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지한줄 Jan 20. 2022

파랑이 숨 쉬는, 그 끝엔

중등부 은상 - 박수정

파랑이 숨 쉬는, 그 끝엔


절영도.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곳이야. 작지만 큰 자연을 품고 있는 영도의 색은 '푸르다'로 표현될까. 푸른 바다, 푸른 산, 푸른 하늘.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걸을 때면 20분은 더 걸리는 해안 산책로 쪽으로 빙 둘러 걸어가곤 했지. 오른편으로 세워진 울타리, 곳곳에 서 있는 큰 나무들, 수평선과 맞닿아있는 바다, 바다 냄새가 담긴 파랑, 기억나? 그곳을 걸으면 생각들이 피어올라.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 깨어보면 멋진 절경에 놀라곤 해. 나에게 '파랑'은 사색과도 같아. 많고 다양한 파랑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짙은 파랑은 나를 깊은 동굴 속으로 데려다줘. 파랑은 나에게 그런 의미야.


그리고 지금, 나는 조금은 더 차가운 파랑의 시간 속에 살고 있어. 파랑이 바다뿐만 아니라 나의 온 세상을 덮고 있어. 책상 위의 문제집, 주고받는 말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 이건 나의 어질러진 퍼즐이자 어린 시절 너의 비밀스러운 기록이야. 부디 이 편지가 세지 않은 바람으로 너에게 닿길 바라볼게.


사춘기였어. 혹시 이 말이 너에게 가볍게 들릴까 두렵기도 해. 열여섯, 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 생각해 보면 이건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일까. 결점 없는 인간이길 원했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길 바랐어. 나는 그 화사한 햇살을 닮고 싶어서 뜨거운 세상 밖으로 나왔어. 무엇이든 더 잘하려 안간힘을 썼지. 그렇게 해서 이뤄 놓은 결과물들은 꽤나 만족스러워. 그런데 지금, 지금은. 나를 깎아내려 만든 나의 모든 것들이 조금은 버겁다는 생각을 해. 너무 지친 거겠지. 해는 너무 높고 눈부신 고에 있어서 내가 올려다보려 해도 쉽게 허락하지 않아. 나는 나를 다치게 하는 그 해가 뭐 그리도 좋다고 애를 쓸까. 나는 이렇게 점점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면서도 또다시 해를 보려 세상 밖으로 나오겠지. 그런데 있잖아, 난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잘 되길 바라. 그리고 나는 알고 있어. 이런 힘든 순간들조차도 결국은 '나'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믿어. 파랑으로 가득한 섬 영도에서 더 큰 파랑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 시간들이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선글라스 같은 순간일 거야.


수정아. 괜찮아, 잘하고 있어. 햇살이 눈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아도, 그런 시간들이 나를 깊은 파랑 속으로 데려가도, 나는 그 눈부시고 아름다운 파랑들을 온 가슴으로 끌어안고 나아갈 거야. 해에 닿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이걸 읽고 있는 너는 지금 어느 시간 속에 살고 있니? 그게 어디라도 응원할게.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나를, 진심으로.


From. 열여섯의 나.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중등부 은상



작가의 이전글 2040,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