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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0. 2022

사랑해 마지않는 동생에게

중고등부 장려상 - 손어진

내 동생 한비야.


벚꽃도 떨어지고 나뭇잎도 초록으로 여름 매미 떼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일찍 뜬 해가 나 일어났노라고 눈부셔도 아직은 아침 공기에 초봄 추위가 안 떨어졌다. 피곤한 눈 비비면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네가 내 눈에는 마냥 초등학생이라 가끔은 안쓰럽고 안타깝다. 등교할 적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너하고 나란히 걷고 있자면, 셔츠 아래로 찬 바람 들어 몸 식어서 여름 감기에 고생이나 안 할는지 항상 걱정이다. 짧고 어설픈 입씨름이나 담화는 집어치우고 누나 좋아하는 글문 적어서 너한테 이야기하려니까 유독 말이 많아질 것만 같다. 말들 나누라면 너도 입이 짧고 나도 생각이 짧아서 우리 담소 나눌래도 항상 마지막에는 엉성하게 웃음만 웃으면서 서로 핸드폰으로 시선만 돌리고 말았지 않니. 예쁜 말 해주고 싶고 재미있는 말도 들려주고 싶었는데 말소리로는 못 할 것 같아서 너 보여주려고 정작 편지지 책상에 펼치고 연필 손에 쥐어보니까 자꾸 너랑 마주 보고 선 것처럼 계면쩍은 김에 매일 보던 글도 간질간질 우습게만 보인다.


너는 항상 나하고 한 걸음 멀게 있으면서도 그러니만큼 잊어버릴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뒤에 서 계셨다면 형제는 나란히 서는 것 같다. 동생과 누나라지만 나는 네가 내 뒤에 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언제나 마음 한편에 있을 것이 분명한데 가끔은 시야에 닿지 않더라. 가족이란 것이 받쳐주고 함께 가는 이들인지라 내가 지쳤을 때는 차마 뒤를 돌아보고 너를 돌아보며 보듬 지를 못해서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엄마와 아빠는 낫다. 너는 말이 없고 바라는 게 없어 보여서 더욱 너를 돌아보지를 못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내게 지금 여유가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키니 새삼 그것이 미안하다. 네가 알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기왕 펜을 들었고 네가 기왕 편지를 받았으니 마주 보고서는 쑥스러워 못하고 쑥스러워 못 들을 이야기도 적으련다. 네가 내 동생이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울적하고 우울한 누나 보면서 자라서 반듯하게 중학교에 입학한 것을 보니 놀랍고 대견하다. 너는 내가 일생 하지 못했던 것을 다 대신하려는 것처럼 노력하고 있다. 서글프고 서러워서 울다가도 네가 나처럼 힘들어할까 봐, 네가 나를 닮아 모든 것에 피로를 느낄까 봐서 두렵고 불안했다. 그것조차, 뒤늦게 너를 돌아보는 것조차도 너무나 드물고 신경이 기울어지지를 않는 일이라서 가끔가끔 한 번을 겨우 떠올릴 때마다 너에게 죄스럽고 괴로웠다. 그래서 졸업식 날 나는 목이 메었다. 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날 나는 고마워서 울었고, 기뻐서 울었고, 네가 자랑스러워서 울었다. 어찌 보면 주책스럽고 유난스럽기도 하고 너는 부끄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고마웠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네가 하는 것 같아 벅차고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이해할 것 같다. 나는 이상하게 엄마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너를 염려하곤 했다. 4살 터울이 나에게만은 퍽 거대하게 느껴진 것도 같다.


한비야, 나는 네가 걱정이다. 나의 우울과 무기력은 중학교 다닐 적에 점화되어 이제야 폭발했다. 네가 무기력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우울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너는 모든 것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 보이고, 가끔 네가 말을 걸어주는 것이 꼭 누나를 위로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 눈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꽉 막히는데도 기분이 좋다. 엄마는 네가 성취감을 아는 것 같다고 하셨다. 넌 나하고는 다르다. 나는 성취감을 모르고 너는 벌써는 그것을 안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너는 잘할 것 같고 잘 살 것 같은데, 사실은 네가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지 자꾸 걱정이 되고 눈길이 간다. 내가 예민하고 쓸모없는 걱정이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괜히 이러는 것이 아니다. 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하고는 판이하게 달라 보여 서다. 너는 어른스러워졌다. 어리광도 없고 네 일은 잘하고 막힐 때에만 적당하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질 않니. 아직 14살밖에 안된 네가 혹시 나 때문에 억지로 일찍 철이 들어버리고 만 건 아닐까 겁이 자꾸 난다. 나와는 다른 모양으로라도, 네가 괴로워질까 봐 누나는 많이 두렵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고통이고 외로움이고 슬픔이다.


누나는 너에게 해준 것이 없다. 이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 좋으신 분들이고 너는 벌써 많이 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너만 한 시절을 어처구니없을 만큼 재미없게 보낸 누나는 그때도 지금도 똑같이 말로만 너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할 뿐이다. 그조차 너에게 전했는지 잘 모르겠다. 누나가 할 줄 아는 것이 글자 적는 것밖에는 없는데, 이런 때에는 그것마저도 야속할 만큼 무언가를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부족하다.


네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우리가 엄마 키의 반 정도밖에 오지 않았던 때에, 한강의 자갈밭에 내려가 예쁜 돌을 줍고 쌓고 뛰던 때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누나는 그때가 참 즐거웠던 것 같다.


너는 지금 행복해하고 있느냐, 너는 누나와 함께 있으면 그때처럼 지금도 행복하고 기분이 좋으냐, 누나는 그렇다. 나는 지금도 그때처럼 네가 말을 걸면 행복하고 고맙다. 사랑스럽다.


사랑하는 한비야!

부디 너도 행복해라. 그럼 나도 행복할 것이고, 부모님도 기뻐할 것이 아니냐. 기쁜 일을 성의껏 기뻐하되 힘든 일도 참지 말아라. 가족이 너의 편이고 누나가 너의 편이다. 힘든 일을 양껏 힘들어하되 너를 미워하지 말아라. 그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고 슬픈 일이다. 부모님이 너를 사랑하고 하나뿐인 누나가 너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김을 잊지 말아 다오. 고맙고 사랑하고 또다시 고맙다.


네 누나가.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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