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자에 진심을 꾹 눌러 담아서 그간의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 사무실에서는 한숨 소리 한번 푹 맘껏 내지 못하는 '장(長)'으로서의 무게를 글자 속에 담아 보내려고 한다. 권한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는 오늘, 지금까지 잘 버텨온 나로서도 참 버거운 맘이 든다. 대기업을 지나 스타트업에서 조직장을 하면서 그 어느 순간도 참, 쉽지 않구나 새삼 깨닫는다.
대기업의 조직장으로서 재직하던 날을 돌이켜보면, 권한이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은 만큼 책임에 대해서도 꽤나 자유로웠던 것 같다. 정확한 업무 분화를 통해 권한과 책임이 통제되는 '시스템' 안에서의 조직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 업무만 잘해도 평균 이상은 할 수 있었다. 대신 정확한 업무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는 그 어느 조직보다 냉혹하다. 만약 내가 매출 부서의 영업 팀장이라면 '매출'이라는 목표에 따라 내 평가가 결정된다. 목표 매출을 달성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나와 내 조직의 명운이 갈린다. 평가 잣대가 명확하다는 것은 해야 하는 과업 역시 명확함을 뜻한다. 해야 할 일이 명확하기 때문에 업무 집중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결과에 대하여 굉장히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참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 아쉬워 대기업을 박차고 나왔다.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에 입사를 했고 대기업과는 또 다른 상황들이 펼쳐졌다. 스타트업은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의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눈 마주친 사람이 할 일이다. 업무 범위가 정해지지 않다는 것은 평가를 할 수 있는 잣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명확한 평가 가이드가 정해지기까지는 나에 대한 평가는 유무형의 결과물이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 조직장으로서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내 선택에 대하여 불안하고 걱정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결정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들이 연출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기업의 안정감은 비단 개인 수익과 복지 체계 등 물질적인 것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조직장으로서 역할 수행을 안정감 있게 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꽤나 메리트가 있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지금 스타트업 그룹장인 나는, 대기업 재직 당시보다 힘.들.다. 어.렵.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가는 회사가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앞으로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히 크다. 단순히 내 평가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서 어쩌면 우리가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스타트업의 조직장으로서 이끌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졌다. 이전 회사에서는 '매출'만 올리면 적어도 욕먹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출 영업뿐 아니라, 개발 기획, 재무, 총무, 인사 등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하여 의견을 내고 리딩을 해야 한다. 업무 자체도 너무 방대할뿐더러, 지금까지 지원 부서를 통해 서포트받았던 것을 직접 하려니 곤욕이다. 게다가 어느 하나 잘못되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쉬이 가볍게 할 일도 없다. 매일이 살얼음판 같다. 대기업 판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그룹원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존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행동 그리고 책임은 내가 오로지 가져가야 하는 문제다.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모두가 짐을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실무자들 입장에서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 마음의 끝에, 사무실에서는 한숨조차도 조심스러웠다.
이건 꼭 경험해봐야 해
나는 철저한 경험주의자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잘 믿지 않는다. 권한에 대한 책임 역시 그렇다. 대기업 내부적으로 권한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직장으로서 책임이 적었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가진 책임의 크기가 내가 경험하는 세상의 전부였다. 상황이 바뀌어서 스타트업에서의 책임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로 다가왔다. 책임의 크기를 직접 맞닿고 보니 이직 결정이 경솔했었나 다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스쳐가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또 조직원들을 다독이면서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중한 업무와 책임에 대한 거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매일매일 나를 증명해나가는 일이 스트레스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언제 내가 개발 기획을 해보겠어. 언제 내가 조직문화에 대한 인사 제도를 만들어보겠어. 언제 내가 이런 일들을 경험해보겠어.
내려놓고 싶은 짐일지 언정 그 짐이 금덩이라면 어떻게든 짊어지고 가지 않겠는가 싶다. 나 역시 이 글을 통해 금덩이 일지 돌덩이 일지 모를 짐을 잠시 내려놓았다가 다시 짊어지고 갈 생각이다. 비록 무거워도 한숨 한번 시원하게 내지르지 못하지만 말이다. 내 생각에는 금덩이가 확실하니까 보자기 펼칠 때까지 짊어지고 갈 요량이다. 그리고 책임의 무게에 대한 보상을 경험하고 난다면, 또 누군가에게 글자에 진심을 담아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을까.
지난달에 개인적으로 실력을 인정하는 지인을 만났다. 지금은 충분한 자금력으로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계시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책임의 굴레에서 고민의 고민을 하시던 분이다. 그분이 내게 얘기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업을 해야 해. 직장인은 한계가 있어." 그리고 내가 대답했다. "알고 있지만 아직 용기가 없네요.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내 돈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지금의 역할은 그에 준한다고 생각이 든다. 당연히 내 돈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보다는 부담과 걱정에 대한 강도가 적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회사를 성공 가도에 올려놓지 않고서는 내 사업이라는 것을 꿈꿀 수가 없다. 투자를 받고 시작하면서도 성공을 하지 못했다면 맨 땅의 헤딩은 더욱 성공하리라 보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조직장으로서의 역할은 성공으로 가는 배움의 길이라 생각이 든다. 절대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지라는 괘씸한 마음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나는 또 앞으로 간다
내가 좋아하는 글의 플로우다. 무겁게 시작하는 척 가볍고 유쾌하게 마무리되는 글이다. 영화도 무거운 주제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내용을 좋아한다. 글에 한숨을 꾹꾹 담는다고 한들, 내 마음이 풀리거나 현실적인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테다. 또한 글로써 모든 이해는 어렵기 때문에 충분한 공감 역시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경험을 글 속에 녹이고 분출 하면서 스스로 머릿속 정리를 해보려는 것이 이번 넋두리 글의 목표다. 업무와 책임의 무게는 꽤나 무겁지만 나는 또 앞으로 간다. 한숨은 퇴근하는 길목에서 몰아서 쉬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다시 앞으로 가보려 한다. 다음 글부터는 정상적으로 조직 관리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두 편이나 개인적인 감상을 블로그처럼 써버린 탓에 이것 역시 부담이다. 다음 감상문을 쓸 때에는, 리더의 성공 방정식과 같이 성공 사례를 가지고 올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가 보겠다.