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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부 Jun 25. 2021

[07] 확대/축소 도구3 : 씬 리스트(+장면 구분)

디즈니, 픽사, 지브리 작품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구조

씬 리스트 단계로 이동

시놉시스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 때 사용되는 도구가 씬 리스트입니다. 씬 리스트는 말 그대로 장면을 나열한 목록입니다. 본격적으로 장면을 구분해주고, 장면 안에 들어갈 내용들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목록화합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시퀀스1 요약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겠습니다.


    [시퀀스1]

키키는 마녀가 될 아이는 13살이 되는 해에 마녀 수련을 떠나는 오래된 관습에 따라서 짐을 싸서 떠난다. 키키는 밤하늘을 날아 남쪽으로 향하던 도중 견습 마녀와 짧게 만나고 헤어진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키키는 근처를 지나는 화물 열차 화물칸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날이 밝은 뒤 눈을 떠 보니 기차는 바닷가 마을을 지나고 있다. 키키는 하늘을 날아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이 시퀀스 요약을 씬 리스트로 만들면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1. 호숫가 앞 들판 + 돌아오는 길 : 실외/낮

키키가 들판에 누워 라디오를 듣던 키키는 오늘 밤은 맑을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집으로 향한다.


    #2. 키키의 집 1층 : 실내/낮

키키는 엄마에게 오늘 밤에 출발할 거라고 말한다. 키키는 한 달 미룬다고 했었지만 마음을 바꾼 거다. 키키는 마녀 수련을 떠나려는 거다. 13살이 되면 마녀가 될 아이는 집을 떠나는 거다.


    #3. 키키의 방 + 바깥 : 실내 + 외/낮

키키는 고양이 지지와 짐을 싸는 키키. 캠핑 용품을 잔뜩 싣고 온 아빠한테도 그 사실을 알린다. 엄마가 키키의 옷을 고쳐준다. 키키 아빠는 키키를 비행기 태워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4. 키키의 집 앞 : 실외/밤

키키가 친구들, 마을 사람들과 작별한다. 엄마는 새로운 빗자루를 건네준다. 키키가 떠난다.


    #5. 하늘 : 실외/밤

바다가 보이는 남쪽으로 날아가는 키키. 또 다른 마녀 수련생을 만난다. 그녀는 점을 칠 줄 알아서 어렵지 않게 마을에 정착했다. 키키는 딱히 특기가 없다. 마녀 수련생을 잘 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 때 비가 쏟아진다. 때마침 눈에 보이는 기차 화물칸으로 들어간다.


    #6. 화물칸 : 실내/밤

키키는 화물칸 속 지푸라기 더미 위에서 짐을 풀고 잠든다. 화물열차가 어디론가 출발한다.


    #7. 화물칸 + 바깥 : 실내, 외/낮

키키가 잠에서 깨어서 보니 바깥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파닷가 건너편에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와서 그리로 향하는 키키.


장면을 나누는 기준

<마녀 배달부 키키>의 시퀀스1은 총 7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장면과 장면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초보자들은 공간이 바뀌면 장면이 바뀐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1의 경우 더 잘게 쪼개져야 합니다. 들판에 누워 일기 예보를 듣던 키키가 오늘 밤은 맑을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들판을 떠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키키는 마을의 여러 공간을 비탈, 나무가 늘어선 길, 울타리가 있는 곳 등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간 변화를 기준으로 장면을 하나하나 다 구분할 경우는 너무 번잡해집니다. 왜냐하면 창작 단계를 감안했을 때 아직까지는 그렇게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면을 구분하는 본질적인 기준 또한 공간 구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장면은 그릇, 사건은 내용물

장면을 나누는 기준은 곧 사건입니다. 사건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여러 차례 이야기의 정의가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그 정의에 따라 나뉘는 덩어리들을 기준으로 장면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1. 호숫가 앞 들판 + 돌아오는 길 : 실외/낮

키키가 들판에 누워 라디오를 듣던 키키는 오늘 밤은 맑을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집으로 향한다.


장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의 변화

이 내용에 이야기의 정의를 대입해보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키키는 라디오를 듣다가 오늘 밤이 맑을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벌떡 일어납니다. 비록 어젯밤에는 한 달 뒤에 떠나겠다고 부모님한테 말하긴 했지만, 오늘 밤이 맑을 것이란 소릴 듣자 떠나기에는 오늘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키키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이에 따라 행동합니다. 즉 물 웅덩이를 지나고, 큰 나무들이 늘어선 길가를 지나고, 울타리 밑을 지나서 집으로 마침내 도착하는 것이죠. 이 짧은 장면 안에서도 어느 지점에선가 장면을 주도하는 인물이 원하는 것이 생기고, 그것을 추구한 끝에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건"의 맥락으로 봤을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공간이 비춰진다 해서 독립적인 장면이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장면에 포함된 컷들입니다.


장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의 변화

(3)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키키는 짐을 챙기던 도중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캠핑 용품을 잔뜩 싣고 온 아빠와 대화를 나눕니다. 이 장면은 실내로 보아야 할지, 실외로 보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둘 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고민하는 이유는 하나의 장면을 각각 다른 장면으로 나누려고 하는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사건을 기준으로 보면 실내와 실외를 넘나들며 형성되는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으니 하나의 장면에 다 담아주면 됩니다.

똑같은 맥락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장면이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컷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요. #3에서는 캠핑 용품을 싣고 온 아빠에게 키키가 오늘 밤 떠날 것이라고 알리는 컷 다음으로 시간이 이동합니다. 어느새 화면은 키키의 옷을 수선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간은 한 번 더 비약합니다. 이제는 방 안에 키키와 아빠가 단둘이 있습니다. 아빠는 수련을 떠날 키키에게 힘들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키키의 엄마, 아빠가 키키에게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이며, #3이라는 장면이자 사건 안에 포함된 행동들입니다. 큰 단위의 이야기나, 작은 단위의 이야기나 그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 단위의 이야기가 모여 큰 단위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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