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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1. 2022

큰 눈이 예쁜 라티 형님께

일반부 동상 - 정옥선

큰 눈이 예쁜 라티 형님께


이렇게 형님께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이네요. 형님을 만난 지도 어느새 13년이 지났어요. 고백하건대 저는 첫 만남, 형님을 한국에서 돈 벌기 위해 불법 체류한 태국 여자, 그렇게 단정 지었어요.


아주버님이 결혼한다며 형님을 집에 초대한 그 날, 그때 저도 남편도 어머님도 아버님도 많이 놀라고 당황했어요. 마흔이 넘도록 한 번도 연애를 하지 않았던 아주버님. 결국, 처음 보는 태국 여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서둘러 한다 생각했어요. 아주버님보다 12살 어린 나이 차이. 저의 편견은 더 깊어갔어요. 나보다 나이가 7살이 어린 형님, 낯선 모습의 형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나쁜 상상. 당시 TV에는 돈이 오가는 다문화 가정의 부정적 결혼 이야기가 쏟아졌고, 저는 당연히 형님과 아주버님이 그런 결혼을 하는 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혔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뿐이에요.


말이 통하지 않던 형님도 그랬겠지만, 우리에게도 많이 낯선 시간이었어요. 세월은 흐르고 형님은 빠르게 한국말을, 한국을 배워갔어요. 그 시간 동안 형님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냈을지. 형님의 사정도 모른 채, 저는 형님을 오해하고만 있었어요. 특히 어머님과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못나게도 소외감과 시기심까지 들었어요. 내성적인 저와 달리 형님과 어머님은 마치 한국의 모녀지간으로 보였어요. 그런 두 분 옆에서 저는 자꾸 못난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결혼과정, 나와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의 못난 마음으로 그렇게 형님을 오해하고, 시기하면서 달랬어요.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어요. 어느새 한국말이 너무 능숙해진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는 참 많이도 반성했어요. 형님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형님과 아주버님의 사랑 이야기는 소박하고 따뜻했어요. 불법체류자였던 형님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따라 먼 이국땅에서 한국 공장에 들어왔던 형님. 공장의 작업반장이였던 아주버님과의 첫 만남. 불법체류 단속에 걸려 강제 추방당하며 출입국 관리소와 공항에서 피어난 아주버님과의 가슴 아픈 사랑. 그 어떤 이야기보다 그 어떤 사랑보다 두 분의 만남과 사랑은 존경받고 박수받아 마땅했어요.


저는 가끔 형님과 보낸 시간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형님과 명절 음식을 하면서, 형님과 산책을 하면서, 형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 한 번도 형님은 제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그런 분은 형님 한 분뿐이었어요.


제가 닮고 싶은 형님, 그런 형님이 언젠가 결혼 초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어요.


아주버님이 출근하고 혼자 집에 있으면 초인종 소리가 제일 무섭다고 했어요.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문을 열어줄 수 없고, 누구냐 물어볼 수도 없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아주버님 이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나라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한 사람의 여자로, 아니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낯선 땅에 놓인 한 사람으로 형님을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두렵고 외로운 시간이었을지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그러고 보면 형님은 참으로 강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제가 가끔 명절 음식을 힘들어하면 형님은 우리가 많이 해야 어머님이 편하고, 친정에 다니러 온 고모도 먹을 수 있다고 말하지요. 형님은 정말 누가 뭐래도 넉넉하고 푸근한 대한민국 최고의 맏며느리예요. 단 한 번 불평이 없는 형님을 보면, 나는 자꾸만 부끄러워집니다.


어쩌면 형님과 나는 많이 다른 사람입니다. 피부색도 말도 문화도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형님은 그냥 좋은 사람입니다.


따뜻한 마음은 문화와 나이, 인종을 뛰어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진다는 사실을 라티 형님을 통해 알게 됐어요.


누구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형님, 정말 만나서 반가워요.


2019년 10월 2일

동서 드림.




2019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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