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와 <아바타>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
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이전에 감상했던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라는 감정이 종종 일곤한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생각나서 본 영화가 워쇼스키스(The Wachowskis)의 <매트릭스 트릴로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였다.
두 작품 모두 스펙타클한 연출과 함께 곰곰히 생각해볼만한 철학적 담론을 앞세우고 있는 영화다.
예를 들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워쇼스키스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 이 작품을 통해 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사들 중에(너무 피곤한 상황에서 본 관계로 어디에서 나온 대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든 존재 중 인간 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오한다
이 말이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려할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세번째 작품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 시온의 인류가 미후네 지휘관을 필두로 센티넬 군단과 싸우는 장면이 매우 장엄되게 연출되는 것을 보면서
" 그래 인간 만이 모든 존재 중에 유일하게 장엄해지고 숭고해질 수 있지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은 왜 그렇지?' 라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 수 없었다.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스미스 요원은 자신에게 끝까지 덤비는 네오에게 묻는다.
대체 왜 포기하지 않나?
그리고 이에 대한 네오의 대답은...
그게 내 '선택'이야
제대로 맞은 한방이었다.
답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선택
<아바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크 설리는 자신의 육체(인간)를 버리고 아바타(나비족)로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전에 그레이스 오거스틴 박사도 제이크 설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육체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렇다면 왜 한 명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고 다른 한 명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까?
또 나비족이 섬기는 나무의 혼인 에이와는 왜 그런 결정을 한 것일까?
이 역시 바로 '선택'의 문제이다.
그레이스 오거스틴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이크 설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이어나가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둘의 선택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 선택에 누가 옳다, 그르다라는 판단은 할 수 없다.
둘은 스스로의 의지로 각각 '죽음'과 '삶'을 선택했으며 에이와는 그저 그 선택을 존중했을 뿐이다.
그레이스 오거스틴은 이미 자신이 죽을 때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인 에이와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런 그녀에게 더 이상의 다른 삶은 의미없는 것이었을테다.
그렇다면 제이크 설리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으로의 삶을 원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족 하나,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2013년 11월에 개봉했고 공교롭게도 수능일과 겹쳤었다. 당시 필자 본인은 수능을 보고 그날 이 영화를 감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