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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0. 2022

내게 특별한 선물을 안겨준 당신에게

대학일반부 장려상 - 정용진

내게 특별한 선물을 안겨준 당신에게


여보, 오늘은 성난 파도처럼 날씨가 요란스럽네요.

강풍이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며 성난 기세로 베란다 창문을 거칠게 덜컹이며 마구잡이로 흔들어대고 있어요. 밖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잡동사니 내동댕이 처지는 요란한 소리가 평온하던 나의 심장 박동마저 놀라서 불규칙하게 뛰고 있어요. 한겨울 발가벗은 몸으로 잘도 버터 오던 강인한 나무가 사정없이 가지가 꺾이어 나가더니 땅속 깊이 뿌리내린 터전까지 허물어져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네요. 마치 당신과 내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생을 회상이라도 하듯 말이에요. 파릇파릇 생기 있던 나뭇잎은 사정없이 찢기어져 나가고 있네요. 흙과 먼지, 쓰레기와 오물이 뒤엉켜 회오리바람마저 합쳐지니 잠시 외출을 미루어 당신에게 몇 자 적어봅니다.


평범하지 못한 삶이 수없이 많은 세월을 지나왔지만 우린 두 손 꼭 잡은 채 동행한 지난 삶에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여보, 그런데요? 암담했던 그때 일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영화나 소설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잖아요. 전신마비란 병명 말이에요. 교통사고로 인한 당신의 전신마비 1급 판정! 정신을 차릴 조금의 여유도 없이 벌어진 집안의 화재 사건. 소방차가 7대나 왔었지만 내부는 완전히 소멸이 된 상태이었지요. 전신마비가 된 당신과 철없는 어린 두 자녀 끌어안고 가기에도 숨이 차올라 왔었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을까요? 나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암 3기 판정 그 뒤에 따라다닌 엄청난 불행들.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지난날들의 아픔이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몹시도 힘이 들었지만, 마치도 해가 지고 나면 어두운 밤이 오듯 우린 그렇게 기약 없는 어둠 속을 걷고 있었지요. 말없이 묵묵히... 당신과 나 우리 두 자녀 서로의 손을 잡고 어둡고 긴 터널 속을 지나 황량한 허허벌판을 헤매며, 꽁꽁 얼어붙은 손과 발을 서로의 입김으로 녹여주면서 말이에요. 드디어 어둡고 긴 겨울밤이 지나가고 우리의 허락 없이 왔던 모든 불행들이 우리의 삶에 무릎 끓어 아름다운 꽃과 진한 향기로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게 되었지요. 여보, 우리 네 가족 서로의 위치에서 모두가 힘이 들었지만 열심히 노력해주어 지금처럼 특별한 기적 속에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당신 기억나요 그때 일들? 기약 없이 투병 중이던 당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사건들 말이에요. 전신마비 환자이던 당신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손가락 한 마디씩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연이어 발가락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기쁨은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황홀한 비명을 지르며 행복했던 순간을 말이에요. 그 행복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기도 전에 연이어 나에게 들려온 엄청난 비보 유선암에서 임파선암으로 전이가 되어 암 덩어리를 28개나 제거한 뒤 사경을 헤매었던 그때의 사건들. 내가 준비해놓은 수의와 영정사진 당신이 보기 싫다며 없애 버렸잖아요. 그때 내 나이 고작 39세였어요.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여보, 이렇게 힘에 겨운 세월 속에서도 당신 포기하지 않고 내 손잡아 줘서 고마워요. 보석 같은 우리 아들과 딸 이런 엄청난 환경 속에서도 곧고 올바르게 자라주더니 아들은 대기업에 수석으로 입사했잖아요. 엄마인 내가 도와준 것이 없어 염치없고 가슴 아파 울먹이며 축하한다 하였더니 장한 우리 아들 오히려 "엄마! 축하드립니다. 오늘의 이 영광을 엄마에게 드려요! 이렇게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우리 가정을 잘 지켜주신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하며 크게 외쳤잖아요. 온 세상이 다 들릴 만큼 큰 소리로, 학원이며 과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우리 아들 불평 한번 하지 못하고 밤을 새우며 아르바이트하며, 뜬 눈으로 공부하여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타냈었지요. 그때는 기쁨보다는 미안함과 아픔으로 찢어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서로의 눈빛으로 전달했었지요. 여보, 병원에서만 살던 엄마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던 가여운 우리 딸. 지금은 누가 보아도 어여쁘게 자라주어 간호사라는 직분으로 아름답고 성실하게 살고 있잖아요. 진흙 속에서 진주가 생성되듯 기나긴 인고의 시간 앞에 잘도 견디어준 소중한 당신, 내 어찌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리오. 


여보 사랑해요! 당신은 내게 해 준 것이 없다며 항상 미안해했지만, 내 생명보다 귀한 우리 아들과 딸 내게 안겨 주었잖아요. 월급봉투 대신 언제나 약 봉투가 더 컸지만 당신 지금은 지팡이 의지한 채 뒤뚱이며 걸어 다니고, 나를 과부 소리 안 듣게 만들었잖아요. 오랜 세월 당신의 용변을 받아오긴 하였어도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지금은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간병할 수 있도록 허락된 여건에 눈물이 나도록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홀로 용변 해결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이 사람 활동보조라는 직업으로 다른 이를 보살피며 용변을 받게 되었지만 그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수 없이 많은 바람이 우리 가정을 흔들고 지나갔지만, 굳건하게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우리 네 가족 끝까지 잘 버티어서 뿌리는 그 자리 더욱더 깊게 내려지고,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새들이 지저귀며 아름다운 등지 틀어 새 생명 잉태하니 이 얼마나 특별한 가정인가요.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끝까지 잘도 버티어 주어서 가능하다는 사실 앞에 겸허히 무릎 끓어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보 사랑해요. 부족한 당신의 반쪽 아내가 드립니다.


2016년 5월 2일 사나운 강풍이 불던 날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대학일반부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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