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일제의 변화 이유와 대처법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엔데믹을 지나며 '대면 근무'로 회귀했다. 다만 단순히 과거로 돌아간 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면 세월의 상흔처럼 아물어도 흔적은 남는다. 국내에서도 재택근무에 대한 의견과 시행 여부도 회사 상황에 따라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비단 재택근무라는 업무 형태의 변화만을 야기한 것은 아니다. 근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박홍배 의원의 '실노동시간 단축 패키지 법안'과 강훈식 의원의 '주 4.5일제 도입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주 4일제 도입의 초석이 되는 법안이 상정되고 있다. 나아가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서 주 4.5일제 논의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번 정부의 주요 공약이기 때문이다. 과연 주 4.5일제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생산성 증대의 결과일까. 준비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포퓰리즘일까.
주 5일제는 2003년 9월 15일 노무현 정부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시행되었고, 당시 노동자와 시민단체, 일부 경제학자들의 찬성파와 중소기업, 자영업자 및 교육계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당장의 혼란과 사회적 부담이 분명 존재했지만 결국 안정화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 5일제를 넘어서, 국내외에서 주 4일제에 대한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아이슬란드와 벨기에는 정부 차원에서 주 4일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포스코, 삼성전자 등 대기업 중심으로 주 4일제에 대한 다양한 제도를 실험 중이다. 글로벌적 관심과 별개로 주 5일제의 그때처럼 여전히 갑론을박이 존재한다. 과연, 월화수목일일일. 노동 시간의 감소는 어밀리 호건(Emily Hogen)의「노동의 상실」에서 말하는 노동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등 노동의 상실 문제를 해결하는 '뉴노멀 시대'의 단초가 될 수 있을까?
아이슬란드에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노동인구 약 1%에 달하는 2500명이 참여한 실험을 비롯하여 팬데믹 전에도 주 4일제 시도가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급진전되었다. 국제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 글로벌'이 영국에서 70여 개 기업, 3300여 명의 근로자와 함께 '대규모' 실험에 나섰다. 6개월 동안 근로자들이 100%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80%의 시간만 근무하고 임금은 100% 그대로 받는, 이른바 '100:80:100' 모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옥스포드대, 미국 보스턴대 연구자들은 이번 실험에서 주 4일제를 도입하면, 스트레스와 피로, 직업과 삶의 만족도, 건강, 수면, 여행 등 여러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국내 상황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유럽의 실험 결과이기도 하며 기업 상황 역시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규모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결과를 눈여겨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주 4일제를 도입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생산성 저하 없이 오히려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참여 기업의 수익은 평균 1.4% 증가했고 이전 대비 평균 35% 성장률을 보였다. 이직률 역시 57% 감소하며, 실험 참가 기업의 90%가 주 4일제 시행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원의 관점에서도 건강 개선, 스트레스 감소 등 정성적 평가가 높았으며 특히 여성 참가자들의 직업 만족도와 안정감이 더욱 많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주 4일제의 긍정적인 효과가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포데이위크 글로벌의 조 오코너 CEO는 "팬데믹이 게임체인저"라고 말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운 근무 형태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싹텄다. 현실적인 '효율성'을 이유로 현재 대면근무가 다시 당연하게 돌아왔지만 <대퇴사 시대>의 시작을 앞두고 언제까지 기업이 근로자를 붙잡아 둘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영국 레딩대 헨리비즈니스스쿨의 2021년 11월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3분의 2 이상이 '앞으로의 비즈니스 성공에 주 4일제가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에서 2019년 대비 '주 4일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영진의 78%가 구성원들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답했으며, 이는 2년 전보다 5%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70% 이상의 응답자가 주당 근무 시간이 단축되면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데 동의했고 이미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 중 68%는 유연한 근무방식이 인재를 채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헨리비즈니스스쿨이 주 4일제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조사한 결과의 일부로, 노란색 범주는 2021년, 회색 범주는 2019년 조사의 결과를 나타낸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따라 1926년 헨리 포드가 도입한 지 약 100년 만에 '주 5일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 "주 5일 근무제는 최후의 형태가 아니다"란 헨리 포드 포드자동차 창업자의 말처럼 새로운 근무 형태가 이제는 글로벌적으로 태동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험의 조건이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이기 때문에 계획과 준비 없이 무작정 근무시간을 줄일 수는 없다. 첫째,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은 높이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질문은 빼놓을 수 없다. 앞 선 실험에서 일부 증명되었지만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주 4일제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일본 지사의 실험 결과가 자주 언급된다. MS 재팬은 2019년 8월 2300여 명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5주 동안 금요일에 쉬는 주 4일제를 시행했고 급여는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 결과, 생산성이 전년 동기 대비 40%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회의 시간은 30분으로 제한을 두고, 화상회의와 같은 원격 커뮤니케이션도 장려하여 의사소통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한 것을 생산성 향상의 비결로 꼽았는데, 부가적으로 전력사용량 등 기타 비용 감소 효과도 관찰됐다고 한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는 2020년 12월부터 뉴질랜드지사 구성원 81명을 대상으로 1년간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했다. 이 실험 소식을 알리며 유니레버 뉴질랜드 지사의 닉 뱅스 이사는 "우리의 목표는 시간이 아니라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링크) 이를 위해 계획을 자주 검토하고, 적용하면서 작업을 짧은 단계로 나누는 프로젝트 관리 방법인 애자일 방법론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애자일 방법론을 통해 불필요한 관료주의를 부추기는 작업을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비효율을 줄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송길영 박사의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에서 나온 문장이다.
"조직의 위계 서열에 적응해 온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 증명을 위해서라도
본능적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본질을 돌이켜 보면 사실 주 4일제든 주 4.5일제든 제도가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유니레버 닉 뱅스 이사의 말처럼 '불필요한 관료주의'가 가져오는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과정을 제도로서 뒷받침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효율을 강조하는 이 같은 방법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한 갤럽의 연구에 따르면, 주 4일 근무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회사, 리더와 단절되어 고립감을 느끼는 구성원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더 압축적으로 일해야 하는 까닭에 상호교류가 줄어들고 리더 혹은 동료로부터 피드백을 받기도 어려워지는 결과도 확인되었다.(링크) 결국 일주일에 3일을 쉴 수 있는 대신 근무일 중엔 휴게 시간은 줄어들고 업무 압박은 늘어나는 구조가 되면서 <핵개인>의 시대가 강화되는 사회적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물론 핵개인화가 시대를 관통하는 방향이라면 기업도 이에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개인의 시대에 장단점이 무릇 있겠지만, 막을 수 없는 파도라면 핵개인을 어떻게 기업에 영입하고 움직이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시, 개인적인 생각으로 돌아와서 결국 주 4.5일제의 논의는 기업을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업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4.5일제로 인한 생산성과 효율성을 측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데이터 시스템 구축과 핵개인의 고립을 조직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조직 문화와 구성원들의 감정 관리 대응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관상>에서 김내경(송강호)은 바닷가 절벽에서 한명회와 만나 대화를 나누며 얘기한다.
난 사람의 얼굴만 보았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거대한 역사의 흐름(바람)을 읽지 못하고 순간적인 현상(파도)에만 매몰된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회한의 명대사다. 주 4.5일제의 논의는 파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핵개인' 또는 '불필요한 관료주의'라는 본질로 다가서다 보면 왜 4.5일제에 대한 논의가 발의되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의 양상을 가져올 것인지 조금은 더 명료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