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하되, 감추며 공정하되, 따뜻하기.
돌이켜보니 조직장이 아닌 직장 생활보다 조직장으로서의 시간이 길어진 지 꽤 됐다.
모든 삶이 치열하기는 하겠다만 변화무쌍함에 있어서는 조직장의 삶만 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그간의 삶을 반추해 봤을 때 가장 쉽지 않았던 것은 선을 아는 것 그리고 지키는 것이었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는 조직장의 역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나는 코로나 이전부터도 이미 '거리두기'에 능했고 '마스크'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조직장으로서의 나와 조직원의 거리를 하루하루 조율하며 살아왔다.
오늘은 조직장과 조직원의 거리를 구분하고 선긋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힘든 편이다. MBTI에서 내향형 인간이며 내면으로부터의 충전이 필요한 사람이라 아름답게 각색됐지만 그냥 좁은 관계가 편한 사람이다. 역설적으로 명함앱 리멤버의 최종 등급인 우주 인맥왕에 다다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삶을 살아가며 나름의 선을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이다.
알게 모르게 모든 관계는 카테고라이징이 된다. 절친한 친구 그룹 사이에도 포지셔닝이 있듯이, 한창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도 각자의 겹치지 않는 캐릭터가 있듯이 말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명 한 명이 적당한 거리에서 선이 그어진다. 그리고 비슷한 거리의 사람들끼리는 카테고라이징이 된다. 군집을 이룬다.
인간관계에서 좁혀서, 조직 생활에서의 군집을 생각해 본다. 홀로 일하는 업무가 아니라면 같은 조직 안에서 업무를 하는 사람들끼리 거리가 있다. 최대한 거리를 멀찍이 두고 싶은 이가 있는가 하면, 주말에도 수다 떨고 싶은 사람이 있다. 고민은 여기부터 시작된다. 다양한 인간사, 사람마다 그어진 선의 거리가 다르지만 나는 조직장이다. 누구를 옆에 두고 누구는 멀찍이 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를 평등하게 두기에는 또, 각자의 원하는 거리가 다르다. 참 어렵다.
조직장이라는 위치에서 관계의 중심은 ‘나’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라면 내가 불편한 사람은 멀리하고, 편한 사람은 가까이 둔다. 하지만 조직장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내가 기준이 아니라, 조직원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관계를 맺는 주체가 조직원이 되고, 나는 그에 따라 적절한 거리만큼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거리의 감각은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열고 있는가’,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감정과 신뢰를 내보이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의 속도나 편안함보다도 ‘그 사람이 나를 받아들이는 정도’다.
문제는, 조직원 한 명 한 명이 나에게 열어주는 거리만큼 나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된다는 데 있다. 인간은 거울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 하지 않는가. 누군가 나에게 진심을 다하면 나 역시 그 진심에 반응하게 된다. 관계가 깊어지면, 더 많은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게 되고, 더 자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서로에게 ‘친밀함’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바로 그 친밀함이, 외부의 눈에는 ‘편애’로 보일 수 있다. “왜 A는 자주 부르고, B는 안 부르냐”, “왜 A는 다 알고 있는데 나는 몰랐느냐.” 그렇게 관계의 깊이는 곧 형평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로는 다가온 사람에게 다가간 것일 뿐인데, 외부는 그 과정을 알지 못한다. 오로지 결과만 본다. 누구와 더 많이 이야기하고, 누구와 더 웃었는가. 누구는 사적인 이야기를 듣고 누구는 듣지 못했는가.
그래서 결국, 조직장으로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는 룰이 필요하다. 감정이 아닌 원칙, 즉 ‘형평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도, 나 역시 그만큼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정보의 공유나 결정 과정, 기회의 분배에는 절대 그 관계의 깊이가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어떻게 보면 이건 참 비인간적인 일이다. 누가 나를 좋아해 주는데, 그 사람을 더 챙겨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건. 관계가 깊어질수록 경계를 쳐야 한다는 건. 하지만 조직장이란 자리는 결국 ‘개인’보다 ‘역할’로 존재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사람’으로서의 마음보다 ‘역할’로서의 원칙이 더 앞서야 한다.
이 역할을 지키기 위해 나 자신을 숨기는 일도 필요하다. 조직원에게 다가서되, 나의 민낯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 것.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주되, 내 속내는 한 발쯤 감추는 것. 이 거리감이 결국 조직을 건강하게 만든다.
조직장은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편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존재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까워지는 사람에게도 일정한 거리의 벽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 벽이야말로 나를 감추는 것이고, 동시에 조직장으로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결국, 조직장으로서의 관계 맺기란 ‘내가 편한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거리’를 기준으로 조율해 가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를 조금씩 숨기게 된다. 내 감정과 생각을 덜어내고, 관계의 흐름에 원칙을 입히는 것이다.
나를 감추는 일이 처음에는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나는 공정했는데 왜 오해를 사야 하는가. 하지만 그 억울함마저도 내 것이 아니라 조직장의 몫이다. 나는 더 이상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라 방향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더 감춰야 한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더 마음을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준이 흔들릴 수 있다. 그리하여 ‘공정’이라는 가치는,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지켜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누군가에게서 한 발 물러선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원칙이 있다.
가까이하되, 감추기.
공정하되, 따뜻하기.
조직장이란,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감추는 일을 통해 모두에게 열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