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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1. 2022

봄을 기다리는 나의 소중한 엄마에게

일반부 동상 - 정인용

너무나도 긴 시간 겨울을 보내고 이제야 봄을 기다리는 나의 소중한 엄마에게


엄마 안녕. 


초등학생 때 어버이날 편지를 쓴 뒤로 처음 쓰는 편지네. 최근에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서 느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써보려고 해. 


중학생 땐 사춘기, 고등학생 땐 기숙사, 대학생 땐 자취 바로 이어서 군대까지 내 인생의 절반을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다른 가족들에 비해서 우리는 그만큼 함께한 시간이 적었다는 말이겠지.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래서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엄마가 제공하는 다양한 희생은 당연하게 받고 있으면서 그만큼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일일까? 나는 엄마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 엄마는 그저 나를 낳아주고 키워줄 의무를 가진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지. 


그러던 어느 날 장난으로 응모한 페이스북 이벤트에 당첨돼서 우리 가족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었지? 엄마는 사기당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집에 걸 그 흔한 액자 하나 없는 우리가 가족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하면서 기뻐했던 모습이 눈에 선해. 77000원이라는 다소 비싼 엄마의 메이크업비를 업체에게 들었을 때, 말리지 못했던 것은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일까? 심지어 엄마의 결혼식에서도 그렇게 오랜 시간 진하게 메이크업 받아본 적이 없다는 말. 엄마는 찍자마자 맘에 들었는지 평소 찍지도 않는 셀카를 찍고 있더라? 2시간이나 걸린 긴 촬영에도 평소 다 모일 일이 없는 가족들이 함께한다는 것이 그리도 좋았는지 그 시간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나 봐? 결국, 아쉽게도 무료 이벤트는 상술이었고 우리는 비싼 메이크업비와 2시간을 들여 A4 크기의 작은 액자 하나를 얻었지. 결과물은 좋지 않았지만 사진 촬영하면서 언제 한지 기억도 나지 않는 스킨쉽들을 하며 잠시나마 우리가 정말 화목한 가정이라는 착각도 했었어. 


무엇보다도 이런 것이 처음이라는 엄마의 말과 너무나도 좋아했던 모습에서 엄마도 예쁜 것을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그리고 어린 소녀처럼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 엄마는 그저 흔한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무표정이 엄마의 표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런 여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본인을 희생해서라도 우리에게 뭐하나 더 좋은 것을 해주려고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여름과 가을을 겨울처럼 보낸 것을 이제는 알아.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다 컸다고 또 엄마를 떠나려 하고, 엄마는 우리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진짜 겨울이 와버린 거지. '문득 쳐다본 그 입가에는 미소가 폈지만, 주름이 졌죠. 내게 인생을 선물해주고','포기해버린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이라는 가사가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은 탓일까? 김세정의 '꽃길'이라는 노래가 문득 떠오르네. 이 노래는 다음의 가사로 끝나 ' 날 품에 안고 흔들림 없는 화분이 되어준 당신의 세월, 여길 봐 행복만 남았으니까 다 내려놓고 이 손 잡아요. 꽃길만 걷게 해줄게요'. 엄마 이제는 엄마가 피운 꽃을 감상할 계절이 왔어. 이제 내가 떨어지더라도 엄마가 새로운 봄을 맞아 꽃을 피우는 싹을 틔우길 진심으로 바랄게. 나는 이제 상술인 걸 알면서도 이런 무료 이벤트에 미친 척하고 응모할지도 모르겠어. 잠시나마 지나간 엄마의 계절을 볼 수 있다면 말이야. 엄마는 메이크업을 받아도 이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다지만, 엄마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예뻤어. 정말로. 엄마 사랑해.


2019년 10월 10일,

당신의 꽃과 거름이 될 못난 아들이




2019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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