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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1. 2022

원계리로 보내는 편지

청소년부 장려상 - 김선

원계리로 보내는 편지


엄마가 고두밥을 찌고 누룩과 효모를 넣어 술을 담그십니다. 할머니의 생신이 다가오는 게지요. 곧 지리산 끝자락,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에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렙니다.


할머니,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 더위를 어떻게 견디셨는지요? 가끔씩 안부전화를 드렸지만 당신께서는 항상 모든 게 좋다고만 하시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스럽습니다.


옛날에 논에 농약을 치시다가 중독증상으로 고생하신 후, 친환경 재배를 하는 딸기 농사로 바꾸신 지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비닐하우스 6동의 딸기 농사를 9월에 시작해서 다음 해 2월에 끝내고, 잠시 땅을 고른 후에 바로 수박을 심어 8월까지 수확하기 때문에 1년 내내 농사일이 끊이질 않으시지요. 틈틈이 가족이 먹을 벼농사까지 하시느라 당신께서는 매 순간 바쁘십니다. 딸기와 수박은 모두 바닥에 엎드리거나 쭈그려 앉는 자세로 작업하기 때문에 관절염과 디스크 증상도 심해지셨고요. 그렇게 농사일이 지치고 힘들 때,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은 바로 보약이라고 하시면서 함박꽃처럼 웃으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올해 17살인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당신께서 보내주시는 먹거리로 신체를 키웠고, 당신과의 추억으로 정신을 살찌웠습니다.


겨울이면 당신께서는 제가 딸 딸기를 남겨두십니다. 크고 붉은 딸기를 한입 베어 물면 행복감이 제 영혼을 채웁니다. 여름이면 제가 돌려놓을 수박 라인을 남겨두십니다. 수박은 위아래를 돌려주어야 전체가 고르게 초록색을 띄게 된다고 알려주셨지요. 거북의 등딱지처럼 단단하고 커다란 수박을 돌려놓는 작업은 힘들지만 아주 재미있어서 제가 즐기는 일입니다. 텃밭에는 고추와 옥수수, 고구마 등이 한창이고 맑은 수로 변에는 분홍색 우렁 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그 풍경이 떠오릅니다. 우렁이 논에서 나오는 친환경 쌀로 밥을 하면 찹쌀밥처럼 쫄깃한 맛이 나서 입이 즐겁습니다.


덕천강변 시원한 정자에서 생신잔치가 벌어질 날을 기대해봅니다. 살얼음이 낀 수제 막걸리와 맛난 음식을 놓고 동네 어르신들이 잠시 농사일의 숨 고르기를 하시겠지요. 청정한 하늘 아래 건강한 작물들은 고유한 색과 향기를 뽐내고, 살 오른 미꾸라지가 사는 개울 위로 빨간 잠자리가 날겠지요. 원계리에 갈 때면 항상 가져갔던 짐보다 받아오는 짐이 더 많습니다. 인심 좋은 동네 어르신들이 말린 나물과 고추, 참기름 등 귀한 먹거리를 나누어 주시고, 제가 직접 탐구하여 알려드린 ‘EM용액을 이용하여 음식물쓰레기를 거름으로 재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칭찬과 감사의 인사도 넘치도록 건네시겠지요. 저도 아름다운 원계리의 환경보전에 한몫을 한듯하여 가져다 드릴 EM용액을 만드는 데 신이 납니다. 


할머니, 한반도를 긴장시켰던 태풍이 큰 피해 없이 지나가서 정말 다행입니다. 밝은 얼굴로 다시 뵙는 날까지 매일매일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인천에서 당신의 막내 손자가 드리는 편지입니다. 그럼 이만…….


2018.08.25




2018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손편지부문 청소년부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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