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짝꿍 재광씨께

일반부 대상 - 유미숙

by 편지한줄

내 평생 짝꿍 재광씨께


봄꽃들이 한창입니다. 벚꽃 이파리는 바람을 타고 너울춤을 추고, 저 편에 오종종 피어있는 노오란 민들레는 지들끼리 도란거리면서 봄날 오후를 즐기고 있습니다.


점심은 드셨나요? 저는 상추 겉절이와 짜장밥, 계란국에 맛있게 먹었답니다. 도시락 싸들고 다닐 때보다 편하고 맛있기는 한데 뱃살이 더 찔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여럿이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시간은 즐겁네요.


지난 연말에 당신께 손편지를 쓴 뒤,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카톡으로 쓰는 쪽지 편지는 늘 쓰지만 이렇게 바르게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손편지를 쓰고 있으면 기분이 오묘해지고 경건해지기까지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여보, 당신과 인연이 돼 함께 한 세월이 자그마치 30여 년이 되어 갑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둘 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결혼이라서 하루하루가 눈물이고 한숨이 터질 만큼 힘든 과정이었지만 당신과 나, 용케도 잘 극복해서 여기까지 왔군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 무던히도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위기의 순간을 여러 번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우리 둘의 보석과도 같은 딸, 다영이와 찬은이를 생각하고 잘 조율하며 버텨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신과 나 사이에 다영이와 찬은이가 있기에 더 행복한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여보! 다영, 찬은아빠!

그동안 정말 애쓰셨어요. 우리 가족을 위해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 잘못되어 저 밑바닥까지 추락해서 5년 동안 당신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하루 5시간 이상 자면 죽고 4시간만 자면 살 수 있다고 하면서 밤에 대리운전을 자그마치 5년이나 했던 당신, 그 덕분에 나까지 편하게 잠도 못 자고 5분 대기조 생활을 했지만 당신이 겪은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처음엔 며칠 하다가 그만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대리운전 생활을, 직장일을 병행하며 성실하게 해내는 당신을 보며 절로 엄지손가락이 추켜세워졌어요. 물론 당신이 벌인 일 수습하는 것이라며 자업자득이라고 어느 땐 속으로 고소해했던 적도 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힘들었어요, 많이.


지금은 이렇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땐 행여라도 당신한테 상처가 될까 봐 눈치만 보느라 말도 못 했는데... 시간이 약이라더니 이제는 말할 수 있네요. 여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고, 앞으로는 길이 아닌 곳엔 절대로 발 담그지 말고 큰 욕심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기로 해요. 나이 오십 넘어서 비싼 수업료 지불하고 얻은 교훈 삼아 다시는 그런 실수하지 말기로 해요.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당신이나 나나 둘 다 견뎌내지 못할 것입니다.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키 큰 소나무 세 그루는 바르르 떨고 있고, 벚꽃 이파리들은 어쩔 줄 모르고 나부낍니다. 창문도 덜컹거리며 많이 놀란 모양이고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는 것처럼 앞으로 당신과 나 사이 삶에도 몇 번의 위기가 몰아닥칠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고, 우리에겐 소중하고 귀한 두 딸, 거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녀석들 은재와 은환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이고, 애들 할머니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 역할 잘하겠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보기에 좋은 아내이고, 여자이고 싶습니다. 머리는 속이 훤하고, 서릿발 하해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보기 민망한 당신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내가 만들어준 음식 맛나게 먹어주는 당신이 고맙고, 아침마다 한 이불에서 눈 뜨고 일어나는 게 행복한 여자입니다. 이제 서서히 노년을 준비해야 할 나이. 내일 당장 무슨 일을 당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신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지금처럼 서로 보듬어주고 살아요. 사랑합니다.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2017.4.141

당신의 영원한 짝꿍

미숙 드림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일반부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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