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본부 Jun 23. 2021

[06] 확대/축소 도구2 : 시놉시스 (+시퀀스)

디즈니, 픽사, 지브리 작품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구조

시놉시스

로그라인을 기준 삼아 디테일을 세공하고, 때론 연상에 연상을 거듭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여러 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덩어리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분량을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A4용지 기준으로 1~5페이지 분량의 요약문이 완성되었다면 그것은 시놉시스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협업자들과 소통하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컨셉을 파악하는 정도라면 1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시놉시스가 적당할 것이고, 다음 단계로 더욱 세공하기 직전 단계라면 5페이지 혹은 그 이상도 될 수 있는 매우 자세한 분량이 좋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방법

그런데 이야기가 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그 방향을 스스로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기분이 듭니까? 아니면 처음과 끝은 분명하게 잡혀 있는데, 중간 구간을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직 창작자가 자신이 만드는 이야기의 세계를 완전히 다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를 스스로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자료를 찾아보고, 비슷한 점이 있는 작품을 레퍼런스 삼아 연구해보고, 필요하면 현장 취재, 인터뷰 등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쌓이는 것들은 이야기가 계속 자라날 수 있도록 거름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충분한 거름이 제공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비실비실 영양실조 상태에 시달리다가 곧 말라죽고 말 것입니다. 학창시절 어떤 사람에게 저 자신을 작가 지망생이라고 주변에 소개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돌아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서로 짜고 말했을 리도 없는데 그들은 똑같은 말은 했습니다. "작가는 아는 것이 많아야 돼." 글을 쓰면 쓸 수록 저는 이 말을 했던 그 많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갖게 됩니다. 그들 대부분은 작가도 아니었는데, 그런 걸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도대체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는 아는 것이 많아야 그 안에서 이야기의 재료를 골라 이야기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재료가 많아야 그것들을 이리저리 합쳐보고 해체해보며 이야기의 재료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분야에 관해 백과사전처럼 통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쓰고자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 직업, 인간 관계, 먹고 사는 방법, 애로사항, 이야기에 등장하는 각종 소재에 대한 지식들. 작가에게는 그것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강력한 도구, 시퀀스

이야기의 맥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시놉시스 정도의 형식을 갖춘 글이라면 이제 시퀀스라는 아주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 더욱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한 단위입니다. 이야기는 여러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장면들이 묶여서 하나의 시퀀스를 이루고, 시퀀스 여러 개가 묶여서 한 편의 이야기가 됩니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의 이야기는 여러 개의 시퀀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야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러닝타임 90~120분 분량의 이야기는 통상적으로 8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애초에 영화사 초기에 사용되었던 필름 한 롤이 15분 분량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시퀀스라는 개념이 정착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90분~120분 분량의 이야기가 8개의 시퀀스로 나뉘는 건 건축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휴먼 스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휴먼 스케일이란 인간의 신체 사이즈를 기준으로 해서 건축물이나 공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앉아서 생활하는 책상의 높이는 보통 70cm 정도가 되고, 의자의 높이는 45cm 가량이 됩니다. 사람이 앉았을 때 평균적으로 그 정도 높이가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시퀀스가 통상 12~15분 정도인 것은 평균적으로 감상자들의 관심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의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야기의 정의

시퀀스 또한 이야기의 정의를 대입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있고, 그가 원하는 것이 있고, 그걸 방해하는 장애 요인이 있고, 궁극적으로 변화가 있습니다. 로그라인이라는 커다란 단위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퀀스라는, 보다 작은 단위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정의를 기준으로 <마녀 배달부 키키>를 시퀀스 단위로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야기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상기해보면서 아래 내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퀀스1]

키키는 마녀가 될 아이는 13살이 되는 해에 마녀 수련을 떠나는 오래된 관습에 따라서 짐을 싸서 떠난다. 키키는 밤하늘을 날아 남쪽으로 향하던 도중 견습 마녀와 짧게 만나고 헤어진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키키는 근처를 지나는 화물 열차 화물칸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날이 밝은 뒤 눈을 떠 보니 기차는 바닷가 마을을 지나고 있다. 키키는 하늘을 날아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시퀀스2]

마을에 온 키키는 어리둥절하게 마을 곳곳을 구경하다가 톰보를 만난다. 하지만 키키는 톰보가 무례하다고 생각해 외면하고 가버린다. 키키는 호텔에 묵으려 하지만 보호자도 신분증도 없어서 거절당한다. 갈 곳이 없어 마을을 떠나려던 키키는 우연히 묵찌빠 빵집 아주머니를 도와주게 된 것을 시작으로 묵찌빠 빵집에서 당분간 머물 수 있게 된다.


[시퀀스3]

키키는 묵찌빠 빵집 일을 도우며, 따로 배달부 일을 시작한다. 키키는 톰보와 다시 만나지만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다. 빵집 단골 손님이 키키에게 처음으로 배달 일을 의뢰하는데, 다른 마을에 사는 조카에게 고양이 인형을 배송하는 업무다. 하지만 키키는 배달 사고가 나서 인형을 분실한다. 키키는 임시로 고양이 지지를 인형으로 위장시켜서 단골손님의 조카의 집에 배송해주고, 인형을 찾아 떠난다.


[시퀀스4]

지지가 단골 손님 조카 집에 있던 대형견 때문에 진땀을 빼는 사이, 키키는 고양이 인형을 찾는다. 인형은 그림 그리는 우르슬라라고 하는 한 소녀가 습득하고 있었는데, 우르슬라는 키키에게 그걸 돌려준다. 키키는 지지에게로 돌아가 무사히 인형과 지지를 맞바꾸고, 마을로 귀환한다.


[시퀀스5]

톰보가 묵찌빠 빵집에 찾아와서 비행선 클럽 파티에 함께 가자며 초대장을 건네준다. 톰보는 6시에 데리러 오겠다며 떠나지만, 키키는 한꺼번에 배달을 두 개나 맡는 바람에 바빠진다. 첫번째 배달을 끝내고, 두 번째 배달을 위해 의뢰인을 찾아가는데, 할머니 고객이다. 그녀는 손녀에게 청어 파이를 배달하려 하는데, 하지만 오븐이 말썽이다. 키키의 도움으로 화덕을 사용해 파이를 완성하고, 키키가 배달하러 떠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6시가 다 되어 톰보가 키키를 기다리지만, 키키는 배달을 완료하고도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는다. 이미 옷이 비에 다 젖었기 때문이다.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키키.


[시퀀스6]

아픈 키키가 몸을 회복하고, 오소노 아줌마는 키키를 톰코포리 상에게 심부름을 보낸다. 키키가 가보니 코포리는 톰보였다. 키키는 초대에 응하지 못했던 걸 사과한다. 키키와 톰보는 톰보가 만든 프로펠러 자전거를 타고 바다로 가고, 키키와 톰보는 친해진다. 그런데 톰보 친구들이 톰보에게 비행선 내부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저 혼자 마음이 상한 키키는 홀로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


[시퀀스7] 

집에 돌아온 키키는 자신의 마법이 약해진 걸 확인한다. 키키는 톰보를 멀리하고 불안한 마음에 수련에 전념하지만 외려 빗자루를 부러뜨린다. 톰보가 전화해도 키키는 톰보에게 일부러 쌀쌀맞게 대한다. 마음을 다잡으며 부러진 빗자루를 새로 만드는 키키.


[시퀀스8] 

키키에게 우르슬라가 찾아온다. 키키는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는다. 우르슬라는 키키에게 예전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주며 슬럼프 극복에 대해 조언해준다. 청어 파이 배달을 의뢰한 할머니가 키키를 찾는다는 연락이 온다. 키키가 가보면 할머니는 키키에게 케이크를 선물한다. 그때 뉴스를 통해 톰보가 바람에 휩쓸린 비행선에 매달린 것을 목격한다. 키키가 달려가서 다시 마법을 사용해 날고 톰보를 구해 마을의 영웅이 된다.


이렇게 시놉시스를 시퀀스로 구획 지어서 살펴보면 이야기의 전체 틀거리가 훨씬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끝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남았는지를 시퀀스를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으로 치자면,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 어느 지점에 이야기가 위치해 있는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감정선의 파동

이야기를 시퀀스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인물의 감정선을 파악하는 것도 더 용이해집니다. 예를 들어 <마녀 배달부 키키>의 시퀀스1에서 키키는 수련을 떠날 생각에 한껏 들떠 있습니다.  하지만 폭풍우가 다가와 난항을 겪으니 잔뜩 위축됩니다. 하지만 다행히 소 여물을 싣고 가는 기차를 발견하고 그 속에 들어가 안도합니다. 감정선의 파동이 긍정에서 부정으로, 다시 긍정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키키는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바닷가 마을을 발견합니다. 이전의 긍정적인 상태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차원을 달리하는 긍정적 감정입니다. 이런 감정의 파동은 그래프로 표현하면 더욱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처럼 인물의 감정선에는 주기적으로 방향이 변하는 파동이 존재합니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시퀀스1부터 시퀀스8까지 평행한 직선이 길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시퀀스는 절대적인 법칙?

그렇다면 무조건 극장판 작품은 시퀀스가 8개일까요? 만약 84제곱미터 크기의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면 보통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과 주방, 베란다와 세탁실 혹은 다용도실 정도로 구성할 것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방이 2개일 수도 있고, 화장실이 하나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각 시퀀스의 크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0분 미만의 시퀀스가 존재하기도 하고, 20분 이상 되는 시퀀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의 장면을 길게 늘여, 시퀀스의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기억 폐기장 장면은 곧 장면이면서 하나의 시퀀스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공항 전투 장면 또한 하나의 장면인 동시에 하나의 시퀀스의 몫을 담당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엇에나 절대적인 법칙 같은 건 없습니다.


시퀀스라는 도구를 잘 다루려면

자신이 시퀀스를 정말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창작 과정에서 시퀀스를 활용해서 이야기를 구분지어보는 것보다는, 이미 다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고 그것을 시퀀스 단위로 요약해보면 됩니다. 제가 쓰는 이야기야 그저 자신의 우격다짐으로 시퀀스로 묶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작은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고, 실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그저 분량을 차지하도록 구획지어 놓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작품의 시퀀스를 나누는 것은 이미 다른 문제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시퀀스인지 분별할 수 있으려면,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의 정의를 기준 삼아서 시퀀스 단위로 사건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게 잘 안 되더라도 계속 연습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한 편의 이야기를 500자 분량으로 요약해보고, 하나의 시퀀스를 500자 분량으로 요약해 보고, 또 하나의 장면을 500자 분량으로 요약해 보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500자라도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의 무게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사건의 무게입니다. 큰 단위에서 바라볼 때에는 무거운 사건이, 작은 단위에서 바라볼 때에는 작은 단위의 사건이 손에 잡히기 마련입니다. 시퀀스 또한 능숙하게 잘 다루게 되어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확대/축소 도구1 : 로그라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