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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1. 2022

7층에 사는 전교회장에게

일반부 장려상 - 이지연

7층에 사는 전교회장에게


안녕, OO초등학교 전교회장 민석아. 요즘 날씨가 참 덥다. 그렇지?


어제도 더웠는데 오늘도 덥네. 아마 내일도 더울 것 같아. 올해의 폭염은 역대 최대라고 하더니 정말 대단하지? 지진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태풍은 갈수록 더 거대해지고, 무더위는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데 뭔가 억울하지 않아? 지구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힘이 세다고 우리를 마음대로 괴롭혀도 돼? 우리도 좀 살자.’ 내가 아무리 말해도 지구는 듣지 못하겠지? 지구와 나는 서로 다르게 말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니까.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 나는 너와 같은 아파트 19층에 살고 있는 아줌마야. 왜 있잖아. 엄청 예쁘고 날씬한 아줌마…….? 농담이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항상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굉장히 멋진 아이라 생각했어. 아줌마 아이도 민석이처럼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 그런데 얼마 전 아파트 로비에서 이상한 장면을 봤어. 내가 너에게 이런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해. 나는 그때 우리 꼬맹이를 기다리고 있었어. 빈 병을 재활용 통에 버리러 갔거든. 근데 친구들과 함께 있던 네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과자봉지를 버리고 오겠다고 하더라고. ‘아! 역시 민석이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했지. 그런데 민석이 네가 밖으로 나갔다가 30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로비로 들어오는 거야. 한참 전에 나간 우리 꼬맹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말이지. 너는 다시 친구들과 하하 호호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어. 얼마 후 로비로 들어온 꼬맹이에게 형아를 만났냐고 물어보니 못 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단다.


며칠 후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던 꼬맹이의 공이 화단 깊숙이 들어갔어. 공을 찾으러 갔던 꼬맹이가 무언가 유심히 구경하고 있었어. ‘엄마, 완전 대박이예요. 여기 곤충이랑 벌레들이 과자 집에서 살아요?’ 공벌레들이 집으로 착각했다가 못 나온 건지, 버려진 유리병 속에는 죽은 공벌레들이 여럿 있었어. 그리고 그 옆에서 개미들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과자 집들 속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했지. 부스러기들을 나르려고 말이야. 그 과자집이 버려진 쓰레기들이라는 게 함정이었지만, 개미들이야 알 길이 없지. 쓰레기 과자 집들 중에 눈에 들어오는 과자봉지가 하나 있었어. 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색조차 바래지 않은 비닐. 바로 얼마 전 로비에서 너의 손에 들려있던 것과 똑같이 생겼더구나. 화단의 위쪽이 로비 바깥 난간과 이어지는 걸 생각하면 범인이 누군지 알 것도 같지?


개미도, 공벌레도, 그리고 화단의 나무들도 참 억울할 것 같아. 매일매일 하늘에서 쓰레기가 쏟아진다고 생각해봐. 어떻겠니? ‘야! 그만해. 귀찮다고 우리에게 버려도 돼? 우리도 쓰레기 없는 곳에서 좀 살자’ 어디선가 익숙한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네. 어쩌면 아무리 외쳐도 우리가 들어주지 않으니까 태풍이나 폭염 같은 재해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일지도 몰라. ‘더는 우리를 해치지 마’라고 말이야. 어쨌든 지구도 살아야 하니까. 그럼 우리도 그들이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야 하겠지.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자연을 지켜주는 방법으로 말이야. 지구가 우리를 병균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 수많은 재해나 쓰레기 비를 뿜어대지 않도록 말이야. 우리 역시 지구와 함께 살아야 하잖아.


우리 꼬맹이가 정말 멋진 형아라고 생각하는 민석아! 네가 앞장서서 자연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모범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럼 너를 따르는 많은 학생이 함께 행동할 테고, 지구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그럼 지구가 답을 줄지도 몰라. ‘OO초등학생들은 병균이 아니야. 그들은 지구에서 함께 살 친구들이야. 그들을 지켜줘’


2018.8.25

지구와 함께 살고 싶은 초미녀 19층 아줌마가




2018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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