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였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학교 뒷길을 어슬렁거리는데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질 무렵이 되자 나랑 비슷한 것을 타는 어른들 몇몇이 나타났다. 그곳은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 회원들이 매일 같이 저녁 모임을 갖는 장소였다. 사람들이 충분히 모이면 그들은 탄천으로 로드런을 떠났다. 보통은 작은 언덕 두 개를 넘는, 수서에서 잠실까지의 코스였다. 큰맘 먹고 떠나면 그들은 여의도까지도 하룻밤 사이에 오갔다. 나는 그 로드런에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보다 열한 살이나 많은 한 작곡가 형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스케이트를 타고 떵떵거리는 내가 귀여웠던 것인지 그는 심심하면 나를 자기네 집으로 불렀다. 집에는 건반이며 신디사이저 그리고 심지어 방음부스까지 있었다. 거실책장에는 오규원 시인의『현대시작법』이 꽂혀 있었다. 형은 실용음악을 전공하기 전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내가 꿈에 그리는 곳이었다.
나는 이제 부르지 않아도 형의 집에 불쑥불쑥 찾아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메탈리카와 엑스재팬, 스트라이퍼, 본조비, 우타다 히카루 또 누가 있더라. 아무튼 많은 가수들을 소개받았다. 나는 형이 권해주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도 챙겨 보았다. MP3 플레이어보다는 더 음질이 좋다는 이유로 형은 내게 MD를 권했고, 나는 뽀다구가 난다는 이유로 그것을 구입해서 음악을 들었다. 때가 되면 함께 밥을 먹었다. 형이 요리를 하거나 배달음식을 주문하면 설거지나 마무리 청소는 내가 담당했다. 종종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 같은 것을 함께 시청하기도 했다. 어느 땐가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나왔다. 그걸 가만히 보던 형이 울적해하면서 나 또한 자신의 나이가 된다면 저 노래가 지금과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각자의 할일을 하다가 피곤하거나 심심하면 낮잠을 자기도 했는데, 형한테는 특이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코를 골다 말고 깜짝 놀라서 좌우를 살피더니 내게 묻는 것이다.
“본부야. 나 혹시 코 골았니?”
형은 정말로 코를 골다 깰 때도 있었고, 그러지 않았는데도 느닷없이 깨서는 똑같이 물을 때도 있었다. 내가 코를 골았다고 대답하면 형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코골이를 노화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형이 코를 골았는지 물을 때면 안 골았다고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그러면 형은 안심이 좀 된다는 듯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서른이 되고 보니 이제는 나도 혼자 자다 말고 잠에서 깬다. 문득 들숨과 날숨이 비강을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금방 정신이 돌아오면서 조금 전까지 내가 코를 골았다는 확신 같은 게 들 때가 있다. 내가 그렇게 피곤했던가 되돌아보면 그러지는 않았던 것이 괜히 아쉽기도 하고 착잡해지다가도 지금 내 얼굴이 과거에 보았던 형의 표정과 많이 닮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다른 건 몰라도 <서른 즈음에>에 대한 형의 예언은 적중했다. 서른 무렵이 되어 듣는 <서른 즈음에>는 확실히 그 전에 듣던 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작품을 대하다 보면 희곡을 영화로,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을 종종 만나게 된다. <서른 즈음에>라는 곡을 사람의 신체 현상으로 각색하면 아마 코골이쯤이 되지 않을까.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내가 오늘 <서른 즈음에>를 들어서도, 지난밤 코를 골아서도 아니다. 두 번 말하지만 절대로 아니다. 김광석도 서른 즈음에 코를 골았다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