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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Feb 10. 2022

바보 같은 형에게

대학일반부 장려상 - 유영찬

바보 같은 형에게


"형이 오늘 약속이 있어 나가는데 방향이 그쪽이라 기차 타는 역까지 같이 갈까."


형, 기억나지. 내가 자대 배치 후 첫 특박을 나왔다가 귀대할 때 아무런 약속도 없으면서 슬쩍 용산역에 내려 열차 안까지 따라와 배웅하고 돌아서며 손을 흔들던 일 말이야. 그때, 얼마나 울컥했는지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창밖만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던 것이 벌써 일 년이 되었어. 


형, 형은 참 바보 같아. 그렇게도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형이 왜 자신의 몸은 제대로 살피지를 않았는지 나로서는 불가사의하거든. 


그러니까 내가 군 입대를 앞둔 어느 날이었지. 형은 가슴이 늘 뻐근하고 피곤하다며 동네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후 더 큰 병원에 가 보라는 말을 듣고 걱정은 되었지만 설마 했지. 그런데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심장 판막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잖아. 형은 그렇게 힘든 신체적 이상에도 불구하고 2년의 군 생활을 무사히 마쳤던 것이지.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형이 안고 있는 심장의 이상은 군 면제까지 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음에도 형은 담담하고 냉정했잖아. 형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억울해하고 안타까워할 만도 한데 오히려 그렇게 힘든 군 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고 얘기했잖아.


사실 내게 있어 형은 오르지 못할 거대한 나무와 같았지. 그래서일까. 내가 어렵게 뭔가를 말하면 형은 한 번에 맞장구를 치는 법이 없었어. 언제나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가며 내 의견을 반박했지.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가며 형이라는 이유로 강요를 주입시키고 있다고 나는 늘 생각했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형은 내가 말하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못된 형'이란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지. 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면서 진지하게 말하기보다는 늘 삐딱하게 말하고 싶었어. 나의 단점을 송곳으로 찌르듯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개선점을 말해주는 형이 정말 미웠지. 숨이 막힐 것 같아 이성을 잃고 밥 먹는 자리에서까지 소리를 지르며 형에게 대들던 일도 많았잖아.


참, 웃기지. 그것이 나를 끔찍이 위하는 형의 마음을 알게 된 지금, 형에 대한 나의 과민 반응은 나의 자격지심이자 쓸데없는 오기였음을 알고 형 생각을 할 때마다 얼굴이 빨개지는 걸.


형, 고백하나 할까. 형이 학교를 휴학하고 군 입대를 결정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 부끄럽게도 2년간 형과 부딪칠 일이 없다는 사실 하나에 크게 안도하고 기뻐했지. 군에 입대해서 기본 군사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2박 3일간의 특박을 나와 부모님 앞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울먹이며 눈물을 쏟는 모습은 평소 형의 태도와는 전혀 달라서 깜짝 놀랐지. 겁은 많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잘 참아내는 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보기 어려웠거든. 심지어 '중간중간 참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라고 울먹일 때는 나도 얼굴이 화끈거렸지. 그러면서도 열등감에 젖어있던 나는 '남들 다 가는 군대 한 번 가면서 티를 내기는' 하면서 왠지 모를 통쾌함이 온몸으로 전해졌지. 지금에야 말인데 군 입대에 대해 나는 형보다 몇 배나 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거든.


형은 특기 교육 후 좋은 성적을 얻어 원하는 곳에 배치를 받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형만의 걱정거리가 있었던 것이지. 일 년에 두 번씩 있는 동하계 유격 훈련을 나갈 때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훈련 전날에는 제대로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했잖아. 형에게 있어 유격훈련은 눈물 날 정도로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을 테니까. 한 번은 산 정상 부근까지 뛰어올라가다 눈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지러워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린 일도 있었다면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렇게 훈련이 힘들었다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군에 대해 말하기조차 싫었을 텐데 말이야. 내가 군 입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알고 마치 홍보대사인 것처럼 긍정적인 면을 깨알같이 말했잖아.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일이.' 형은 정말 바보 같았지. 나는 그럴 때마다 소름이 돋았지.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이상하리만치 형을 보면 마법에라도 걸린 듯 나의 속마음을 하나씩 털어놓게 되더라니까. 희한하게도 형 앞에서 말을 하고 나면 막혔던 가슴이 뱅 뚫리곤 했지. 형, 그거 알아. 바람보다 빨리 찾아와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주며 이제는 내가 채울 공간을 남겨놓는 형이 보내는 무수한 말 줄임표가 있어. 그 해독되지 않는 암호를 따라가면 저리도록 아픈 폐부를 뚫고 메아리의 주문으로 하늘 문을 두드리는 소박한 기원을 만나지. 멈출 수 없는 사랑의 영원한 울림, 내 마음속 우편함에는 언제나 형의 심장이 뛰고 있어.



형의 권유로 입대한 공군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체력적으로는 자신 있었던 나도 힘이 많이 들었지. '형은 얼마나 힘겨웠을까. 정상적이지 못한 몸으로 남들과 같이 훈련을 받는 것이 얼마나 눈물겨웠을까. 그 공포와 두려움을 어떻게 참고 견뎌냈을까.'를 생각하니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 어쩌면 내가 기본 군사훈련단에서의 훈련을 잘 받고 당당하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형이 보여 준 믿음 때문이었지. 형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진정으로 나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이었어. 


형, 지금 내가 형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미안해. 하지만 앞으로는 내가 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 거야. 그래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형에게 나의 정성이 전달되어 형의 건강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야. 


'형이 다시 군대를 가라면 억 만금을 준다고 해도 체력 때문에 가기가 싫을 텐데, 네가 입대하기 전 날 자는 모습을 보니 동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갈 수도 있겠구나.' 


나는 오늘도 경계 근무를 하면서 군사훈련단에서 훈련을 받을 때 형이 보낸 손 편지를 떠 올리면 가슴이 막 뛰는 것 있지. 내 마음속 우편함을 열 때마다 형의 편지가 수두룩하거든. 무수한 설렘으로 형의 편지를 열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형의 마음이 내 혈관을 스물네 시간 돌고 돌아 바른 생각을 심은 자리마다 새 움을 틔우고 있지. 눈빛이 흔들릴 때마다 시간을 곱씹으며 믿음의 순도를 높이고 제 것으로 만들 때를 기다리라고 형은 끊임없이 주문하지. 


제대하고는 형 앞에 더 당당해진 나를 꼭 보여주고 싶어. 형, 그러니까 건강해야 해. 형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잖아. 밤하늘의 별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이고 있어. 밤 새 하품을 입에 물고 어금니를 앙다물며 졸음을 털어낼 때도 언제나 내 곁에서 꼬리를 물고 끝없이 낙하하는 유성.


나는 지금 형을 보고 있어.


2016년 5월 13일

동생 영찬이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대학일반부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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