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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부 Jun 30. 2021

[13] 주인공의 세 가지 조건

디즈니, 픽사, 지브리 작품으로 보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의 구조

주인공을 특정하는 세 가지 조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그가 주인공인지 설명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막힘 없이 설명할 수 있으신가요? 지브리, 픽사, 디즈니의 많은 작품이 버디 무비의 성격을 띈다는 점에서, 깊게 파고들 수록 주인공과 두번째 주인공이 모호해지는 지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중 누구에게 더 큰 무게가 실려 있는지, 왜 그런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당연히 창작에 도움이 됩니다. 이제는 주인공에 관해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아래의 세 가지 기준에 의해 특정됩니다.


(1)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가?

(2) 가장 많이 이입하게 되는 인물이 누구인가?

(3) 가장 크게 변화하는 인물이 누구인가?


1번은 분량과 비중을 기준으로 삼은 질문이고, 2번은 감정이입을 기준으로 삼은 질문입니다. 3번은 누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를 묻는 것이고, 4번은 결국 누구를 통해 이야기의 주제가 표현되는지를 알 수 있는 질문입니다. 분석하고자하는 각 이야기를 바탕으로 위 네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 곧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니모? 그렇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제목에는 니모라는 이름이 딱 못박혀 있지만, 위 네 가지 질문에 답을 내려보면, 전혀 다른 인물이 주인공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읽고, 여러분들이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한 번 답을 내려보시기 바랍니다.


(1)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토이 스토리4>에서는 우디가 더 많이 등장할까요, 버즈가 더 많이 등장할까요? 거의 동시에 등장하며, 평행 구성으로 둘의 상황을 끝까지 번갈아가며 보여주니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주토피아>에서는 주디와 닉, 둘 중 누가 많이 등장할까요? 주디가 주토피아에 도착한 이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닉과 달리, 이야기의 맨 처음부터 등장하는 주디입니다. 그렇다면 <겨울 왕국>의 안나와 엘사 중 이야기에 더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엘사와 안나는 처음부터 거의 동시에 등장하고, 이야기에 끝에 이르기까지 번갈아가며 상황을 주도하니 누구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위해 분, 초 단위로 누가 더 많이 등장하는지 계산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수학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럴 경우 답을 조금 더 유보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아야 합니다.


(2) 가장 많이 이입하게 되는 인물은 누구인가?

동화 작용이라는 것에 관해 잠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상자가 주인공이 하는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응원하고, 동정하고, 나아가서 주인공이 겪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서는 감상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창작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과연 감상자들이 감정을 이입할 만한 인물인지 반드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핵심은 호감과 결핍입니다.

<토이스토리 4>에서는 우디와 버즈 중 누구에게 더 감정을 이입하게 될까요? 감상자들이 버즈에게 감정을 이입할 여지는 집을 나선 친구가 걱정되어 찾으러 떠난다는 것 하나 뿐이지만, 우디에게는 그것에 더해서, 주인에 대한 장난감으로서의 사명감으로 똘똘 무장한 성격이라는 설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감상자는 버즈보다는 우디에게 더 많은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토피아>의 주디에게 감상자들이 감정을 이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약한 초식동물로서 주토피아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을 꿈꾸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꿈을 이루긴 하지만, 결국 교통 딱지나 끊는 따분한 업무나 맡기 때문입니다. 감상자들은 주디가 좀 더 그럴듯한 업무를 맡았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주디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감상자들은 인정하니까요. 닉 또한 비슷합니다. 거친 길거리 생활을 억척스럽게 이어나가고 있지만, 그에게는 편견에 관한 그 나름의 상처와 사정이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이 지점에서 감상자의 마음은 약해집니다. 주디에게 끌려다니는(?) 가련한 처지의 여우에게 호감을 느끼는 동시에, 과거에 받았던 상처가 드러남으로 동정하게 되는 것이죠.

<겨울 왕국>의 안나와 엘사에게는 어떻게 이입하게 되는 것일까요? 엘사는 특별한 능력이 있지만, 그로 인해 안나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마법 능력을 나쁜 데 쓰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엘사는 안나와 아렌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봉인시킵니다. 얼마나 선량하면서도 동정이 가는 행동입니까? 마찬가지로 안나 또한 기억을 잃은 탓에 엘사가 자신을 왜 거부하는지는 모르지만, 엘사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안나의 착한 마음이 감상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엘사가 안나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며 감상자들은 한 번 더 안나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번에도 엘사와 안나의 스코어는 나란하네요.


(3) 가장 크게 변화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토이 스토리4>에서는 버즈보다는 우디가 더 큰 변화를 경험합니다. 서로 헤어진다는 점에서 우디와 버즈 모두 친구와 이별하는 변화를 경험하지만, 우디에게 보니의 품을 떠나는 건, 주인을 향한 충성심으로 무장되었던 자신의 근원적인 성격을 부정하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커다란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주토피아>에서 가장 크게 변화하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닉도, 주디도 모두 서로 협력해서 벨웨더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기에 누가 더 큰 변화를 경험했다고 쉽게 단정짓기가 어렵습니다. <겨울 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나는 진정한 사랑이 엘사였음을 깨닫게 되는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지만, 엘사는 아렌델을 여름으로 되돌려놓는 상황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또한 엘사와 안나의 사이가 회복되니 둘 다 관계의 변화를 겪습니다. 두 작품 모두 변화의 관점에서만큼은 동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합산

<토이 스토리4>의 경우 (1)은 우디와 버즈 모두 동등하고, (2), (3)은 우디가 우세합니다. <주토피아>의 경우 (1)은 주디가 우세하고, (2), (3)은 주디와 닉 모두 동점입니다. 점수로 치자면 <토이 스토리4>는 3:1, <주토피아>는 3:2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겨울 왕국>의 경우는 세 질문 모두 안나와 엘사가 나란히 이름을 올립니다. 3:3 동점인 것이죠. 굳이 이름붙이자면 <토이 스토리4>의 우디는 주인공, 버즈는 조연, <주토피아>는 주디가 주인공, 닉이 두번째 주인공이고, <겨울 왕국>은 엘사와 안나가 공동 주인공이라고 하면 될까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작품에 구현된 인물의 무게감을 세밀하게 가늠해보기 위해서입니다.


결론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가늠해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협업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두 명의 창작자가 어떤 작품을 만들 때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합시다. 위 세 개의 질문에 답을 하면 A라는 인물이 3, B라는 인물이 2, 즉 <주토피아>의 주디와 닉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창작자1은 이 둘을 공동 주인공이라고 표현하고, 창작자2는 주인공과 두번째 주인공이라고 표현한다고 했을 때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요? 둘 다 맞는 것입니다. 동일한 것을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위와 같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통해 작품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어떤 의도를 담아서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용이합니다. 따라서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감정, 시간, 공력, 비용까지 아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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