 요원은 자신에게 끝까지 덤비는 네오에게 묻는다. 


대체 왜 포기하지 않나?


그리고 이에 대한 네오의 대답은...


그게 내 '선택'이야


제대로 맞은 한방이었다.

답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선택



  <아바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크 설리는 자신의 육체(인간)를 버리고 아바타(나비족)로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전에 그레이스 오거스틴 박사도 제이크 설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육체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렇다면 왜 한 명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고 다른 한 명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까?

또 나비족이 섬기는 나무의 혼인 에이와는 왜 그런 결정을 한 것일까?


 이 역시 바로 '선택'의 문제이다. 


 그레이스 오거스틴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이크 설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이어나가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둘의 선택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선택에 누가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은 할 수 없다. 

둘은 스스로의 의지로 각각 '죽음'과  '삶'을 선택했으며 에이와는 그저 그 선택을 존중했을 뿐이다.


 그레이스 오거스틴은 이미 자신이 죽을 때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인 에이와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더 이상의 다른 삶은 의미없는 것이었을테다.

그렇다면 제이크 설리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으로의 삶을 원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족 하나,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2013년 11월에 개봉했고 공교롭게도 수능일과 겹쳤었다. 당시 필자 본인은 수능을 보고 그날 이 영화를 감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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