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의 은인 유선생님께

일반부 장려-신상진

by 편지한줄

어릴적 생일마다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미역국을 먹어야 인덕이 있단다."

인덕이라는 말 뜻을 모르던 때부터 지금까지 먹었던 미역국의 덕은 선생님이 베

푼 큰 호의와 용서로 다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때는 1993년 6월 논술지도사 공부를 하면서였지요. 이후 선

생님은 중국에서 해외근무를 나온 직원 자녀들에게 논술을 가르쳤고, 저는 서

울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저 부지런하게 살면 미래가 보장되겠거니 생각했던 제게 연이어 큰 일이 벌

어졌습니다. 친정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머리를 다치고 거동을 못하게 되면서

치매증상까지 나타났습니다. 맞벌이와 세 아이 양육, 간병까지 최악의 상황

이 어디까지 지속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남편의 정리해고로 치

명타를 입었고요.

정신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데 집주인이 세를 올려 달라고 했습니다.

감당 안 되는 돈이라 어떡해야 하나 근심하던 중 선생님이 당산동에 시댁 명의의

빌라가 있으니 거기 들어가서 살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집으로 이사한 후 8년

을 살았습니다.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가난을 벗어날 수 없으니 무슨 수를 써야겠다는 생각

에 빚까지 내어 무모한 투자를 했습니다. 게다가 은혜를 갚는답시고 선생님

께도 투자를 권유했네요. 선생님은 믿을만하다는 제 말에 선뜻 천오백 만원이나 되

는 돈을 맡겼습니다. 그 돈이 날아가는 데는 불과 일 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두려운 일이 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제게 선

생님은 일단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인사동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가장 먼저

한 말은 "선생님, 어째 그렇게 말랐어요. 몸이 너무 상했네." 였습니다.

그리고는 꽤 비싸 보이는 한정식집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선생님이 권했지만 내 욕심이 과해서 생긴 일이에요.

몸 잘 추스르고 식구들 놓지 말아요. 돈은 다시 들어올 수 있지만 가족은 다시 만

들 수 없으니까요."

그날 먹었던 음식 맛이 어땠는지, 반찬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비죽

비죽 나오는 눈물을 뜨거운 된장찌개 국물로 꾹꾹 눌렀던 것은 또렷합니다.

10년이 흘렀습니다. 사정은 더욱 팍팍해져서 빚과 이자에 아이들 셋의 학비,

생활비를 대려니 숨이 턱턱 막힐 만큼 고되고 힘들었습니다. 다행인 점은 선

생님 집을 나와 얻은 월세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집

을 팔면서 새 주인이 나타났고, 계약 기간이 끝나는 8개월 후에는 시가대로 월

세를 두 배로 올린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돈으로 갈 곳은 지방 소도시 정도였습

니다. 선생님께 하소연을 하니 아무 말 없이 듣고는 며칠 후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구로동에 시댁 본가가 있어요. 어머니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병원을

알아보는 중인데 선생님네가 살면 어떨까요? 지은 지 40년이 됐지만 방이 네

개고 조그만 마당도 있어요. "

"아, 그래요? 그 정도면 저희가 감당하기 힘든 돈일 텐데요."

"전세 대출을 알아 보시면 저희가 해드릴게요. 남편도 동의했어요."

전세 대출을 받고 살던 집의 보증금을 더했지만 주변 시세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

았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집을 내주었습니다.

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봄이면 개나리, 라일락과 목단, 줄장미 여름에는

나팔꽃이 피었습니다. 가을에는 100여 개나 달리는 대봉감을 따서 겨우내 먹었습

니다. 집이 안정되니까 식구들도 편안해져서 제 할일을 하였고 세 아이는 대학을

나와 취업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가족을 살린 분들은 바로 유 선생님 부부입니다 세상의 계산과는

너무나 다른 두 분의 계산법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가족의 지렛대, 끊어지려

는 삶의 의자를 북돋아 주신 선생님 부부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까요? 재계약

마다 저희는 세를 더 못 올려 주어 미안해 하지만, 그분들은 깨끗하고 예쁘게 집

관리를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합니다.

오늘 새벽도 감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참새 소리에 잠을 깹니다. 가장 먼저 드

리는 기도는 선생님 가족의 평안과 행복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2025. 6

신상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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